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지난 4월 21일 ‘2019년도 금융민원 및 금융상담 동향’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민원이 8만2209건 발생했는데, 그 중 보험 민원이 5만1184건으로 62.3%(생보 24.7%, 손보 37.5%)를 차지했다. 생명보험은 보험모집, 손해보험은 보험금 산정지급 관련 민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대다수 보험들의 민원이 줄어들고 있는데, 유독 종신보험과 변액보험 민원이 전년 대비 각각 17%, 30% 증가했고, 특히 판매과정에서 발생한 민원(9346건) 중 종신보험, 변액보험 불완전판매 민원이 63.0%(종신 33.7%, 변액 29.3%)를 차지했다.

이처럼 지난해에도 금융민원 중 보험 민원이 압도적으로 1등이고 매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보험 민원이 가장 많다. 보험을 가입해서 억울한 소비자들이 그만큼 많았고, 종신보험과 변액보험의 불완전판매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인데, 필자는 보험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죄송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금감원의 민원 보도자료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발표 내용에 심각한 결함(하자)이 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아무도 지적하거나 쓴소리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금융위는 한마디 말이 없고, 대부분의 신문들도 금감원 발표 내용을 빨리 퍼 나르기하며 속도 경쟁만 했을 뿐, 쓴소리는 없었다.

금감원의 민원 보도자료는 여러가지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첫째, 보험 민원이 금융민원의 62.3%를 차지하여 매우 중병(重病)이고 심각한데 금감원은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20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부리며 매일 10억원의 예산을 소진하고 있으면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워치독(watch dog, 집 지키는 개)의 역할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민원 발생 실적이나 발표하고 금융꿀팁이나 발표하며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며 나 할일 다했다고 뒷짐 짓고 있으니 금감원이 소비자를 보호하고 보험 민원을 근절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의심되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둘째, 금감원이 민원 실적을 발표하는 목적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민원 실적 발표는 발표 자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민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즉, 민원 실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적을 참조해서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민원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고, 그 결과 실제로 민원 감소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 금감원의 역할이고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목적이 되는 것이다.

금감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비자 보호’를 외쳐 왔지만, 정작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고 민원을 크게 줄인 실적도 없다. 오로지 발생된 실적만 정기적으로 발표만 하고 있으므로 반쪽짜리다. 이렇게 매번 실적만 덩그라니 발표하는 보도자료는 시간과 인력만 낭비하는 것이므로 차라리 발표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본다.

셋째, 이번 보도자료에도 금감원이 지난 1년간 행한 조치와 성과가 없고 뚜렷한 해결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향후 계획이 일부 기재되어 있지만 허접하다. 특히, 종신·변액보험 민원에 대해서는 ① 보험회사에게 상품판매 모니터링(해피콜)을 철저히 시행하도록 하고, 불완전판매율이 높은 보험설계사 등 모집조직에 대한 ‘완전판매교육’ 등을 실시하도록 지도하며 ② 향후 금소법 제정으로 적합성원칙 적용대상이 확대될 경우 운영 실태를 점검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①은 보험사들에게 관리의 책임을 전가한 것이고, 해당 내용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상투적으로 써먹은 내용에 불과하므로 수박 겉핥기다. 보험사와 금감원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보여주기식으로 운영해 왔으므로 경험상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이런 내용만이라도 보험사, GA들이 제대로 행하도록 관리, 감독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면 보험 민원이 이 지경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②는 그때 가서 점검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때까지 손을 놓고 있겠다는 것이므로 설득력이 없다.

넷째, 금감원이 종신보험, 변액보험의 불완전판매를 잘 알고 있으면서 실효성 있는 조치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연금보험 대신 종신보험을 저축, 연금으로 포장하여 변칙 판매하는 이유는 사업비가 연금보험보다 2~3배 많기 때문이다. 또한 변액보험을 집중 판매하는 이유는 IFRS17도입을 앞두고 저축성보험 판매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보험사 부채 계상에 유리하고 보험료가 비싸 숫자 놀음의 실적 경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들이 종신보험과 변액보험을 ‘일단 팔고 보자’ 식으로 불완전 판매해서 ‘민원왕’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런데 금감원은 종신보험 가입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언론사의 반복된 지적에 따라 뒤늦게 마지못해 종신보험 안내장에 ‘연금 목적에 부적합하다’는 안내문구를 넣게 했고, 그 후 ‘금융 꿀팁’을 작성, 배포해서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금감원은 보험사 편”이라는 말이 나왔다. 금감원은 수년 전에 민원 근절을 위해 선진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빨간 딱지제도를 어렵게 도입했는데, 금융사들 반발에 굴복하여 불과 몇달만에 폐지했다. 반발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크다는 것을 뜻하는데도 말이다.

