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만약 도둑이 창궐해서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경찰이 도둑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문단속 잘하라고 계속 외친다면 잘 하는 일일까? 잘못하는 일일까?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현재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금융감독원의 ‘금융꿀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금감원은 2016년 8월부터 ‘금융꿀팁 200선’을 발표해 오고 있는데, 최근(2018.5.31)까지 총 88건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국민들이 일상적인 금융거래 과정에서 알아두면 유익한 실용금융정보 (금융꿀팁) 200가지를 선정, 알기 쉽게 정리하여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라고 하는데, 소비자 피해가 많은 금융 이슈에 대하여 실제 피해사례를 알려 주고 동일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소비자들에게 유의사항을 알려주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금감원이 칭찬받을 일이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반드시 그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금감원이 금융꿀팁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꿀팁을 발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금융사 대상의 실효성 있는 조치를 먼저 해야 한다는 말이다. 금융꿀팁을 발표하는 것은 소비자 피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이것은 금감원의 감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민원 7만6357건 중 보험 민원은 자그마치 4만7742건으로 62.5%(생보 23.7%, 손보 38.8%)를 차지했다. 전체 민원 10건 중 6건 이상이 보험 민원이었다. 보험 민원이 매일 130건씩 접수된 셈이다. 보험사와 한국소비자원, 국민신문고, 권익위, 청와대 등에 접수된 민원까지 더한다면 그 수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이처럼 보험 민원이 빈발하는 것은 보험사들의 불완전판매가 현장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고, 여기에 보험사 대상의 금감원의 감독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오래 전부터 지속돼 왔는데,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은 강 건너 불구경이고 태화탕이다. 금감원장은 취임할 때마다 매번 ‘소비자 보호’를 외치지만, 아무도 보험 민원 근절에 나서지 않았다. 보험이 이미 중병에 걸린 것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처방하거나 수술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마도 역대 금감원장들이 보험에 대해 문외한이고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죽어가는 보험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금감원이 민원 발생 결과를 매년 발표하는 목적은 발표 자체가 아니라 민원 발생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실효성 있는 후속 대책이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금감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장기간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선량한 소비자들은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 금감원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보호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도둑이 날뛰어 주민들의 피해가 속출한다면 경찰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도둑 잡는 일이지 주민들에게 유의하라고 외칠 일이 아니다. 금감원이 해야 할 일은 금융꿀팁이 아니라 보험사의 불완전판매를 근절하고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도록 확실하게 조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외면한 채 발표 실적 홍보하듯 금융꿀팁이나 발표하며 소비자들에게 주의하라니 한참 잘못 됐다.

예를 들어, 연금 받는다는 종신보험은 보험사의 주력상품인데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보험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사업비(수수료)가 많은 보장성보험인 종신보험을 저축 또는 연금으로 변칙 판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감원은 태평하게 금융꿀팁이나 발표해서 소비자들에게만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에 필자는 금감원이 연금전환형 종신보험 판매 중지를 지시(2014년 8월)했듯이 연금 받는다는 종신보험 판매를 중지시켜야 한다고 수차 지적했다. 그 후 금감원이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는데, 맹탕 대책이었다. 종신보험 상품 안내장에 “연금 목적에 적합한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하라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보험사와 한통속”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보험사 말에 속아서 종신보험을 잘못 가입했다는 민원이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금감원은 88회 금융꿀팁(2018.5.31)을 통해서 “종신보험은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연금상품이 아님”이라고 또 다시 소비자들에게만 주의를 당부했다.

금감원의 존재 이유는 보험사들의 돈벌이 지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비자(국민) 보호이다. 금감원이 금융꿀팁을 준비하고 발표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보험사들의 불완전판매와 보험금 부당 지급을 근절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여 실행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당연한 일이다.

명색이 금융사를 감독하는 금감원이라면 이름값을 해야 한다. 보험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금융 개혁이나 혁신성장이 아니라 보험을 안심하고 가입해서 보험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금감원이 금융꿀팁을 계속 발표하는 것은 본업인 ‘금융감독원’을 포기하고 스스로 ‘금융꿀팁원’, ‘금융당부원’으로 가겠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아니라면 본업인 감독 업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금융꿀팁으로 면피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것이다. ‘금융꿀팁’은 명칭도 어색하다. 감독당국의 공식 문서에 ‘꿀팁’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매일같이 10억원 이상의 거액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사용 금액에 비해서 하는 일이 많으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보험민원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신음하는데 금융꿀팁이나 발표 하며 나 할 일 다했다고 하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니다. 금융꿀팁 보다 실효성 있는 ‘보험 민원 근절 대책’을 수립, 실행하는 것이 먼저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피해 보지 않도록 밥 값을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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