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우리 속담에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말이 있다. 교각살우(矯角殺牛)가 그것인데,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재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걱정이다. 보험설계사 고용보험 적용 추진이 그것이다.

정부(고용노동부)는 2025년까지 모든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14일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판 뉴딜’ 계획의 후속 대책이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형태근로자(특고직),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를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에 적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관련법 개정도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칭이 이상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아니라 ‘전 노동자(근로자) 고용보험’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아닌 사람(예 : 학생, 자발적 실업자, 은퇴자 등)은 고용보험과 무관하므로 ‘전 국민’이라고 한 것은 당초부터 과장된 용어다. 호도하지 말고 ‘전 노동자 고용보험’으로 바꿔서 사용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지적하려는 것은 특고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험설계사들인데, 현재 약 40여만명이 보험사 또는 법인보험대리점(GA) 등에 소속되어 개인사업자로 일하고 있다. 보험설계사의 고용보험 의무가입은 지난 2018년 시작됐는데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보험사와 설계사간 시각이 다르고 같은 설계사라도 상황에 따라 이해가 엇갈려 합리적인 대책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특고직의 고용보험 확대를 다시 추진하면서 보험업계도 도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험업계는 정부의 세부 추진 계획이 나오면 그에 맞춰 대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속내는 보험업계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인데, 보험설계사의 고용보험 가입을 놓고 지금도 보험사와 GA는 물론이고 설계사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 GA, 보험설계사들이 정부의 특고직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에 대하여 환영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효성이 없으면서 고용보험료만 강제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보험사나 GA는 소속설계사가 내야 하는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 실업급여의 보험료율은 지난 해 10월 1.3%에서 1.6%로 인상되었다. 특히 중소형 GA들은 재정이 취약하므로 고용보험료를 새로 부담하기 버거운 실정이다.

이 상황에서 고용보험이 강제로 도입될 경우 보험사나 GA들은 추가 부담하는 비용만큼 절감해야 하므로 소속 저능률 설계사를 해촉(위촉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해당 설계사들은 대량 실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실제로 월소득 100만원 이하 저능률 설계사가 전체 설계사의 40%에 달하는데, 이들이 우선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보험설계사들은 소득 수준과 여건에 따라 고용보험 의무가입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갈린다. 일부 고소득 설계사는 실업을 우려하지 않으므로 고용보험에 관심이 없는가 하면, 일부는 소득 노출과 이로 인해 추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걸림돌이라는 자도 있다. 반면, 저능률 보험설계사들은 가뜩이나 수입이 적은데 고용보험료 절반을 별도 부담해야 하니 반대한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일부는 해촉 당했을 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니 일부라도 고용안정에 도움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보험설계사 고용보험 적용을 둘러싼 보험사, 보험설계사들의 입장은 이해관계에 따라 각양각색인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누구를 위해서 고용보험을 도입, 적용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라는 점이다. 겉으로는 보험설계사를 위해 도입한다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보험설계사들이나 보험사, GA가 요청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는 사실이다.

특고직 고용보험 적용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므로 공약을 실천해서 공약달성율을 높이려고 정부가 나서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아니면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노동법 비준을 받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어떤 의도로 추진하는 것인지 정부가 밝힌 적이 없으므로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의도가 무엇이든지 고용보험의 대상자인 보험설계사들이 주인공이므로 영업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실태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설계사 인원이 40여만명이 되지만, 신참 설계사 3명 중 2명이 1년 이내 그만둔다. 2019년에 생보사 설계사 시험에 10만3000명, 손보사 설계사 시험에 13만4000명이 응시했다. 1년간 총 24만명이 설계사 자격시험에 응시했는데. 이들 신참 설계사는 대부분 1년도 버티지 못했다. 등록 후 1년 이상 일하며 모집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13월차 정착률’인데, 전체 생보사의 평균 정착률은 38.2%에 불과했다. 3명 중 2명이 1년 안에 떠난 것이다. 손보사들은 생보사 보다 정착률이 조금 높지만, 크게 다를 바 없다.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사나 GA로부터 “고소득 전문직이 되게 해 주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믿고 보험 영업에 나섰는데, 현실은 처참하다. 보험사, GA들은 미사여구의 말로 현혹하며 설계사들을 마구잡이로 도입하지만, 고소득 보장이니 전문가 육성은 커녕 단기간에 연고계약 모집을 통해서 단물만 빼 먹고 버리는 행태를 반복해 왔고, 이런 행태는 지난 수십년간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설계사는 ‘1회용 소모품’으로 전락되어 ‘대량 도입, 대량 탈락’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 말은 오랫동안 거부감 없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설계사 응시 기피와 코로나19로 인해 도입 자원이 고갈되어 ‘대량 도입’이란 말이 사라졌다.

정부가 앞장서서 보험설계사의 고용안정을 위해 고용보험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의도(속내)가 궁금하고 실효성이 의문이므로 논란이 되는 것이다. 고용보험 의무가입은 설계사들이 자발적으로 원했던 것이 아니었고, 고용 안정은 커녕 설계사들이 실직으로 내 몰릴 우려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용보험 강제 도입으로 인한 설계사 실직은 그 동안 수차례 지적되어 왔다. 결국, 설계사를 위해 도입하는 제도가 오히려 설계사를 죽이는 제도로 전락될 수 있는 것이다. 보험사, GA는 물론 일부 설계사들까지 정부의 고용보험 의무가입을 반기지 않는 이유다.

설계사 고용보험은 누구를 위해 도입하려는 것인가? 설계사인가, 아니면 정부인가? 행여라도 설계사들의 고용 안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공약 실천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이야 말로 정부의 ‘갑질’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설계사 고용보험 도입하려는 속내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이를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해서 설계사들의 일자리가 실제로 대거 날라가거나 설계사들에 대한 실업급여가 과다 지출되어 고용보험 재정 고갈이 발생한다는 말이 나온다면 제도 도입이 실패한 것이고, 그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하며 도입 관련자를 처벌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지 말아야 하고, 본질에 맞게 설계사를 위한 고용보험이 되어야 한다. 정책입안자들은 현장의 실태를 모른 채 책상머리에서 펜대 놀음으로 “고용 보장의 사각지대 최소화”라는 얄팍한 명분으로 보여주기로 헛발질할 일이 아니고, 미사여구로 포장해서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보험설계사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에 따른 부작용은 이미 수차 지적되었고, 도입하더라도 실효성이 불확실하며 우려되는 상황이므로 도입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새겨 들어야 할 것은 설계사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면 도입할 이유가 없고, 제도를 불가피하게 도입할 경우에도 일방적, 강압적인 추진이 아니라, 현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시차를 두어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설계사들이 실제로 혜택을 보는 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제도 도입으로 인해 설계사들이 일자리에서 쫓겨 나는 일이 절대로 없었으면 좋겠다. 정부와 보험사, GA들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답은 현장에 있으니 정부는 책상머리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현장을 방문해서 설계사들을 직접 만나서 의견을 충분히 들어 보고 실태를 제대로 파악해 보시라. 그리고 나서 결정하시라.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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