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쏠려, 청원 20만명 돌파
여야 갈등으로 관련 법안 통과 수개월째 제자리
소방청 초조, 국가직 전환 하반기 완료 계획 불투명

강원도 산불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제기되던 소방관 처우에 대한 문제가 이번에도 대두됐다. 강원 산불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처우 개선을 위해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데에 여론이 쏠린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갈등만 거듭하고 있다.

지난 5일 청와대에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국가직으로 전환해서 소방공무원들게 더 나은 복지를 제공하고 지역의 재난과 안전에 신경써야 한다”며 청원 이유를 밝혔다. 국민청원은 나흘 만에 20만명을 돌파하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소방관의 약 99%(5만1615)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지방직 공무원이다. 지자체 예산이 제각각이다보니 지원되는 소방 인력과 장비 규모가 달라지면서 국민이 받을 수 있는 안전 서비스에 격차가 생기게 된다.

소방 인력도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2017년 기준 전국 평균 소방 인력부족율은 31.1%로 법정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예산이 탄탄한 서울은 인력부족율이 10.6%에 그쳤지만 세종시와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는 40%가 넘었다.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서울은 다른 지자체보다 사정이 좋아서 인력이나 장비가 크게 부족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지방은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국가직 전환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독립된 소방기구인 소방청 개청과 소방관 국가직 전환을 골자로 한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 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소방청은 2017년 개청했지만 국가직 전환은 실현되지 못했다.

국가직 전환과 맥락을 같이하는 소방관 처우에 대한 논의도 되풀이됐다. 열악한 구조 환경으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소방관들이 순직한 뒤에야 인재(人災)를 막기 위해 인력과 장비 보충 등 처우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재정이 열악하거나 지자체장의 관심이 떨어지는 지역은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기 힘들다”며 “국가직으로 전환하면 부족한 인력이나 장비 지원이 보다 원활하고 균등하게 이뤄질 수 있고 국가 재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여론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처우 개선과 지역별 인력 및 장비 격차 해소를 위해 소방관 증원과 국가직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진영 행정안정부 장관도 국가직 전환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여야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필요한 관련 법안은 ▲소방기본법 ▲소방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지방자치단체에 두는 국가공무원의 정원에 관한 법률 등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관련 법안들은 지난해 1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의결 직전 단계까지 올랐다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며 이후 약 4개월 동안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행안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진영 행안부 장관(왼쪽)과 정문호 소방청장(오른쪽).사진=연합뉴스

국가직 전환에 대한 논의는 지난 9일 행안부와 소방청으로부터 강원도 산불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책을 세우기 위한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다시금 점화됐다.

여당인 민주당은 법안소위 당시 자유한국당의 원내지도부 전화 지시로 의원들이 자리를 떠나 정족수가 미달 됐다며 한국당을 지적했다. 권미혁 민주당 의원은 “한국당 원내지도부가 통과시키지 말라고 지시해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직 전환에 대해서 소방서비스 향상과 신속한 재난대응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이유로 관련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지금껏 지방분권에 역행한다는 이유와 각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유로 관련 법안 통과에 반대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발목잡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 한국당은 민주당의 주장에 국가직 자체에 반대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진복 한국당 의원은 “국가직 아니면 불을 못 끄냐”며 한국당은 여전히 법안 통과에는 회의적이었다.

한편 바른미래당은 이들과 또 다른 쟁점을 내놨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가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방사무를 국가사무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결국 강원 산불을 계기로 국가직 전환 논의가 회자 됐지만 이날 회의에서도 각 정당은 입장차를 보이며 관련 법안은 쉽게 통과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방청만 답답하고 초조해졌다. 올해 하반기 국가직 전환을 완료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으나 3월에도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며서 계획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재 소방청은 4월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만 바라보고 있다. 강원도 산불로 국민도 국가직 전환에 동의해주시는 것 같은데 한시라도 빨리 통과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전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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