금감원은 보험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보험료 내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조직인데, 이처럼 존재 이유를 잘 모르고 민원 실적을 발표하는 이유도 잘 모른 채 실적만 기계적으로 발표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잘못됐다. 현장에서 달라지는 것이 없으므로 시간이 경과해도 보험 민원이 속출하고 소비자들의 원망과 불신이 계속 쌓여가는 것이다.

피해를 본 소비자가 억울하다며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보통 3개월이 걸려야 회신 받는데, 그것도 10건 중 3건만 수용된다. 최근에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한 어느 소비자는 보험사로부터 황당한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금감원에 민원을 신청했는데, 연락이 없어 전화했더니 “이미 접수된 민원이 많아서 1년 걸린다.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답변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뜸 “이럴 것이라면 금감원이 왜 필요합니까?”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소비자들이 기댈 곳은 금감원인데 이처럼 응대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금감원이 누구를 위한 조직인지 의문이고 보험 민원을 언제까지 거꾸로 1등으로 방치할 것인지 의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당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해야 금감원이 나설 것인가?

선진국들은 종신보험을 사망보장의 보장성보험으로 판매할 뿐, 저축이나 연금으로 팔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금융위가 보험사들의 입김에 휘둘려 종신보험을 연금으로 포장해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서 화근이 되었다. 종신보험은 당초부터 사망을 보장하는 보장성보험이므로 단기 목돈 마련을 위한 저축이 아니고 노후 생활비를 받는 연금도 아니다. 설령 연금전환특약을 부가한 종신보험에 가입해서 연금을 받더라도 보험료에서 많은 사업비가 빠지므로 연금액이 소액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저축이 목적이면 사업비가 적은 저축보험을, 노후 연금을 준비하려면 당초부터 연금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또한 현재와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변액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변액보험을 가입해서 펀드 변경과 추가 납입을 반복하더라도 단기 목돈 마련이 불가하고 장기 저축도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변액보험은 투자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실적배당형 보험인데, 보험료에서 보장보험료와 사업비를 뺀 나머지(투자보험료)만 투자되므로 가입부터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원금을 회복하려면 10년 이상 유지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보험사, GA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미사여구만 설명해서 민원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를 백날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입으로만 외칠 뿐, 후속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금감원이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와 GA 대상으로 워치독의 역할을 소홀히 해서 보험 민원이 계속 1등인 것이고, 솜방망이 처벌과 과징금도 약발이 없다. 금감원이 민원실적을 매년 발표하고 있음에도 보험 민원이 전혀 줄지 않는 것은 이처럼 금감원이 하는 일이 현장에서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소비자들이 금감원에 바라는 것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저 보험을 안심하고 가입해서 보험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금감원이 각성해서 이름에 걸맞게 소비자를 위해 일해 주었으면 좋겠다.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 기준은 보험사가 아니라 당연히 소비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보험의 주인은 보험료 내는 소비자이고 보험사는 가입자를 위해 일하는 머슴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감독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이름값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만사 제쳐 놓고 보험 민원 근절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현안을 팽개치고 허송세월 하거나 엉뚱한 일에 시간과 인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둘째, 보험 민원을 줄이기 위해 보험사, GA대상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를 내려야 한다. 돈벌이를 위해 허위·과장으로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변칙을 행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규제하고, 이를 위반하면 가차없이 신상을 공개하고 엄벌해야 한다. 그래야 반면교사, 타산지석으로 동일한 민원이 반복되지 않는다.

셋째, 종신보험을 연금, 저축으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즉, 보험사 에게 “종신보험 사업방법서에서 연금전환 특약을 삭제하라”고 지시하면 된다. 그래야 종신보험의 변칙 판매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소비자 피해가 줄어든다.

넷째, 금감원장은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종신보험과 변액보험 처럼 보험사, GA 잘못으로 다수의 민원이 발생하면 직접 해당 보험사 CEO, GA대표를 호출해서 공개적으로 따끔하게 호통치고 멱살을 잡고 싸워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다섯째, 보도자료에는 금감원이 지난 1년간 민원 감소를 위해 행한 조치와 실제 달성한 성과를 포함해서 보여 주고, 미흡한 부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도 당연히 제시해야 한다.

썩은 환부는 바르는 약이 아니라 수술을 해서 고름을 짜 내야 완치가 가능하다. 금감원은 금감원답게 워치독으로 충실하게 일해야 한다. 맹탕 대책과 솜방망이 처벌, 보여주기 실적 발표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행여 금감원이 존재 이유와 해야 할 일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행하지 않으며 또다시 실적 발표만 반복한다면 ‘금감원’이 아니라 ‘금융꿀팁원’, ‘실적발표원’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금감원이 소비자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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