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없이 ‘한숨뿐’‥줄 대기에 지쳤다

▲한국거래소.
[파이낸셜투데이=황병준 기자]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났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출발했던 새정부는 남북관계 회복 등 국정운영에 비교적 합격점을 받았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소통부족에 따른 일방주의적 ‘수첩인사’ 등은 옥의 티로 남고 있어 하반기 국정운영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공공기관장 인사 지연은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의 공공업무를 담당하는 공기업 입장에선 사장단 인선이 늦어지면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반면 청와대는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향후 공기업 사장단 인사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지난 6월 청와대가 공기업 사장단 인사에서 손을 놓은지 두 달이 지나면서 공공기관들의 사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다. 하지만 더욱 문제점은 아직까지 이를 해결할 뾰족한 대안이나 청와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장이 공석인 곳은 한국거래소, 수력원자력, 지역난방공사,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등이다.

사장 언제 오나

청와대 내에서도 계속 늦어지고 있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장 인사에 관련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기업 인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나친 원칙주의가 인사 지연의 원인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과거 정권의 전유물처럼 여겼던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사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었다. 하지만 지나친 현미경 인사로 인해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청와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기업 및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공기관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며 “공공기관 합리화 방안은 국민의 큰 관심사인 재정 건전성 문제와 방만한 경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의사결정자가 장기간 공석으로 방치되고 있는 까닭에 업무 공백에 따른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장 취임이 늦어지면서 업무 공백이 늘어나 중요한 결제가 지연되고 있다”며 “낙하산인사 등에 따른 부작용이 크지만 업무 공백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공기업 사장 어디 없소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는 곳은 에너지 공기업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비리 사태로 면직된 김균섭 전 사장의 후임을 선정하지 못한 채 두 달여 동안 사장 공석 사태를 빚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21일에서야 임원추천위원회를 열고 신임 사장 재공모를 결정했다.

▲한국수자원공사.

또 다른 에너지 공기업으로는 한국수자원공사, 지역난방공사, 서부발전, 남동발전 등이 사장 인선이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한수원과 남동발전 서부발전 등은 지난 6월 신임 사장 공모를 마쳤지만 후보 심사 절차는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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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난방공사도 지난 6월 정승일 전 사장이 퇴임한 직후 임추위를 꾸려 후임 사장을 논의했지만 청와대의 인사 중단 지시로 공모조차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청와대가 일부 기관장에 대한 관치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자 공기업 신임 사장 공모 절차를 전면 중단시켰다.

한수원과 지역난방공사는 각각 전용갑 부사장과 김상기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지적된다.

대한석탄공사는 지난달 9일 퇴임한 김현태 사장 후임이후 인선작업을 미뤄오다 최근 공모 날짜를 확정했다.

임기 끝나도 자리 못 떠나

금융공기업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거래소다. 한창 10여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공모까지 진행하다 청와대의 공공기관 인사 올스톱 방침으로 손을 놓고 있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도 지난 7월 17일 임기가 끝났지만 아직까지 업무를 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금융공기업과 일부 금융회사의 수장이 잇따라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출신이 선임되면서 ‘관치금융’인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철도공사.

현재 신용보증기금과 같이 기관장이 임기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공기관이 17곳이나 된다. 7월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은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조성균 전략물자관리원 원장, 김학소 해양수산개발원 원장, 김풍식 농업정책자금관리단 단장, 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이에 앞서 6월에는 김승환 (재)우체국시설관리단 이사장, 이성범 별정우체국연금관리단 이사장, 주덕영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 정대종 코레일유통㈜ 사장 등의 임기가 만료됐다.

그 외에 김성태 한국정보화진흥원 원장과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은 5월, 김문덕 한국서부발전㈜ 사장은 4월,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과 최형규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은 3월, 김기학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 사장은 1월에 임기가 끝났다.

현재 수장이 자리를 비운 공공기관도 21곳이나 된다. 대한석탄공사를 비롯해 한국거래소,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중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큰 공기업도 적지 않은 실태다.

공기업의 한 직원은 “일의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고 “누군가 중심에 나서서 진두지휘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공기업 인선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낙하산인사 등의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많은 후보군을 통해 보다 강도 높은 검증을 벌이고 있어 검증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능력 있는 수장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간 수장 공백 사태가 지속되고 있어 공기업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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