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상품은 보험료 책정 방법에 따라 비갱신형 보험과 갱신형 보험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갱신형 보험은 처음 보험료를 그대로 납입기간동안 내는 보험으로, 오래 전 상품은 대부분 이에 해당되고, 현재도 비갱신형 보험이 판매되고 있다. 반면, 갱신형 보험은 일정기간(보통 1년, 3년, 5년)마다 보험료를 재산출해서 책정하는 보험인데, 최근에 출시, 판매되는 상품 중 갱신형 보험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갈수록 비갱신형이 적어지고 갱신형 보험이 많아지고 있으므로 소비자들은 갱신형 보험을 잘 알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갱신형 보험은 가입 초기에는 비갱신형에 비해 보험료가 저렴하므로 보험사(보험설계사)들이 판매하기 수월하여 적극 추천하고 많은 소비자들도 선호한다. 더구나 평균수명 연장으로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생존기간이 늘어난 만큼 노후 의료비가 걱정(부담)이므로 보험사들은 100세 보장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여 판매한다. 실손의료보험, 암보험, 건강보험, 어린이보험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가입 후 특정 기일이 경과된 후부터 보험료가 비갱신형 보다 비싸지기 시작하고 그 후부터는 급격히 인상된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이 갱신형 보험을 가입하려면 갱신형 보험의 실체를 잘 알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갱신형 보험은 다음과 같은 결함으로 지속 가능한 보험이 아니고 소비자를 위한 보험이 아니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보험이다.

첫째, 갱신형 보험은 소비자가 보험을 합리적으로 구매하기 어렵다. 보험 가입 시 장래 납입해야 할 총 보험료와 받는 보험금을 비교해야 하는데, 갱신형 보험은 장래 납입해야 할 보험료를 전혀 알 수 없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 가입 당시 매년 20% 씩 갱신보험료가 오른다는 설명을 들었다면 아무도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갱신할 때마다 보험료가 크게 인상되어 계약 유지가 사실상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암보험처럼 위험률이 증가하는 경우 보험료가 계속 인상되고 보험기간이 끝날 때까지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므로 계약 유지가 어렵다. 회사원 K씨가 가입한 C사의 1년짜리 보장성보험은 가입 후 5년만에 갱신보험료가 무려 3배가 뛰었다. 이처럼 갱신보험료가 크게 인상되고 지금도 여전히 인상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보험료가 싸다”는 보험사(보험설계사) 말에 현혹되어 갱신형보험을 쉽게 가입 하지만, 갱신 시마다 크게 인상된 보험료를 통지받고 나서야 속은 것을 알게 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내다가 보험료 납입이 감당하기 어려우면 그제서야 스스로 포기한다.

갱신보험료 폭탄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가입자들은 갱신형보험의 단점을 뒤늦게 깨닫고, ‘향후 절대로 갱신형 보험을 가입하지 않겠다’고 작심하는 한편, 이런 보험을 판매하도록 허용한 당국을 크게 원망한다. 그래서 “세금폭탄 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갱신보험료 폭탄’이라는 말이 나온다.

갱신형 보험은 가입 후 갱신보험료가 크게 인상되고 있어 가입자들 원성이 자자하고, 보험료 부담으로 중도에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계속 보장이 어렵다. 특히, 고령층은 수입이 단절된 상태에서 갈수록 급격하게 인상된 갱신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의료비 지출이 가장 많은 시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셋째, 갱신형 보험은 보험사들이 선호하는 보험이므로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위험 인수의 책임을 보험사가 가입자들에게 전가하는 보험으로 보험사 입장에서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가입자들은 보험료 부담을 감수해야 하고, 보험료 내기가 버거우면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보험이다.

갱신보험료의 폭탄으로 보험사에 억울함을 하소연하지만, 보험사는 “인상된 보험료를 감수하고 보험을 유지하든지, 아니면 해지하라”는 것이고, “갱신형은 그런 것이라 어쩔 수 없다”며 알아서 하라고 퉁명스럽게 쏘아 붙인다. 금융소비자원에도 갱신보험료 인상으로 억울하다는 상담전화가 종종 접수되고 있다.

넷째, 갱신형 보험은 가입자가 질병이나 사고로 보험금을 받은 경우 동일한 위험을 계속 보장 받을 수 없다. 보험사들은 계약을 갱신할 때 거절하거나 조건(특정한 급부의 보장 제외, 보험금 삭감, 보험료 할증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갱신형보험은 지속 가능한 보험이 아니고 소비자를 위한 보험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갱신형 보험이 당초부터 지속 가능한 보험이 아니고 소비자를 위한 보험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험사들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이를 소비자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상품판매에 방해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 금융위도 입을 다물고 모르쇠하고 있다.

미국 보험사에도 보험료 갱신제도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갱신형 보험을 마구잡이로 판매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험사와 계약자간 계약체결 시 갱신 후 보험료의 최대값을 약정하는 경우가 많다. 갱신 시 최대보험료가 사전에 설정되기 때문에 갱신 보험료의 인상수준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약정이 없기 때문에 갱신시점에 보험사가 손해율을 그대로 보험료에 반영해서 보험료가 일방적으로 크게 인상되고, 그 결과 계약자 반발이 빈번한 것이다. 더구나 국내 보험사들은 적정 보험료를 산출하고도 타사와의 경쟁이나 판매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험료를 의도적으로 낮게 책정하여 가입 후 손해율이 올라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갱신형 보험이 유리한 경우도 있다.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크거나 보장이 갑자기 필요한 경우엔 갱신형이 괜찮고, 저연령층도 보험료가 저렴하므로 갱신형이 유리하다. 조기에 해지하거나 단기간만 보장 받고 끝낼 경우에도 갱신형 보험이 유리하다. 반면, 수입이 있는 활동기에 보험료를 더 내서 은퇴 후 수입이 단절되더라도 장기간 보장 받는 보험은 비갱신형이 낫다. 특히 매년 인상되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경우에도 비갱신형이 낫고, 총 납입보험료는 갱신형보험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훨씬 저렴하다. 그러므로 갱신형 보험을 가입하기 전에 가입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가족력), 경제적 상황(수입, 소득)을 고려하여 유리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당장의 돈벌이와 실적 달성을 위해 갱신형보험을 남발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 으로 판매해야 한다. 갱신형보험은 보험사고와 관련된 위험률 통계가 부족하거나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통계가 미흡하여 보험료 계산이 용이하지 않을 때만 제한적으로 판매해야 하는 보험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보험에 대한 신뢰와 이미지가 추락된 상황인데, 아무도 고치려고 나서지 않고 쓴소리하는 자도 없으니 안타깝다.

보험사들이 갱신형 보험 판매를 스스로 제한해야 하지만, 이를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금융위, 금감원이 나서야 한다. 보험사들에게 갱신형 보험의 과도한 판매를 규제하고 갱신형으로 100세까지 보장받는다는 광고도 제한해야 한다. 또한 갱신형 보험 판매 시 소비자들에게 비갱신형 보험과 총 납입보험료를 반드시 비교, 설명하도록 의무화하고, 미국처럼 갱신보험에서 갱신 시 최대 보험료를 설정하게 해서 계약자가 향후 보험료 인상에 대해 한도를 미리 알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손해율이 낮은 보험은 갱신보험료를 즉시 인하하도록 조치하고, 보험료 인하 여력이 있는데 갱신보험료를 오히려 인상하는 보험사가 없어야 한다. 반대로 손해율이 높다면 판매를 중단하거나 신상품을 출시하게 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는 책상머리에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 대상으로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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