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출 지원에 커지는 ‘건전성 리스크’
“대출 멈출 수도 없고”...신한은행 일부 전세대출 중단 검토했다가 철회
무디스 “코로나19 장기화 시 한국 시중은행 NPL비율 상승”

여의도 금융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의도 금융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은행권의 대출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대출 잔액이 급증하면서 향후 은행 건전성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은행들은 예기치 않은 금융지원에 나서야 했다. 기업과 자영업자 등의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이 오자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자금공급에 앞장설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은행권 역시 코로나19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가운데 대출 확대로 인한 건전성 리스크까지 안게 돼 고민이 많다.

◆ 가파른 대출 증가율, 신한은행에서 감지된 시그널

최근 신한은행은 일부 전세자금대출 상품 신규 공급 중단을 검토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 11일 신한은행이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의 전세자금대출 신규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금융소비자들에게서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신한은행은 검토 하루만인 지난 12일 계획을 서둘러 철회했다.

신한은행이 이례적으로 일부 전세자금대출의 신규를 중단하려고 했던 것은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고 코로나19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기업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가계대출까지 빠르게 증가하자 전세자금대출 공급을 줄이려고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신한은행은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지난해 말에 비해 13.7%가 증가하는 등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사실 대출 급증 현상은 신한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가계대출을 비롯해 기업대출까지 전반적인 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연초까지만 해도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와 기업대출에 대한 부실 우려로 연간 대출자산 성장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은행들의 대출 잔액은 빠르게 늘고 있다.

당초 은행권에서 결정된 올해 대출자산 평균 성장 목표치는 4% 초반 수준이었으나, 이미 해당 목표치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누적 신규 원화대출 잔액은 1189조681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1140조551억원)과 비교했을 때 4.35%(49조6264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대출이 증가하면 당연히 건전성 리스크도 동반된다. 특히 대출 중에서도 중소기업 대출 등이 부실에 취약한데, 코로나19 관련 대출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지금 은행 문을 두드리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도 은행 입장에서는 걱정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실물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대출 공급에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22일 진행된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금융권의 자금공급 기능을 적극적으로 맡을 것을 주문했다.

윤 원장은 “실물경제가 숨통을 틀 수 있도록 충분하고 신속한 금융지원을 통해 현장을 지원하는 것이 금융의 최우선 과제다”라면서 “금융권이 위험관리에만 치중해 자금공급 기능을 축소시킨다면 경기 하강을 가속화시키고 신용경색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 “잘 버티고 있다” vs “아직 코로나19 영향 본격화 안 돼”

현재 금융당국은 국내 은행이 코로나19를 버틸 여력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은행권의 자산 건전성 지표가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국내은행의 연체율은 0.39%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전월 말(0.43%) 대비 0.04%p, 지난해 동월(0.46%) 대비 0.06%p 하락했다. 코로나19 이후 동월 기준으로 오히려 국내은행 연체율이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에서 모두 연체율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3월 말 기업대출 연체율은 0.49%로 전월 말(0.54%)보다 0.05%p 떨어졌고,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은 전월 말(0.30%) 대비 0.03%p 떨어지며 0.27%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수치만 보고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영향이 아직까지 건전성 지표에 반영되지 않았을 뿐, 신호는 하반기부터 올 것이라는 얘기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앞으로 국내 시중은행의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이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무디스는 “(국민·신한·하나·우리) 4대 은행의 3월 말 평균 NPL비율은 0.4%로 지난해 말과 변함이 없었지만 중소기업 영업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라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수요 부진이 장기화되면 2분기에는 NPL비율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수익성 지표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NPL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부실채권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NPL커버리지 비율은 떨어졌다. 지난 3월 말 기준 4대 은행의 평균 NPL커버리지 비율은 지난해 말(115.5%)보다 하락한 113.0%로 나타났다. NPL커버리지 비율은 부실채권 대비 대손충당금을 얼마나 쌓았는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해당 비율이 낮을수록 부실채권에 대한 대응력도 낮다고 본다.

금융위 관계자는 “감독당국은 국내은행이 회계기준에 따라 경제상황 변화를 합리적으로 반영해 충당금을 충실히 적립함으로써 적정한 손실흡수 능력을 유지하도록 감독해 나갈 방침이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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