사모펀드 판매 얼어붙은 은행권, 하나은행은 뛸 준비 완료
“자산 검증된 상품만 판매한다”, 깜깜이 운용 막나

은행권이 사모펀드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하나은행이 사모펀드 판매 재개를 알렸다. 고객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개선책을 내놓으면서 전화위복을 꾀하고 있다.

하나은행이 지난 19일 내부 재정비와 판매기준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쳐 9개월 만에 사모펀드를 다시 판매한다고 밝혔다. 지난 2월 DLF 사태 등으로 판매를 중단한 지 약 9개월 만이다.

◆ 은행권, 사모펀드 판매 위축

올해 은행들은 사모펀드 판매를 줄였다. 사실상 신규 사모펀드 판매를 수개월째 중단하는 등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자료=금융투자협회
자료=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5대 은행의 판매잔고는 ▲신한은행 4조5367억원 ▲KB국민은행 6조3557억원 ▲하나은행 3조1805억원 ▲우리은행 4조7970억원 ▲NH농협은행 7209억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지난 9월 말 기준 판매잔고는 국민은행을 제외하고 모두 축소됐다.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신한은행은 판매잔액이 –32.2% 줄어든 3조747억원을 기록했다. 하나은행은 27.0% 줄어든 2조3212억원, 우리은행은 42.5% 축소된 2조7582억원으로 집계됐다. 농협은행은 해당 기간 62.7% 줄어든 2688억원으로, 은행 중 판매잔액이 가장 적었다.

국민은행의 판매잔액은 7조263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4.3%가 증가했다. 타 은행과 달리 사모펀드 사태를 피해간 국민은행은 오히려 올해 사모펀드 판매가 활발히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듯 국민은행을 제외한 은행들은 사모펀드 판매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은행과 증권사에서 팔려나간 사모펀드들이 대규모로 환매가 중단되면서,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판매사가 고객과 접점이 된다는 점에서, 은행과 증권사의 내부통제, 상품 선정 과정, 리스크 관리, 판매 과정에서의 문제가 크게 지적됐다. 특히 증권사보다 안정적인 상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이 많이 몰린다고 여겨지는 은행의 경우 유독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가 부각됐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선제적으로 신규 사모펀드 판매를 중단했으며,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DLF사태 여파로 올해 판매를 중지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지난 3월 DLF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기관제재로 과태료 부과 및 6개월간 사모펀드 신규 판매 중지 처분을 통보받은 바 있다.

다만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징계효력이 종결된 후에도 곧바로 펀드 판매를 재개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지난 9월 4일부로 제재 기간이 모두 끝났다. 하나은행은 지난 6월 1일 행정법원에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신청이 받아들여 지면서 지난 7월부터 펀드 판매가 가능해졌다.

하나은행 본점. 사진=하나은행
하나은행 본점. 사진=하나은행

◆ 재정비 끝낸 하나은행 “자산 확실한 상품만 판매”

당초 하나은행이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이유는 경영상의 문제였다. 신규 사모펀드 판매가 제한되면 은행의 이익에 타격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신중한 모습을 보이며 지난 19일에서야 펀드 판매를 재개했다.

하나은행은 안전하게 펀드를 판매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자산 실재성 확인이다. 펀드 자산을 직접 확인함으로써 깜깜이 운용 등의 문제를 차단하고 안정성을 높인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모펀드의 경우 복잡한 구조로 자산을 자산 실재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실제로 옵티머스자산운용처럼 투자자들에게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이고선 부동산 PF사업, 비상장 기업의 사모사채 등에 투자하며 사기 운용을 자행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에 하나은행은 자산 불확실성 문제를 걷어내는 장치를 마련하고, 위축된 사모펀드 판매 시장에 발 빠르게 뛰어들었다. 아울러 펀드 판매 이후에도 상품제안서 내용에 따라 운용이 잘 되고 있는지 3개월에 한 번씩 점검해 운용보고서를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상품은 하나금융그룹의 청라 하나글로벌인재개발원 선순위 대출채권 투자 상품이다. 하나금융의 관계사인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상품을 운용한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은 자산 실재성을 확인한 후 상품으로 만들었으며, 하나은행 역시 IPS부(Investment Product Service)에서도 자산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펀드 자산 확인은 IPS부에서 담당한다.

향후 같은 그룹 내 관계사 자산운용사 외에도 다른 자산운용사 상품 역시 자산을 꼼꼼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계획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첫 상품으로 하나글로벌인재개발원 관련한 상품을 선보였다. 앞으로 부동산이나 실체가 있고, 권리 관계가 명확한 상품 위주로, 자산이 확인된 상품을 선보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룹사 자산운용사 외에도 다른 자산운용사 역시 실사 보고서를 요청해서 확인하고 검증을 할 방침이다”며 “실사 보고서를 보고 현장검증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현장검증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하나은행이 펀드판매 재개를 알리면서 다른 은행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나은행처럼 상품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판매를 재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아직 구체적인 판매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시장상황이나 투자자산, 운용사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 안정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사모펀드를 판매할 예정”이라며 “판매 재개 시기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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