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중단 펀드 투자자들에겐 투자금 ‘선지급’ 하는데
키코 피해 기업 배상은 ‘거부’, 우리은행만 분쟁조정안 ‘수용’
신한·하나·대구銀 “은행협의체에는 참여”, 다른 은행도 참여 여부 결정키로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 22일 키코사태 재수사를 요청하고자 경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사진=연합뉴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 22일 키코사태 재수사를 요청하고자 경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권에서 고위험 투자상품과 관련한 사건·사고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과 상품을 판매한 은행권 사이에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외치며 은행권에 책임 있는 모습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태 수습 등과 관련해 이견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일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대구은행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마련한 키코(KIKO) 피해기업에 대한 분쟁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금감원은 그동안 은행들이 분쟁조정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기한을 총 5번이나 연기해 줬지만 결국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배상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12월 금감원 분조위는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비율을 심의해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에 기업별로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신한은행(150억원)의 배상 규모가 가장 컸고, 우리은행(42억원)과 산업은행(28억원), 하나은행(18억원), 대구은행(11억원), 씨티은행(6억원)이 뒤를 이었다.

이들 은행 중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지난 2월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여 배상을 진행했다. 이에 나머지 은행들도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나 지난 3월 씨티은행과 산업은행을 시작으로 지난 5일 신한은행, 하나은행, 대구은행 모두 배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피해 기업은 물론 금감원의 실망도 커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2월 대승적 차원으로 분쟁조정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5개 은행은 법률적인 검토 끝에 분쟁조정안을 불수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2013년 대법원에서 키코는 불공정 계약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으며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시효 역시 완성됐다. 이에 은행들은 법적 의무가 없는 키코 사태에 대해 배상을 진행할 경우 주주들 사이에서 배임 문제가 제기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라임자산운용의 환매중단 펀드 등 지난해부터 연이어 발생한 사모펀드와 관련해서는 선지급안을 마련해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5일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라임펀드 투자자에게 투자금 일부를 선지급한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CI무역금융펀드 투자자에게 투자금의 50%를, 우리은행은 플루토 FI D-1호, 테티스 2호 투자자에게 투자금의 약 51%를 선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나은행도 지난 4월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50%를 가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IBK기업은행이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 투자금 50% 가지급을 결정했다. 물론 먼저 지급한 투자금은 향후 분쟁조정 결과 및 자산 회수율에 따라 재정산 된다.

이 같은 펀드 투자자들에 대한 조치는 금감원이 강조해 온 ‘사적 화해’에 따른 것이다. 금감원은 그동안 키코 및 사모펀드 사태 등과 관련해 배임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판매사들이 책임을 지는 행위는 사적 화해에 따른 것으로 보고 배임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모습이 결과적으로 은행에도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사적 화해 논리가 키코에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사모펀드 사태의 경우 투자금 회수 및 분쟁조정까지 시일이 걸릴 것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고객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 차원의 결정을 내린 것이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키코의 경우 배상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제 남은 것은 분조위에 참여하지 않은 145개 기업에 대한 자율조정이다. 키코 상품을 판매했던 은행들은 은행협의체를 이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자율조정에 나선다.

우리은행을 비롯한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대구은행 등은 은행협의체에 참여한다. 또 금감원은 12일 KB국민·기업·NH농협·SC제일·HSBC은행 등 분조위 대상이 아니었던 은행들이 은행협의체에 참여할 것인지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간담회를 진행한다.

은행협의체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산업은행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별도로 의사를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은행은 아직 은행협의체 참여 여부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나 추가 배상 대상 기업 39곳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보상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나머지 기업들에 대해 각각의 건별로 검토를 해보고자 은행협의체에 참여하기로 했다”며 “은행협의체에 참여해 자율배상에 성실히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율조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를 제기한다. 이미 금감원 분조위가 제시한 분쟁조정안이 불수용 된 상황에서 자율조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겠냐는 주장이다.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은 “금감원이 추진한 분쟁조정안을 은행들이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정면돌파 하려고 한다”라며 “지금 은행들은 키코가 사기상품이 아니라는 대법원판결에 따라 배상해줄 수 주장을 한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공평한 판단이 아니었고 금감원은 그동안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만 들여다봤다”고 밝혔다.

이어 “자율조정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에도 호소하고 키코 상품 공정성에 대해 금감원에 수학적인 검증을 요청할 계획이다”며 “키코 판매 은행 전체에 대한 협의체 구성과 금감원의 조사자료를 수사기관에 넘길 것을 요구할 것이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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