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

지난해 11월 17일 치러진 대입 수능시험 언어영역에서 보험 관련 문제가 무려 6개나 출제되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제는 고교생들도 보험을 올바로 알아야 하는 시대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한편, 보험이 누구에게나 생활필수품이 된 시대임을 새삼 실감하였다.

보험을 가입하는 목적은 보험금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보험으로 혜택 보았다는 사람보다 손해 보았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매번 보험을 가입해서 손해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장성보험인 종신보험의 경우 가입자의 74%가 10년 이내 해지하고, 저축성보험인 변액보험의 경우 5년 지나면 43.0%, 10년 지나면 18.6%만 잔존한다. 가입 후 10년 안에 10명중 무려 8명이 중도에 포기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보험사들은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여전히 판매에만 몰두하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소비자들이 비싼 보험료를 내고 보험을 가입했는데 어째서 중도에 포기해서 실패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보험을 잘 모르고 섣불리 가입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당초부터 보험사(보험설계사, 대리점)의 불완전판매가 주된 이유고, 가입자의 묻지마 가입이 주된 이유다. 또한 당국의 소비자 보호 의지와 역량이 부족한 것도 큰 이유다.

우선, 보험사의 불완전판매가 잘못이다. 소비자를 위한 보험이라기보다 보험사 돈벌이를 우선하여 판매하다 보니, 변액보험을 적금으로 판매하고, 종신보험을 연금 받는 보험으로 포장해서 팔기도 한다.

단기 목돈마련이 필요한 사회초년생에게 종신보험을 가입시키고, 공시이율이 은행보다 2배 높다면서 저축보험료에만 적용되고 가입 후 이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은 알려 주지 않는다. 사업비율 대신 ‘보험가격지수’를 공부해서 가입하라니 속이 뒤집힌다.

실손보험료를 매년 20%씩 인상하면서 갱신을 통해 100세까지 보장 받는다는 광고를 버젓이 하고, 간편심사만 통과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고 광고해서 건강한 소비자에게 보험료 바가지를 씌운다. TV홈쇼핑은 주의사항 보다 장점만 지겹게 강조하며 즉흥 가입을 유혹한다.

암 치료비를 청구하면 직접적인 치료목적이 아니라고 거절하고, 자문의 소견이라며 거절하기 일쑤다. 채무부존재소송을 남발하는가 하면 보험금 적게 받겠다는 화해신청서를 작성해 오란다. 가입자를 보호하려고 도입한 손해사정사 제도는 대부분 보험사 용병 노릇으로 전락되어 변칙 운영되고 있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다.

다음, 가입자의 묻지마 가입, 즉 무지(無知)나 부주의가 문제다. 보험은 내와 내 가족이 필요해서 가입하는 것인데, 설계사 권유로 인정상 가입하다 보니 설계사가 골라 준 보험을 마지못해 가입하고, 보장내용과 유의사항 설명은 생략되거나 뒷전이다.

가입자 스스로 잘 알려고 들으려고 하지 않고 섣불리 묻지마 가입을 반복하니 실패를 자초한다. 설계사가 퇴직하면 따라서 유지를 포기하고, 좋은 상품 나왔다는 말에 갈아 타기해서 한 동안 유지하다 또 중도 해지해 버리니 보험금 신청은 언감생심, 보험사 돈벌이에 일조하고 매번 아까운 보험료만 속절없이 낭비하며 애를 태운다.

당국의 미지근한 조치도 문제다.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려면 당국의 근원적 조치가 필요한데, 매번 그 밥에 그 나물이다. 큰 사고가 터져야 사후약방문이고, 적발해도 솜방망이 처벌이니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 민원의 64%를 보험 민원이 차지하고 있는데도, 해야 할 일 대신 ‘금융개혁’ 한다며 보여 주기식 정책에 매달리고, ‘소비자경보’니 ‘금융꿀팁’이나 발표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소비자들이 아무리 정신 차려 주의해도 보험사들이 작정하고 의도하면 당해 낼 재간이 없다. 당국의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당국이 소비자들에게 주의하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마치 경찰이 도둑 잡을 생각은 안 하고 주민들에게 문단속만 잘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소비자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 중도 해지할 보험이면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는 것이 낫다. 보험을 가입해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묻고 따져서 잘 알고 가입해야 한다. ①나에게 정말 필요한 보험인지 ②가입 목적에 맞는 보험인지 ③내 소득에 적정한 보험료인지 ④가성비 좋은 보험인지 묻고 따진 후 신중히 가입하고 ⑤일단 가입했으면 끝까지 유지해서 보험금을 받아야 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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