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부담금 상한제, 소득 따라 상한액 초과 금액 건보에서 환급
보험사, 본인부담액 줄었으니 그만큼 보험금 지급액 줄이거나 환수
건보 “환급금, 보장성 강화 차원의 보험급여…제도 취지 역행하는 것”
금감원 “실제 손해에 대한 보상이 실손의료보험 원칙…문제없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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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중증질환으로 인한 생활고를 예방하는 차원에도 마련된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보험사들이 실손의료보험금 삭감 명목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는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도입 목적과 취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피보험자의 본인부담금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삭감했다. 또한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이 제정되기 이전에 성립된 계약의 약관에는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보장하지 않는 사항’에 포함돼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이를 모든 계약에 소급 적용해왔다.

보험금 삭감은 보험사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이하 건보)공단의 재정이 보험사들의 이익을 키우는 데 줄줄 새는 것과 같고, 상법 및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등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지만, 이를 감독하고 제재해야 할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게서 그런 의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의해 발생하는 환급금으로 인해 본인부담금이 줄어들었으니, 실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만 보상한다는 실손의료보험의 원칙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병원비 환급받았으니 보험금 반환하라”

박혜주 씨(가명)의 부모님은 지난해 11월경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았다. 박 씨의 부친이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한 A손해보험사(이하 A손보)가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으로, 건보공단의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통해 상한액을 초과한 금액을 환급받았으니 해당하는 만큼의 보험금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박 씨와 A손보에 따르면 박 씨의 부친은 3년 전 뇌졸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는데, 2018년 한 해 동안 치료비로 1000만원가량을 지출하고, A손보에 보험금을 청구, 보험금으로 986만5169원을 수령했다. 이후 ‘본인부담금 상한제’ 적용을 받아 건보공단로부터 700만원가량을 환급받았다. 이에 A손보는 박 씨 부친이 건보공단로부터 환급받은 금액은 본인부담금 중복에 따른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주장, 기지급된 보험금에서 2018년 기준 박 씨 부친의 본인부담금 상한액일 것으로 추정되는 208만원을 제외한 778만5169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박 씨는 “정부가 공적 급여로 부담하는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을 보험사가 의료실비(본인부담 의료비) 경감으로 자의적으로 간주하고 공제해 버리는 것이 타당한가, 상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 단순 경제적 이득으로 보는 보험사

2004년 7월 1일 시행된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1년간 환자가 부담한 본인부담액에 대해 소득분위에 따라 정해진 연도별 상한액 기준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을 건보공단이 가입자에게 환급하는 것이다. 환급 대상은 선별급여, 본인이 전액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진 급여항목을 제외한, 입원 및 외래 진료비와 약제비 등 급여항목이고, 비급여 항목은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소득 4분위에 해당하는 환자가 1년간 병원에 200일 입원한 후 병원비로 1000만원(급여 800만원, 비급여 200만원)을 지출했다면 2020년 기준 소득 4분위의 입원일수 120일 초과에 해당하는 본인부담금 상한액은 211만원이므로, 단순 계산했을 때 건보는 이 환자에게 급여항목에 해당하는 병원비 800만원에서 211만원을 제외한 589만원을 돌려주는 것이다. 여기에 선별급여와 본인 전액 부담 급여항목을 제외하면 환급금은 더 적어지게 된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 환급금을 ‘단순 경제적 이득’ 내지는 ‘중복 보상’으로 해석해 환급액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기지급된 보험금에서 환수하는 것이다. 이는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 및 각 보험사 약관상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보상하지 않는 사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금감원과 보험사들은 환급금이 건보법상 요양급여와 동일한 성격의 급여고, 실손보험의 ‘이득금지의 원칙’, 이를 ‘보상하지 않는 사항’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이중지급(초과이득)에 따른 의료쇼핑 등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증가해 건보공단 및 보험사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환급금은 보험금 지급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관련해서 2010년 7월 27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건보의 환급금이 보험금 지급 사유가 되는지에 대해 ‘본인부담금 상한액 초과액을 건보공단으로부터 환급받는다면 요양급여의 본인부담금이 줄어들게 되므로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금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약관 취지에 비춰 보험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환급금, 복지 차원의 소득 보전 금품…요양급여와 달라

