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도 본전”, 연임에 어깨 무거워진 이동걸 회장
혁신성장·구조조정·조직 혁신 강조…”하던 일은 마무리한다”
기업 구조조정부터 코로나19 금융지원, 뉴딜 펀드에 앞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연임의 첫발을 뗐지만, 기업 구조조정부터 코로나19, 뉴딜 금융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업계에서는 향후 이 회장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1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산업은행 회장 임기는 3년으로, 2017년 9월 11일 처음 취임한 이 회장은 2023년 9월 10일까지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이날 이 회장은 전 임직원에게 서신을 보내 ‘노마십가(駑馬十駕)’의 겸손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미래 산업 건설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가자는 다짐을 전달했다. 노마십가는 둔한 말도 열흘 동안 수레를 끌면 천리마를 따라간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 산업은행 회장 연임 배경은?

이 회장의 연임에 눈길이 쏟아지는 이유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1954년 산업은행이 설립된 이후 연임 사례는 단 세 건에 불과했는데, 마지막 연임 사례도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이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산업은행 수장의 평균 임기는 18개월로, 3년을 꽉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까닭에 이 회장이 3년 임기를 무사히 채우고도 추가로 3년의 연임을 하게 된 배경에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청와대는 이 회장이 앞으로 3년간 산업은행을 이끌 적임자로 보고 연임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그 어느 때보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수장교체보다는 이 회장이 계속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업무 연속성을 고려하면, 임기 내에 결실을 맺지 못한 기업 구조조정을 이 회장 손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려는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의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기간산업안정기금과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을 위한 SPV를 설립해 운영하는 등 관련 업무도 일관적으로 추진하려는 계획도 깔려있다. 이러한 배경 탓인지 산업은행 수장 자리에 대한 하마평도 없이 이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하지만 이 회장은 마음 편히 연임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6월 17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는 “충분히 피곤하다”며 연임에 대해서 선을 긋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왕관의 무게가 무거워지자 득보다는 실이 많은 연임이라는 우려 섞인 평이 나온다.

흔들리고 있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또다시 총대를 멘 이 회장은 깊은 고심에 빠지게 됐다. 지난 임기 동안 이 회장은 금호타이어와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한국GM, 동부제철 등 구조조정을 완수했으나, 여전히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해양, 두산중공업, 쌍용자동차 등 매듭지어야 할 현안이 많다.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면서 구조조정 작업의 난이도가 더 높아졌는데 이 회장이 과연 또한번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다시 닻 올린 이동걸 號…기업 구조조정 마무리·뉴딜펀드 조성 앞장

이 회장은 지난 11일 기업 혁신성장과 기업 구조조정,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3년 임기 동안에는 기업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신산업·신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통해 혁신성장을 주도하고 산업은행의 경쟁력 제고 및 열린 조직으로의 발전을 도모할 전망이다.

우선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건은 아시아나항공 건이다. 이 회장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날인 11일 금호산업은 HDC현대개발산업에 M&A 계약 해지를 알렸다. 지난해 11월 HDC현산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12월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2조50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되자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재실사를 요구했으며 M&A는 난항을 겪었다. 지난달 26일 이 회장은 정몽규 HDC현산 회장을 만났지만 끝내 계약은 무산되고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관리체제로 돌입하게 됐다.

채권단은 기안기금 2조4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를 추진한 뒤 재매각에 나서기로 했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추가 자구계획은 외부 컨설팅 결과에 따라 노선 조정이나 내부 원가 절감, 조직개편을 등을 들여다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HDC현산과 법적공방도 예상된다. HDC현산은 계약 무산의 책임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에 돌리고 있는 만큼 계약금 2500억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전망이다.

그 밖에도 절차를 밟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마무리 짓고 KDB생명의 매각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인도의 마힌드라그룹이 지분 매각을 고려하고 있는 쌍용자동차는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 중이며 두산중공업의 경영정상화 등도 끝내야 할 숙제다.

한국판 뉴딜에서도 산업은행은 중책을 맡았다. 특히 2025년까지 20조원 규모의 뉴딜펀드 조성에 앞장선다. 정부는 13조원의 민간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에서 3조원,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서 4조원을 출자해 모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정부는 국민 등의 투자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후순위로 참여하도록 했다.

다만 산업은행 노조는 기업 구조조정과 기간안정기금 등에 이어 뉴딜펀드 업무까지 떠맡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노조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산업은행의 후순위 참여로 인한 손실을 비롯해 펀드 조성과 판매, 관리 등의 업무 전가에 대해 정부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산업은행으로서는 뉴딜펀드 업무를 주도하는 것이 큰 부담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성장금융사모투자합자회사(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가 최대주주로 있고 한국증권금융, 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등이 주요주주로 있는 한국성장금융과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정책형 뉴딜펀드 실무준비단’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파이낸셭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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