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곳, ‘DMZ 평화의 길’을 걷다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곳, ‘DMZ 평화의 길’을 걷다
  • 한종해 기자
  • 승인 2019.06.18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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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를 기리는 '백마고지 전적지'.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의 시작점이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백마동상 뒤편으로 '백마고지 전적비'와 태극기가 보인다. 사진=한종해 기자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를 기리는 '백마고지 전적지'.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의 시작점이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백마동상 뒤편으로 '백마고지 전적비'와 태극기가 보인다. 사진=한종해 기자
물은 경계가 없다. 실향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북으로 갈라진 땅 위로 ‘역곡천’은 자유롭게 넘나들며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지난 60여년간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아니 닿을 수 없었던 울창한 숲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날카롭고 차가운 철책과 수많은 감시 장비. 평화와 긴장의 공존. 12일 오후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에서 바라본 남과 북의 모습이었다.

6월 1일,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의 문이 열렸다. 지난 4월 27일 개방한 고성 구간에 이어 두 번째로 공개되는 평화의 길이다. 파이낸셜투데이는 지난달 16일 DMZ 평화의 길 고성 구간 방문에 이어 지난 12일 철원 구간을 찾았다. 철원 구간은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화살머리고지를 지나 비상주 감시초소까지 약 15km를 도보와 차량으로 이동하는 코스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 분단 후 첫 개방, 치솟는 인기…참가신청 크게 늘어

서울에서 출발해 자유로와 율곡로, 연신로를 거쳐 백마고지 전적지까지 약 130여km, 2시간30분가량을 달려가는 동안 줄어드는 거리와 반대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 차례의 신청 끝에 얻어낸 값진 기회였기 때문이다.

DMZ 평화의 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고성 구간은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평균 16대1, 철원 구간은 평균 18.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참가 신청은 한국관광공사 걷기여행 누리집 ‘두루누비(www.durunubi.kr)’과 행정안전부 디엠지(DMZ) 통합정보시스템 ‘디엠지기(www.dmz.go.kr)’를 통해 할 수 있다. 당첨자 결정은 선착순이 아닌 무작위 추첨으로 진행되고 대기자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새로 신청해야 한다. 4명을 초과하는 단체는 신청받지 않는다.

◆ 한국전쟁 사상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수많은 영웅들

'백마고지 전적지' 정상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평야 뒤로 낮고 평평한 언덕이 '백마고지'다. 뒤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평화의 길' 탐방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공작새능선 조망대까지 사진촬영이 제한된다. 사진=한종해 기자
'백마고지 전적지' 정상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평야 뒤로 낮고 평평한 언덕이 '백마고지'다. 뒤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평화의 길' 탐방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공작새능선 조망대까지 사진촬영이 제한된다. 사진=한종해 기자

철원 구간은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본 모습이 마치 하얀 말이 쓰러져 누운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명명된 백마고지는 영화 <고지전>에서도 나왔듯이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1952년 12차례 전투가 벌어져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다. 밤낮으로 승전기가 달랐던 날도 있었을 정도였다. 27만 발이 넘는 포탄이 투하돼 산 정상부가 1m나 깎였으며, 우리 군인 3500명이 희생됐다.

태극기로 둘러싸인 자작나무길을 따라 백마고지 전적지 정상으로 이동했다. 아래와는 다른 느낌의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무겁지만 차분했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또래였을 수많은 충혼들의 묵묵한 소임이 느껴지는 듯 했다. 위령비에 다가갈수록 고개가 숙여진 이유였을 것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사가 명단이 새겨진 비문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꿈 많은 청춘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위령비 뒤편으로 백마고지와 북측 산자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바로 ‘DMZ 평화의 길 입구’다. ‘평화의 길’ 탐방 중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이후부터 촬영은 엄격히 통제된다.

◆ 영농증 발급 받은 주민들만 정해진 시간에 출입 가능

‘민정경찰’이라는 표지판과 태극기를 부착한 차량에 몸을 실었다. 모내기를 끝낸 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영농증을 발급받은 사람만 농사가 가능하다. 매일 통문에 일출 일몰 시간이 적힌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일을 할 수 있다. 자연보호를 위해 농약은 쓰지 않는다. 셰르파 한 명이 이곳에서 나는 쌀은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돼 맛이 좋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간다. 차를 타고 1.5km를 달려 내린 곳은 ‘백마고지 조망대’. 철책 너머로 역곡천이 흐르고 있다. 북한 평강에서 발원한 역곡천은 철원군과 연천군을 지나 다시 북한의 임진강을 만나는 동안 남과 북을 수없이 오간다.

역곡천 주변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보고다. 멸종 위기에 처한 수달과 희귀 어류 등이 서식하고 겨울철이면 1000여마리의 두루미가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몸을 숨길 수 있는 무성한 원시림 덕에 멧돼지와 고라니를 비롯한 들짐승들도 많다. 특히 두루미는 천연기념물 제202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희귀 겨울 철새다. 주로 러시아나 중국 북부 지역에서 살면서 서식하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다. 현재 전 세계에 3000여마리만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멸종위기종 두루미 보호 위한 철원 주민들의 노력

두루미가 철원 DMZ를 찾는 데는 주민들의 숨은 노력도 있다. 주민들은 농사를 마친 뒤 볏짚을 논에 그대로 놔둬 두루미가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물을 가둬 우렁이 등의 먹이도 제공한다. 이곳에서부터 공작새능선 조망대까지는 3.5km가량의 도보 구간이다. 불과 5~20m 거리의 남방한계선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철책 주변에는 감시 장비와 초소, 유사시 탱크의 진격을 늦추기 위한 7m 높이의 장벽 등 군사시설이 곳곳에 있다. 왼편으로는 출입허가를 받는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논도 있다. 군데군데 ‘지뢰’ 팻말이 붙은 저지선도 있다. 평화와 긴장의 어색한 공존이다.

