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국민 38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다. 보험사는 ‘팔수록 적자’라며 징징거리고 가입자는 ‘돈 먹는 하마이고 불공평한 보험’이라며 원성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이 이렇게 된 이유는 ‘밑 빠진 독’처럼 보험금 누수로 인해 손해율이 악화되었고 그 결과 보험료가 매년 크게 인상되어 ‘돈 먹는 하마’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은 낸 보험료 보다 지급한 보험금이 더 많아서 해마다 적자가 발생하였다. 위험손해율 (지급보험금을 수입보험료로 나눈 비율)이 지난 2018년 121.2%이었는데, 지난해 말 133.9%까지 상승했다. 보험사들이 보험료 100원을 받아 보험금으로 134원을 가입자에게 지급한 셈이다. 때문에 보험사들은 손해율을 앞세워 때만 되면 보험료를 인상해 왔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일부만 혜택 보는 상품이고 과도한 보험료 인상이라며 불만이 많았다. 10명 중 2~3명만 혜택을 보고 나머지 7~8명은 진료를 받지도 않으면서 고액으로 인상된 보험료만 꼬박꼬박 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자들은 수입이 단절된 상황에서 급격히 인상된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중도에 해지할 수 밖에 없다. 보장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계약을 포기하므로 실손보험은 보험사가 말한 ‘100세 보장’이 아니고 지속 가능한 보험도 아니다.

실손보험이 이렇게 된 이유는 줄줄 새는 보험금(보험금 누수) 때문인데, 당초부터 상품의 잘못된 설계와 가입자들의 무분별한 의료쇼핑, 병의원의 비급여 과잉진료에서 기인되고 있다.

즉, ① 비급여는 의료기술 발달로 갈수록 늘어나는데, 실손보험은 모든 비급여를 보장하므로 시작부터 적자가 발생한다. ②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판매를 위해 소액치료비를 모두 지급하도록 상품을 설계해서 ‘모든 게 공짜’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었고 그 결과 의료 쇼핑으로 이어졌다. 보험은 소액 치료비가 아니라 어쩌다 한번 발생한 사고로 경제적 어려움이 필요할 때 고액의 보험금 지급으로 원상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③ 또한 병의원 진료실적과 상관 없이 동일 연령에게 동일 보험료를 적용해서 ‘실손보험은 못 먹는 게 바보’라는 인식을 심어 의료 쇼핑이 늘어 났다. ④ 더구나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 항목이 급여로 전환되면서 돈벌이가 궁해 진 병의원들이 ‘부르는 게 값’인 도수치료, MRI, 백내장 치료(다초점렌즈 등), 한방 추나요법 등의 비급여를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공짜라고 꼬득여 진료를 남발해서 ‘과잉 진료’라는 말이 생겼고, 보험금 청구로 이어져 손해율이 높아졌다. ④ 여기에 비급여 치료재료대 인상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방법도 동원되어 치료비가 크게 부풀려 졌고 ⑤ 이 과정에서 병의원들이 환자에게 비급여 치료의 필요성과 비용을 사전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거나 소홀히 설명하여 환자들이 진료비를 바가지 쓰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이런 문제점을 보험업계와 의료업계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고, 정부(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도 업계간 이해 대립에 휘둘려 근본적인 대책 없이 보여 주기와 급한 불끄기에만 급급해 왔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금융위와 보험업계는 2017년 4월에 ‘착한 실손보험’을 출시하였지만, 보험료 안정화에 실패했다. 기존 가입자(구실손, 표준화실손 가입자)들에게 ‘착한 실손보험’으로 전환을 권유하였지만, 실제로 ‘착한 실손보험’이 아니었고 유리한 점도 딱히 없어 굳이 전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갈수록 악화되자 일부 보험사들은 판매를 중단하거나 가입연령 제한, 심사 강화에 나섰고, 급기야 금융위는 보험료차등제와 자기부담금 인상을 골자로 한 실손보험을 내년 상반기 중 적용할 것이라고 국회 정무위에 보고했고, 지난 10월 27일에 보험연구원을 통해 공청회를 열었다. 제시된 의견을 종합해서 상품구조 개편방안을 최종 확정해 11월 안에 발표한다는 것이다. 착한 실손보험을 출시한 지 불과 3년만에 재 수술하는 것이므로 금융위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꼴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실손보험을 살리려면 새는 돈부터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험금 누수를 막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금융위 발표 내용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다음에 제시한 대책도 병행,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가입자의 병의원 이용실적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부과해야 한다. 가입자별로 공정하게 보험료를 적용해야 불만이 줄고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을 방지하여 보험금 누수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6년 4월에 금소원 보도자료를 통해 ‘보험료 차등제’ 도입을 주장 하였고 ‘비급여 과잉진료 ‘파파라치 제도’를 도입할 것도 제안하였다.

둘째, 실손보험 상품의 구조적 변경이 필요하다. 비급여를 제한하여 가입 이후 새로 설정된 비급여를 보장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이것이 어려우면 보험료 산출 시 ‘안전 할증’을 더 크게 적용해야 한다.

셋째, 소액치료비(예시 : 10만원, 50만원, 100만원 이하)를 보장대상에서 과감하게 제외(약관 변경)해야 한다.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를 억제하여 보험료 인하효과를 거둘 수 있고, 나아가 소액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대한 업계간 불협 화음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몰하는 배를 살리려면 무거운 짐을 바다에 던져 배를 가볍게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넷째, 비급여 과잉진료를 줄이기 위해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진료를 현저히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항목의 급여 전환과 비급여 표준화를 적극 추진하고, 비급여 치료대 가격 평준화 및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하며, 비급여 과잉 진료 파파라치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병의원이 환자에게 비급여 치료의 필요성과 비용에 대하여 사전에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비급여 대상 중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비급여 대상을 제공하려는 경우 환자 또는 환자의 보호자에게 진료 전 해당 비급여 대상의 항목과 가격을 의무적으로 직접 설명해야 한다.

여섯째,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심사를 강화해서 보험금 누수를 막아야 한다. 보험금이 소액 다건이라는 이유로 심사 없이 지급하면 보험금을 마구잡이로 청구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일곱째, 심평원은 갈 곳 없는 비급여 과잉진료 민원을 신속하고 적극 해결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존 가입자들에게 새로운 실손보험으로 전환하도록 유인을 제공 하고 적극 알려야 한다. 보험료 차등제 도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올바로 알려 공감을 구해야 하고, 보험료 10% 인하만로는 부족하므로 소액치료비 면책 금액을 과감하게 높여 30% 이상 인하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갱신시부터 적용하게 하거나 새로운 상품으로 전환하도록 적극 안내할 필요가 있다.

실손보험은 지속 가능한 보험이 아니므로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판매 시 ‘100세 보장’이라고 현혹하지 말아야 한다. 금감원은 실손보험 손해율이 제대로 산출된 것인지 여부를 검증해서 소비자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야 한다.

실손보험은 돈 내는 보험가입자가 주인이므로 주인 중심으로 정책이 결정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보험사나 병의원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벌이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속내를 감춘 채 황당한 이유를 내세워 물타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금융위가 명확히 알고 있다면 실손보험을 가입자(환자)를 위한 보험, 지속 가능한 보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얼렁뚱땅 졸속으로 만들거나 업계간 이해 대립에 휘둘려 보여 주기와 급한 불끄기를 반복하지 말고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행여라도 가입자 편익을 저해하는 주장을 한다면 당장 호출해서 쓴 소리를 해서라도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

소비자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하다. 즉, 보험을 안심하고 가입해서 보험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도록 앞장서서 일하고 성과를 올리는 것이 금융위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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