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기업 감사‥총수 출석 앞두고 ‘진통’


[파이낸셜투데이=조경희 기자]지난 14일부터 2013년 정기 국정감사가 실시됐다. 그간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군 갑을논란에 이어 최근 동양증권의 CP 발행까지 ‘방문증’을 단 기업 CEO들이 대거 국회를 방문했다.

당초 국감 증인에서 빠졌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막판에 다시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기업 감사를 넘어 오너 일가에 대한 ‘감사’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롯데그룹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진행중이며 지난해 국감 증인 불출석을 이유로 벌금형에 처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올해 국감은 국감 역사 상 가장 많은 증인이 채택됐으며 또 거물급 기업인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는 점에서 재계는 긴장감에 싸여 있다.

기업인 국감에서 오너 소환 국감으로 ‘불똥 튄다?’
푸른 눈의 증인 까지…브리타 제에거 벤츠 CEO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번째 국정감사가 지난 14일부터 시작됐다. 앞으로 20일간 국감이 진행되면서 벌써부터 진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감사 대상 기관은 지난해보다 73개가 늘어난 630개 기관으로 확정됐다.

피감기관의 합계만 630여곳으로 피감기관이 600곳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제헌 국회 이래 최다 규모다.

피감기관의 수가 제헌 국회 이래 가장 많아지자, ‘부실 국감’ 논란도 수면위에 떠오르고 있다. 1분 발언을 위해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혹은 전문 경영인 대신 오너 일가인 부회장을 증인으로 재출석 시키는 등의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일반 증인 가운데 기업인 숫자가 사상 최대치로 나타나 ‘국정’이 아닌 ‘기업경영’에 대한 감사로 변질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피감기관에 이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단체 소속 포함)은 총 196명이다. 2년 전 국감 때 80명을 증인으로 선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2.5배로 늘어난 것이다. 작년(164명)과 비교해도 32명 많다.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한 상임위원회는 모두 6개이며, 이 중 정무위원회가 61명으로 가장 많다.

가장 많은 정무위, <왜>

정무위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갑을(甲乙) 논란, 재벌 순환출자 등 많은 이슈가 다뤄진다. 또 일부 계열사들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과 탈세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효성그룹 등도 정무위가 다룰 핫이슈이다.

정무위가 채택한 기업인 증인들은 거물급들이 많다. 효성그룹에서는 조석래 회장과 김용덕 효성캐피털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홈플러스 도성환 대표이사, 삼성전자서비스 박상범 대표이사,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삼성전자 백남육 부사장 등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정무위에 이어 국토교통위원회가 47명의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산업통상자원위원회도 36명을 부르기로 했다.

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는 각각 25명, 21명을 증인으로 선정했다.

이번 국감에서는 여러 개의 상임위에 중복으로 증인 채택된 기업인들이 많은 게 하나의 특징이다. 홈플러스 도성환 대표이사가 환노위와 정무위, 산업위 등 3개 위원회의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부영 이중근 회장은 국토위에 2번, 정무위에 1번 등 총 3번 증인으로 나와야 할 상황이다.

삼성전자 전동수 사장, 삼성전자서비스 박상범 대표,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대표 등은 2번씩이다.

경제단체 관계자 중에서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송재희 부회장이 산업위와 기획재정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서고, 대한상공회의소의 이동근 부회장은 환노위에 참고인과 증인으로 각각 1회 나선다.


벤츠 한국지사 사장까지 참석

지난 15일. 국감장에는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이정호 롯데피에스넷 대표, 박재구 CU대표, 강현구 롯데홈쇼핑 대표, 조준호 LG그룹 사장,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배중호 국순당 대표, 김충호 현대자동차 대표,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대표,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등 기업인들이 속속 도착해 증인석을 가득 메웠다.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 정재희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포드코리아 사장),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브리타 제에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 등 완성차업계 CEO들도 참석했다.

동양 현재현 회장 등 대거 채택

동양그룹 사태를 빚어낸 동양 오너 일가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 이승국 전(前) 동양증권 사장,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이사 등 동양 관계자들도 일찌감치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동양사태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피해를 개인투자자가 5만명에 달하는 등 금융권 내에서도 가장 큰 이슈가 될 전망이다.

16일 있을 국감을 앞두고 최수현 금감원장 등 금감원 간부들은 주말인 지난 13일 출근해 정무위 국감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질의와 이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을논란, 4대강 담합, 동양그룹 사태 등 이슈 다양
한 마디 하려고 하루 몽땅 날리는 일도 ‘부지기수’

유통업계 총수 출석 ‘고심’

유통업계 CEO와 총수들의 우려도 크다. 국회 국정감사 일정이 시작되면서 증인 출석 요구를 받은 유통업계 총수와 대표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대형 유통업체 총수들이 해외 출장을 이유로 국감에 불출석했다가 줄줄이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또 골목상권 침해와 경제민주화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서 국민 정서도 곱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다음 달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감에 증인 출석을 요구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작년과 달리 올해는 출석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주력인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등 그룹에 대한 압박이 가시화되는 상황이어서, 국회의 출석 요구를 무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욱이 증인 출석을 피할 수 있었던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 다시 증인으로 요구받는 등의 진통을 겪기도 했다.

전문 경영진인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가 즉답을 하지 못하자 정 부회장을 다시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홈플러스의 경우 더욱 당혹스럽다. 정무위를 포함한 상임위 3곳에서 모두 증인 신청을 한 것.

홈플러스 관계자는 “상임위 3곳 국감에 동시에 출석을 요구받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며 “도 대표는 31일 정무위, 다음 달 1일에 산자위와 환노위에 출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재위 ‘재벌총수’ 놓고 공방전

이미 많은 기업의 총수들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가운데 기획재정위원회는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전문 경영진 대신 그룹 총수들을 직접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쪽과 총수 보다는 해당 기관의 기관장들을 불러 정부에서 일을 못하는 것을 감사하자는 쪽으로 나뉜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새누리당이 재벌총수 일가와 이전 정권 정책책임자의 증인 채택을 거부하며 이들을 감싸고 돈다며 공세를 펼쳤고, 여당 의원들은 야당이 국정감사의 본래 취지를 벗어난 채 정치공세를 벌이려 한다고 역공했다.

먼저 민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기재부 업무보고 직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새누리당은 현대글로비스 사장 등 월급쟁이 사장은 증인이 가능하지만 총수일가는 증인으로 할 수 없다고 한다”며 “일감 몰아주기 혜택을 받은 당사자는 정의선씨인데 왜 이런 혜택과 무관한 이를 나오게 하자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면세점 문제와 관련해서는 롯데면세점 이원준 대표이사는 되는데 총수일가인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은 참고인으로도 안 된다고 한다”며 “산업통상자원위는 신동빈 롯데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회장을 증인 채택했는데 왜 기재위만 안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은 “우리(새누리당)가 무슨 유착관계가 있지 않냐고 하는데 동료 의원에게 이렇게 모욕적인 발언을 할 수 있냐. 세계적으로 뛰는 기업인을 10초 말하라고 불러야겠냐”며 사과를 요구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여당 간사인 나성린 의원은 “국감은 정부나 공공기관 업무와 정책 이행상태를 감사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로 돌린뒤 “일감 몰아주기가 있었으면 정부가 왜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는지 정부를 나무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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