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김민정 기자] 수요일 밤이 되면, 신촌 뒷골목의 한 빠에서 책과 인생을 논하는 자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더 빠’라는 술집의 단골들과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오랫동안 더 빠의 ‘죽돌이를 자처하던 밥장은 맥주뿐 아니라 ‘교양’도 함께 흡입하고 몰랐던 사람들과 친해지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2012년 봄, 첫 번째 ‘수요밥장무대’를 연다.

밥장이 아껴 보던 「수요예술무대」를 본떠 만든 이 무대는 ‘인문학으로 삶을 촉촉하게’ 해보자는 취지로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손님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삶을 나누는 자리다. 

이곳에서는 맥주·외로움·여행·연애·인간관계 등 도시남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주제들과 이 주제를 다룬 여러 가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책을 안주 삼아 누구보다 열심히 여러 작가들의 생각을 나르던 밥장이 그 밤들을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펴낸 것이 『밤의 인문학』이다. 

『밤의 인문학』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맥주에 취해 읽은 책과, 나눈 삶의 기록이다. 언뜻 독서일기처럼 보이지만 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밥장이 책을 통해 찾은 삶의 태도다.

범박하게 말해 인문학이 통념에 대한 의문을 통해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학문이라면, 책을 매개로 삶을 고민한 『밤의 인문학』 또한 ‘밥장 식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삶의 운전대’

이 책의 지은이 밥장은 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일하던 어느 날 자신이 심해에 가라앉는 고장 난 잠수함에 타고 있다는 생각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 무렵 결혼 생활도 끝나 인생의 바닥을 치고 변변찮은 돌싱으로 살아갈 때쯤 자기 안에 숨어 있던 꿈 하나와 조용히 만났다. 바로 ‘그림’. 밥장은 이 책에 간간이 등장하는 ‘더 빠’ 사장님의 무심한 지도로 어쩌다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져 그림 전공자도 아니고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지만, 하루에 한 장씩 그리다가 그림으로 먹고 살게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성능 좋은 프린터’가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는데 이 시기, 우연히 ‘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에 재능기부를 시작하면서 ‘나눔’이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한 재능기부는 빅이슈 배달 차량 빅카 일러스트 작업, 도서관 벽화 작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만 120여 개에 이른다. 

이렇듯 대체 가능한 화이트칼라 노동자에서 개성 있는 아티스트로, 대기업 일벌레에서 행복을 버는 재능기부자로 다른 삶을 살게 된 덕인지 그는 인생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 

꼰대스러운 훈계가 아니라 자기 경험에 따른 고민을 도마 위에 올리고, 그 고민을 푸는 열쇠는 언제나 책에서 찾는다. 

무엇보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린 삶이다. 바쁜 나날에서 한 발짝이나마 떨어져 나와 쉬는 것만으로도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으니 자신을 만나자고, 꿈은 들이기 힘든 습관이지만 모든 시작이 그렇듯 한 발짝만 떼면 된다고 자극한다. 

글 곳곳에 보이는 이혼, 연애, 성적 취향 등 자신만의 내밀한 부분에 대한 솔직한 고백 또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다. ‘맥주가 주는 영감’을 논한 첫 번째 밤에 들어서면 진짜 삶, 연애, 여행, 미식, 섹스 등을 논하는 밤들을 거쳐 어느새 열여섯 번째 밤에서 ‘기괴함과 창조성’을 논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판사 : 앨리스
저자 : 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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