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을 가입하더라도 보험료를 카드로 내기 어렵다.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보험료 카드 납입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즉, 대형 보험사들은 보험료 카드 납입을 허용하지 않고, 중소형 보험사들도 일부 상품, 일부 채널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그것도 특정 제휴카드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은 소비자들이 보험료를 카드로 납입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보험료 카드 납입을 기피하는 이유는 카드 수수료 때문이다. 보험계약자들이 보험료를 카드로 납입하면 보험사는 카드사에 2.2% ~2.3%를 수수료로 지급해야 하는데, 보험사들은 현행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판단해서 보험료 카드 납입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쟁점은 현행 카드 수수료를 낮추는 것이다.

‘보험료 카드납입 확대’는 오랫동안 단골 메뉴로 거론되어 왔다. 해가 바뀌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금융 수장들이 ‘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한 대책이라며 서둘러 발표했다. 그러나 거창한 구호가 무색하게 달라진 게 없다. 보험업계와 카드업계는 그 때마다 마지못해 협의하는 시늉만 내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줄다리기만 하다가 결말 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취임하자마자 ‘보험료 카드납부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결하지 못한 채 무산되어, 최 원장의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이 되고 말았다.

보험업계는 카드결제가 향후 활성화되면 카드납 비중이 현재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서 수수료율을 1%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1%는 보험료 자동이체 할인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카드업계는 수수료를 깎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의 주장대로 수수료를 1% 대로 낮추면 시스템 유지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드업계는 최대 인하 폭이 0.2~0.3%p라고 맞섰고, 장고 끝에 0.3%p 이하의 조정방안을 제시했지만, 보험사의 요구와 거리가 멀다.

금감원은 “쌍방의 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드사와 보험업계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고, 가맹점 계약은 보험사의 자율적인 부분이라 금융당국이 관여할 수 없다”는 해명이 고작이었다.

그렇다면 금감원장은 시작부터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핵심 쟁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섣불리 발표한 것이라면 “현장 모르는 금감원장”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상황을 알면서도 서둘러 발표했다면 과욕을 부렸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최 원장은 채용비리 의혹에 따라 지난 3월 12일 불명예 퇴진하였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다. 보험료를 내는 자는 보험계약자이고, 보험료를 카드로 납입하려는 자도 보험계약자이므로 이 문제는 소비자(보험계약자) 입장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접근하고 따져야 답이 나온다.

소비자는 보험사, 카드사의 돈벌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보험사, 카드사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주인을 제쳐놓고 머슴들끼리 우격다짐 하고 있으니 볼썽 사납다. 보험사나 카드사 모두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한 번이라도 소비자의 편익 제고를 위해 타협한 적이 있는가? 행여, 없다면 소비자들로부터 지탄 받아 마땅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보험사의 전년도 실적(영업이익)이 발표되는데, ‘사상 최대 이익 실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손해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3조87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8%(4088억원) 증가했고, 생명보험사의 당기순이익도 63.4%(1조5336억원) 증가한 3조9543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고울 리 없다. 소비자 덕분에 발생된 이익을 그들만의 배당과 성과급 잔치로 모두 소진하기 때문이다. 양심 있는 보험사들이라면 이익의 일부를 소비자들에게 환급해야 한다. 보험료를 조속 인하하라는 얘기다.

‘수수료 인하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던 신용카드사들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다. 5개 신용카드사의 영업이익은 총 2조3196억원으로, 2016년(1조9981억원)보다 16%, 2015년(1조9042억원)보다 22% 늘었다. 매출 증가 때문이거나 일회성 이익이란 설명이지만 소비자들이 보기엔 엄살이고 핑계에 불과하다. 카드수수료를 내리라는 얘기다.

금감원은 카드 적격비용을 재산출하는 올 하반기에 해당 내용을 재 논의하겠다며 사건을 일단 봉합했다. 그러나 시간 끌 일이 아니고, ‘소비자 권익 보호’와 ‘편익 제고’를 위해 금감원이 적극 나서서 조속 결말을 내야 한다. 손 놓고 있다가 또 다시 헛발질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물밑 작업을 해야하고, 안되면 멱살을 잡고 싸워서라도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 금감원이 이름값을 하는 것이고 밥값을 하는 것이다. 보험사와 카드사간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도록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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