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은 현재진행형, 무모한 마이웨이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에 대한 연설문 유출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5%. 2012년 51%의 지지를 얻어 탄생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이다. 역대 대통령 최저치다. 민심은 대통령을 버렸다. 아니 버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다. 국민 100명 가운데 95명이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자초한 대통령은 민심을 버렸다. 동점심 유발 작전이 무위로 돌아가자 시간을 끌며 ‘구렁이 담넘어가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하야 여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직후였다.

이날 박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순실 씨는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제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최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입수하고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는 의혹을 일부 인정했다.

◆최씨 개입 인정

박 대통령은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사과 직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탄핵’이 자리했고 뒤이어 ‘박근혜 탄핵’, ‘박근혜’, ‘하야’ 등이 상위권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뿐만아니라 진보성향 거대 커뮤니티는 물론, 극우성향의 일베저장소에서도 탄핵과 하야에 대한 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수사 수용 입장을 밝히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루 뒤인 10월 26일부터는 이화여대 총학생회를 시작으로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충남대, 경북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카이스트 등 대학가 시국선언이 계속 이어졌다. 교사와 공무원이 공동으로 시국선언에 나섰고, 교수, 종교계, 문화계도 침묵을 깼다. 각 지역 청소년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는 소식도 연일 이어졌다.그리고 지난 29일 서울 도심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이 타올랐다. 전주에서는 버스 경적을 이용한 시위가 3분간 이어졌고 부산과 광주, 울산, 제주 등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거리로 나온 국민들은 하나 같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4일 오전 청와대에서 두 번째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발표 내내 울먹였다. “모든 게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는 심경도 토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는 ‘감정’은 있었지만 의혹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번 사태를 ‘최순실씨 관련 사건’으로 규정했고, 최씨와의 관계는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

◆해답은 단 하나

하야를 촉구하는 민심도 외면했다. 박 대통령은 “국내외에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하루라도 중단돼서는 안된다”며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박근혜 대통령 퇴진 2차 국민행동 및 촛불집회가 열린 11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한 어린이가 '하야하라 박근혜!'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음날인 5일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는 일주일 전 1차 촛불집회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 20만명이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로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 지지율 5%’를 반영하듯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8일 국회를 방문해 사실상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철회를 의미하는 국회 추천 총리 카드를 꺼내며 ‘최순실 정국’ 수습을 시도했을 뿐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시간끌기’로 규정하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감정’만 있고 ‘팩트’가 없는 대국민담화
‘국회 추천 총리’ 카드…사실상 ‘시간끌기’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오전 제29차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대통령이 조기에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국정 수습을 맡기겠다고 선언해 주는 것이 가장 빠른 수습 방안이다. 다른 꼼수나 시간 끌기가 필요 없다”며 “모든 국민이 명백히 알고 있는 해법을 청와대만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8일 “(국무총리 추천)을 국회에 던져놓고 합의하라고 하는 것은 시간벌기용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이 국민의 성난, 분노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드저지전국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1월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및 사드 배치 철회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3년 8개월동안 국정은 평범한 ‘강남 아줌마’ 최씨에게 휘둘려왔다. 최씨 그림자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사드배치’, ‘평창올림픽’, ‘개성공단 폐쇄’, ‘노량진시장현대화 사업’, ‘늘품체조 국민체조화’, ‘국정교과서’ 등 어디에나 있었다.

국정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무회의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담긴 통화 기록이 나오기도 했으며,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는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의 일정‧의제 등을 최씨와 논의하는 내용이 녹음된 파일이 발견됐다.

◆커져만가는 국민의 분노

11월 12일 민중총궐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서울광장 집회 인원을 5만명으로 신고한 만큼 이번 집회에는 50만명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야 외침 외면, 국정 지속운영 의지 피력
12일 민중총궐기 최소 50만명 집결 예상

지난 대선 박 대통령을 선택한 1577만여명의 유권자들은 ‘이러려고’ ‘1번’을 찍은 게 아니다. 국민의 혈세 또한 ‘이러려고’ 낸 게 아니다. 참담한 사태를 마주한 국민들은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약 열흘 동안 소주 매출이 전년 대비 25.4% 급등한 것도 혼란스러운 정국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도중 ‘커터칼 테러’를 당한 뒤 “대전은요?”라는 말 한마디로 언론의 주목을 끌었고, 당시 열세였던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후 일부 언론은 “보수언론이 박근혜의 ‘대전은요?’ 발언을 대대적으로 띄워 2006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며 “거짓말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박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묻고 있다. “민심은요?”

범서방파에서 혜실게이트까지

희대의 막장드라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혜실게이트)의 시작은 ‘폭력조직 범서방파의 도박 수사’였다. 지난해 검찰은 해외 원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범서방파 조직원을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100억대 도박 혐의가 밝혀졌고 정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됐다.

정 대표는 보석을 위해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를 수임료 20억원, 성공보수 30억원으로 선임했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8월의 실형을 받았다. 정 대표는 최 변호사와 수임료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급기야 올해 4월 구치소 접견실에서 최 변호사를 폭행했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를 고소했지만 고액수임료 논란이 불거지면서 오히려 최 변호사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사태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커지자 정 대표는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를 통해 구명로비를 벌였고, 당시 홍 변호사가 전관예우로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운호 게이트’가 시작됐다.

홍 변호사의 재판 도중 홍 변호사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친분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우병우 게이트’가 비화됐다. 이후 조선일보는 우 전 수석이 처치곤란해 하던 부동산을 넥슨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매입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청와대와 조선일보는 대립각을 세웠다.

TV조선이 청와대가 미르‧K스포츠재단이 기업의 출연금을 모집하는데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새누리당은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의 접대를 받았다는 폭로로 맞섰다. 사태는 송 주필의 보직해임으로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9월 한겨레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최순실씨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현 정권의 비선실세로 보인다는 보도를 내면서 ‘박근혜 게이트’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실이 드러났고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이 사임하게 됐다.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다룬 언론보도가 쏟아지자 청와대는 ‘헛소리’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JTBC가 입수한 최씨의 태블릿PC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연설문 등의 파일이 나오면서 ‘비선 실세’는 현실이 됐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최씨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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