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주택 가격이 오르는 것도 모자라 전세 매물마저 품귀 현상을 보이는 데 따른 단기간 공급 확대 정책이다. 24번째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2년 동안 11만4000호를 매입임대 방식으로 공급해 전세난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산층 가구도 거주할 수 있는 30평대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2025년까지 6만3000호 늘리고, 이후에는 매년 2만호씩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택한 방식은 ‘매입임대’다. 이미 지어졌거나 지어질 예정인 주택 물량을 정부가 사들여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공실 상가와 호텔, 오피스 등도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매입임대하겠다고 해 이번 부동산 대책은 소위 ‘영끌’ 대책으로도 불린다.

시장의 반응은 역시나 차갑다. 기본적으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서울에 공급되는 물량이 적고, 전세 수요가 몰리는 아파트 공급 대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공급 물량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부는 아파트는 단기간 공급을 늘릴 수 없다는 점과 더불어 아파트 못지않은 품질의 중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 아파트 수요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해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미래 주거추진단장은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가 본인은 서울 강동구에 소재한 전용면적 84.63㎡의 래미안 솔베뉴 아파트 전세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17억원대로, 골프장, 피트니스센터 등 체육시설과 공용 사우나, 독서실, 도서관, 연회장 등을 갖췄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가 수십개의 정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집을 가진 사람들은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보고 있는데, 그런 집을 가진 위정자들이 설익은 정책을 내놔 시장을 흔들어놓고는 인식을 바꾸라는 식으로 국민을 가르친다. 집값을 잡겠다고 23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내놓더니 결국은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게 해주겠”단다. 헛발질도 이런 헛발질이 없다.

더 가관인 것은 관광호텔을 주거용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상가나 관광호텔의 공실을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전국에 1만3000호를 시세의 50% 수준으로 2022년까지 공급할 계획을 세웠다. 서울에 배정된 물량은 5400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내 1호 호텔 개조형 임대주택인 ‘숭인동 청년주택(영하우스)’를 언급하며 “굉장히 반응이 좋다”고 치켜세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호텔방은 매우 좁다는 점에서 주거용으로 리모델링 했을 때 일반적인 원룸보다 더 좁거나 원룸 정도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관광호텔은 유흥시설 인근에 위치하고, 곳에 따라 창문이 없는 곳도 허다하다는 점에서 질 좋은 주거 공간이 될 수 없다.

당장 ‘21세기형 쪽방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호텔 등 숙박시설을 리모델링한다고 하더라도 3인 이상 가구는 언감생심, 세간살이를 이고 살아야 한다. 사실상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이는 ‘21세기형 쪽방촌’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호텔방을 전월세 주택으로 돌린다는 듣도 보도 못한 호텔 찬스로 혹세무민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다”고 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집을 사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폐업한 호텔방을 고시원 수준의 월세방 여관으로 만들겠다는 정신 나간 정책도 이제 더 이상 눈 뜨고 못 보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실제로 김 장관이 치켜세웠던 숭인동 청년주택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지하철 1호선 동묘역 인근 베니키아 호텔을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전환, 지난 4월까지 16~22㎡(약 5~7평) 200실 정도에 대해 대학생 및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입주 신청을 받았는데, 방 구조가 호텔 객실 구조와 다르지 않고, 식사, 청소 대행 서비스 등 추가 부담금이 많아서 당첨자 207가구 중 180가구 정도가 계약을 취소했다.

국토교통부‧서울시의 2017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신주택 보급률은 95.9%에 불과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100%를 넘지 못했고, 자가 거주 비율은 42.9%로 전국 평균 57.7%보다 15%p 낮았다. 자가 보유 비율은 48.3%에 불과했다. 결국 누군가가 여러 채 갖고서 시장에 안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여러 채 갖고 있는 주택을 안 내놓을 수 없게끔 정책을 설계해서 시행하면 될 일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된다.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부동산 시장 질서의 회복일 것이다. 그래야 서민들도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혼탁하고 어지러워진 원인을 정부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하다. 헛발질도 이제 지겹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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