'공작새능선 조망대'에서 바라본 북측 모습. 왼쪽에는 화살머리고지가 있지만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사진=한종해 기자
'공작새능선 조망대'에서 바라본 북측 모습. 왼쪽에는 화살머리고지가 있지만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사진=한종해 기자

가끔 들리는 이름 모를 산새소리를 벗삼아 걷다보니 어느덧 공작새능선 조망대 데크에 도착했다. 전망데크는 이번에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관람객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이곳에서 공작새능선과 백마고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할 수 있다. 화살머리고지 쪽으로는 촬영이 제한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을 눈에 담고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부터는 안전을 위해 전 구간을 차량으로 이동한다.

◆ 녹슬고 부서진 유품들에서 느껴지는 치열한 전투의 흔적

차를 타고 1.3km를 이동해 화살머리고지와 철원GP로 연결되는 통문에 다다랐다. 관람객들은 여기서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맡겨야 한다. 화재 위험이 있는 라이터와 전자담배 등의 반입도 금지된다. 줄을 서서 소지품을 맡기는 동안 옆에는 실탄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수없이 오갔다.

굳게 잠긴 통문이 열리고 드디어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길을 달려 1.4km를 이동하자 마침내 이번 ‘평화의 길’ 하이라이트인 철원GP에 도착했다. 철원GP는 비상주 GP로 병력이 상주하지는 않지만 유사시 지체없이 출동하는 곳이다.

바로 내리지는 않았다. 앞서 가던 군용 차량에서 내린 장병들이 GP의 안전상태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초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은 방탄모와 방탄조끼 등 무거운 안전장비를 착용해야 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는데 왜 개방을 하느냐”는 민원이 있어 착용하지는 않고 군 차량에 비치, 비상시 착용할 수 있도록 했다.

철원GP 1층(벙커층)에는 철모와 총기류, 총알, 방독면 등이 전시돼 있다. 하나 같이 녹이 슬어 있다. 깨지고 부서진 장비들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전시품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남북이 함께 유해발굴과 지뢰제거 작업을 하면서 찾아낸 유품들이다. 화살머리고지 역시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격전지다.

화살머리고지는 6·25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의 남서쪽 3km 지점에 화살 머리처럼 남쪽으로 돌출된 해발 281m의 고지로, 한반도 중앙에 위치해 한국 전쟁 당시 교통과 전략에 중요한 요충지였다. 중공군은 정전협정서 서명을 앞두고 국군 2사단이 점령하고 있던 이 고지를 빼앗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고, 치열한 방어전 끝에 국군은 화살머리고지를 지켜낼 수 있었다.

2층은 외부로 이어진다. 탁 트인 사방에 태극기와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군사분계선 건너 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높게 솟은 철망 너머로 남북공동유해발굴 현장이 보였다.

남북은 2018년 9월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DMZ 내 시범적 공동유해발굴을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군사당국은 2019년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했으며, 올해 5월부터 유해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유해 451점, 유품 약 3만여 점 등이 발굴됐다. 지난 6일에는 유엔군 추정 전사자 유해가 처음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해당 유해는 두개골과 대퇴부 크기 등이 전형적인 서양인의 특징을 보일 뿐 아니라 6·25 전쟁 당시 미군·프랑스군 전투지역에서 발굴됐다.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는 미군과 프랑스군 각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이 참전해 이중 100여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수습된 미군 및 프랑스군 전사자는 20여명 이상으로 보인다.

◆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국과 미국, 프랑스 군인들

GP 2층에는 이들을 기리는 전적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자유를 위하여-1952년 10월 3일부터 14일까지 미 2사단 23연대 소속 유엔군 프랑스 대대 지원병들이 이곳 화살머리 281고지와 전초에서 한국과 미국의 전우들과 함께 맹렬히 싸우다. 또한 유엔군프랑스대대 공병 소대도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라는 글귀가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로 적혀있다.

여기까지 둘러보고 다시 출발지점인 백마고지 전적지로 돌아오면 ‘철원 DMZ 평화의 길’ 일정이 모두 마무리된다.

‘DMZ 평화의 길’은 지난 4월 27일 고성 구간을 시작으로, 지난 6월 1일 철원 구간 개방에 이어 오는 8월 이후 파주 구간까지 개방된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상징이자 민족의 아픈 상처가 서려 있는 대결의 현장이었던 DMZ가 점점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는 평화를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묵묵히 걸었고 끝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선언을 이끌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에 참가했고,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남북 적대행위가 중단됐고 남북대화와 접촉도 재개됐다.

그 걸음에 국민도 함께하고 있다. ‘평화의 길’을 통해 DMZ를 걸으며 평화를 느꼈다. 이제 통일을 외칠 차례다.

'백마고지 전적지' 정상으로 올라가는 자작나무 길에는 이곳에서 산화한 충혼들을 기리기 위한 태극기들이 휘날리고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백마고지 전적지' 정상으로 올라가는 자작나무 길에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산화한 충혼들을 기리기 위한 태극기들이 휘날리고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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