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인가 아니면 아버지 뒷배경인가?

 

▲이건호 국민은행장.

[파이낸셜투데이=황병준 기자] 지난달 KB금융이 신임 국민은행장으로 이건호 부행장을 내정했다. 당시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던 다크호스로 평가되던 인물이었던 탓에 내·외부적으로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건호 행장의 부친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도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또한 박대통령의 동생인 지만씨와 관계에 대한 의구심까지 드러나면서 이 행장의 국민은행장 인선에 정치적 영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은행권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지난달 18일 KB금융지주는 임영록 회장을 위원장으로 KB국민은행장 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이건호 부행장을 신임행장으로 결정했다.

당시 이건호 부행장보다는 김옥찬 국민은행장대행과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 등이 유력한 후보로 알려져 있었다. 여기에 노조가 임 회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중단할 때 ‘내부인사 중용’이라는 약속까지 받은 상황이었기에 이 행장의 선임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깜짝 발탁(?)

이 행장은 지난 2011년 KB금융그룹에 합류했다. 이 행장은 어윤대 전 회장의 비호 아래 영입된 인사로 은행 재직기간이 2년에 불과해 은행 영업환경 전반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었다.

국민은행 노조는 이 행장이 취임한 지난달 22일부터 ‘관치금융인사 반대’를 외치며 2주간 이 행장의 출근을 저지하기도 했다.

노조는 이 행장이 선임되지 전부터 외부인사 관치인사 반대 성명을 내는 등 이를 반대해 왔다. 2주간 이 행장은 행장 집무실로 출근하지 못하고 여의도 인근 호텔에서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 행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장과 조흥은행 부행장,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을 지내다가 2011년 KB국민은행 리스크 관리 부행장으로 국민은행에 첫 발을 디뎠다.

박정희 키드인가

일각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건호 부행장이 행장으로 선임된 배경에 현 정권과 연결된 끈이 있을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하게 들리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부친이었던 이정순 장군이다. 이정순 예비역 준장은 5.16을 주도했던 육군사관학교(육사) 5기 출신으로 쿠데타 직후 군부가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조직했던 부정축재처리위 조사단장을 맡았다. 그는 조사단장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해 1964년까지 육군본부 경리감을 역임했다. 경리감은 군의 행정과 자금 등을 관리하는 군 최고 요직중 하나다.

부친 5.16쿠데타 부정축재 조사단장‥공로인정 군부 핵심 요직 맡아
행장 선임 놓고 정치적 연관설 솔솔…다크호스였던 준비된 행장(?)

이 행장의 부친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관성이 주목 받는 이유에는 현 정권의 요직에 박 정권 실세들의 아들이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박근혜정부에서 취임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부친은 고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이다. 서 전 장관은 육사1기 출신으로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참여한 정권 실세였다. 또한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임명된 김준경 박사 부친 역시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의 아들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 시절 실세로 주목 받았던 2세들이 현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박지만과 관계

이 행장이 국민은행장으로 취임하면서 일각에서는 이 행장과 막역했던 고(故) 차백인 박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이 행장의 취임에 정치적 영향이 있지 않았겠냐는 추측이 일었다.

지난 7일 이건호 행장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박지만씨 추천설에 대해 “박지만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한 번도 뵌 적 없다”면서 “고(故) 차백인 박사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사망한 차백인 박사는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맡았었다. 이 행장이 이처럼 정치권과의 밀약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데에는 그만큼 이행장의 국민은행 행장 취임이 파격적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행장이 금융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9년 조흥은행에 합류하면서 부터다. 금융감독위원회에 파견돼 옛 제일은행 매각 업무를 참여하고 있던 당시 조흥은행의 리스크관리부장으로 영입됐다. 당시 이 행장의 나이는 40세로 금융권에서는 최연소 은행 임원 탄생이라는 파격으로 받아들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 행장이 앞으로 국민은행에서 어떠한 능력과 성과를 보이느냐에 따라 지금까지 그가 달고 있는 정치적 꼬리표가 제거되느냐 커지느냐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출발부터 ‘파격’

이건호 행장은 취임한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임원수를 30% 이상 줄이고 부행장 7명을 퇴진시키는 등 파격적인 쇄신인사를 단행했다. 또한 그룹 체제를 폐지해 ‘그룹-본부-부서’의 3단계 조직구조를 ‘본부-부서’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기존 ‘10그룹 15본부 61부 1실’이던 조직은 ‘17본부 57부 2실’로 대폭 슬림화됐다. 다크호스로 평가되던 이 행장이 준비된 행장이었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행장이 취임이후 연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금융계의 이슈를 몰고 다니고 있다”며 “관치 인사의 논란이 있었지만 소통의 리더십을 펼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에 금융계는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