약관에 명시된 내용이고, 실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한다는 실손의료보험의 원칙 등을 감안하면 보험사들의 행동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건보 제도의 취지와 기능 및 역할을 고려한다면 그렇지 않다.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소득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상한액을 정해, 질병 치료에 있어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고, 환급금은 질병으로 인한 경제활동 제약에 따른 소득 감소를 보전하는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에서는 병원 직원의 복지정책 등으로 발생하는 할인제도에 대해서는 ‘이득금지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2017년 한국소비자원의 ‘실손의료보험금 지급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를 운영하는 건보공단은 환급금에 대해 ▲의료서비스 외의 소비재를 추가로 소비할 수 있는 소득 보전 성격의 금품으로, 건보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건보공단에서 지급하는 ‘보험급여’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민간 보험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고, ▲환자 본인부담금 경감을 이유로 이를 제하고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건보법 및 제도 도입 취지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건보의 보장성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건보법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지만, 보험 약관은 당사자간 계약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약관은 법령에 우선해 해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손해사정사회는 건보에 대해 “위험요율보다는 소득이나 재산에 의해 보험료와 보험금(요양급여, 환급금)이 적용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보험이라고 할 수 없고,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은혜적 복지 행정의 일환”이라면서 “환급금은 건보법상의 요양급여와는 성격을 달리 하는 특수한 형태의 보험급여”라고 정의했다. 이어 “피보험자는 의료비의 자기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별도로 보험료를 부담하며 민간의료보험을 가입한 것”이라며 “국가의 은혜적 복지 행정을 이유로 민간의료보험에서 보험금 지급채무를 감면하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건보에서의 보험급여는 환급금의 법적 성격과 급부의 목적이 다르므로 서로 상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동일 보험료에 소득 따라 다른 보험금…고소득자가 보험금 더 받게 돼

문제는 또 있다. 보험료는 위험의 종류와 정도, 담보의 크기 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소득이나 재산, 피보험자가 어떤 사회복지 정책의 혜택을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즉, 보험사는 소비자들로부터 보험료를 받을 때 소득이나 재산, 사회복지 정책에 따라 다르게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보험사가 ‘본인부담금 상환제’에 따른 환급금을 보험금에서 삭감하는 것은 소득이나 재산, 사회복지 정책에 따라 지급하는 보험금을 달리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약관은 동일한 위험에 대해 동일한 보장을 담보해야 하는 보험의 원리에 따라 공정성을 잃은 불공정 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규제법) 제6조(일반원칙) 및 제7조(면책조항의 금지) 위반 소지가 있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돼야 하며,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약관규제법 제5조(약관의 해석) 위반에도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캡쳐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캡쳐

‘역차별’ 문제도 있다. 보험사의 논리에 따르면 같은 의료비에 대해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은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예가 만약 소득 10분위의 경우라면 본인부담금 상한액은 582만원이 된다. 받을 수 있는 보험금 차이가 거의 두 배다.

한국소비자원은 이같은 점을 들어 “환급금은 요양급여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특별한 형태의 보험급여에 해당하므로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 상 ‘보상하지 않는 사항’에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규정하는 것은 약관을 법령에 우선해 해석하는 부당한 조항”이라면서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환급금을 보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역차별이며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에 역행하는 것으로, 형평성을 상실한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원칙적으로 보험금은 사고가 발생한 때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나 미래에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사후 환급금)은 보험금 산정의 고려 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 상 ‘보상하지 않는 사항’에서 ‘본인부담금 상한제’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한편, 건보법과 의료급여법 상 ‘본인부담금 상한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상법 ‘보험’편에서 손해액 산정 제외 사항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법 제676조(손해액의 산정기준)에 따르면 보험자(보험사)가 보상할 손해액은 그 손해가 발생한 때와 곳의 가액에 의해 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금감원 “실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보상이 원칙…문제없어”

이에 대해 금감원은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차후에 반영하겠지만, 실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만 보상한다는 실손의료보험의 원칙을 감안할 때 현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은 본인이 실제 부담한 금액에 대해서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어떤 원인이든 실제 부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다만, 병원 직원이나 국가유공자 등의 사유에 의해서 할인되거나 추가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보험사에서 부담해야 하는지 여부는 개별적(분쟁 조정)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료 문제와 관련해서는 “위험률을 산정할 때 보험사가 실제 계약자들에게 지급한 금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환급금을 보상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위험률이 일반적으로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법 위반 소지에 대해서는 “실손의료보험 자체가 명확하게 손해보험이다, 아니다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상법의 손해보험은 원칙적으로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것이지만, 실손의료보험은 인보험 성격과 실손보장 의미에서 손해보험 성격도 있는 복합적인 것”이라며 “상법의 조항을 무조건 기준으로 삼을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일반적으로 기준이 되는 것은 약관”이라고 답했다.

고소득자가 더 많은 보험금을 가져가게 된다는 역차별 문제에는 “실손의료보험에서 소득 관련해서 보험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소득 여하를 떠나서 병원비 지출에 대해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득까지 실손의료보험에서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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