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절벽 암운 드리운 울산, 해법은?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현대중공업이 경영진 세대교체를 알리는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면서 구조조정을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새로운 현대중공업의 방향타를 잡게된 인물은 부회장으로 승진한 권오갑 사장. 권오갑 부회장은 내부 경영을 챙기게 된 강환구 사장과 함께 위기극복을 위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7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권오갑 부회장 체제를 구축했다. 권오갑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현장 전문가인 강환구 사장이 주력인 생산‧설계를, 가삼현 사장이 선박영업을 책임지는 구조다.

권호갑 부회장은 지난 2014년 하반기 현대중공업의 구원투수로 발탁돼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조선 경기 부진에 적자 폭이 커진 상태였고, 노조는 19년간 무분규 기록을 깨고 파업 위기에 내몰리는 등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경영정상화까지 급여 반납

권오갑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의 지분을 매각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했고, 임원을 대거 감축하는 동시에 과장급 이상 직원 등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조선계열 3사 임원 31%와 과장급 이상 1300여명의 인원이 감축됐다. 2014년 12월말 기준 2만8291명에 달했던 현대중공업 임직원 수는 2016년 6월 기준 2만4416명으로 줄었다.

올 들어서는 현대중공업그룹 내 금융 계열사를 연내에 모두 판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이투자증권, 하이자산운용, 현대선물 등이 대표적이다. 지게차와 태양광, 로봇, 터보기계 등의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한 뒤 내년 상장 전 자금 유치(프리 IPO) 방식으로 매각하기로 하는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조선 사업 부문도 대거 정리하기로 했다. 1조5000억원가량의 유가증권과 부동산도 내년까지 현금화한다는 계획이다.

▲ 권오갑 현대중공업 신임 부회장(왼쪽), 강환구 현대중공업 신임 사장(오른쪽). 사진=뉴시스

권오갑 부회장 본인도 고삐를 죄고 있다. 권오갑 부회장은 사장에 취임한 뒤인 2014년 11월부터 무보수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노조가 임금 동결 등의 문제로 파업 강행 방침을 밝히자 권오갑 부회장은 사내 게시판에 파업관련 호소문을 게재하며 파업 참여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권오갑 부회장은 “회사가 2~3분기 연속 적자로 수조원대 손실을 입고 최근 비상경영에 돌입했다”며 “회사 사정을 감안해 파업참여를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악순환 빠진 노사관계, 의견대립 ‘팽팽’
현대오일뱅크 이익률 1위 비결 ‘스킨십’

권오갑 부회장은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급여를 모두 반납하겠다”며 “노조도 회사 정상화에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그 무렵 권오갑 부회장은 사재를 들여 현대중공업 주식 2억원 어치를 매입하기도 했다.

권오갑 부회장은 장인상을 당하고도 가까운 친척 외에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5월 12일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90세인 권 사장의 장인이 지난 10일 별세했다”며 “권 사장은 회사는 물론이고 가까운 지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비서진에도 “개인적인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권오갑 부회장은 장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임금‧단체협약 교섭 등 예정된 업무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오후 늦게 상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은 장례식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빈소도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사인 서울 아산병원이 아닌 서울 보라매병원에 차렸다. 5월 12일 오전 발인을 마친 그는 곧장 울산으로 다시 내려갔다.

◆실적으로 이어진 경영철학

권 사장은 2012년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주말 자택에서 상을 치르고 다음주 월요일에 정상 출근했다.

권오갑 부회장은 ‘스킨십 경영’으로 유명하다.

권오갑 부회장은 현대오일뱅크 사장 재임 시절, 매주 화요일마다 충남 대산 현대오일뱅크 공장을 찾아 직원들과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자신이 기르던 진돗개가 낳은 암수 강아지 한쌍을 노사화합의 의미를 담아 노조위원장에게 선물한 일화도 있다.

권오갑 부회장은 현대오일뱅크의 대표 ‘효도 문화’로 자리잡은 ‘신입사원 부모님 초청 산업시찰 행사’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현대오일뱅크는 2011년부터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신입사원 부모님을 초청해 1박2일에 걸쳐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권오갑 부회장은 “자녀가 현대오일뱅크에 입사했으니 부모님도 현대오일뱅크 가족이다. 가족끼리 최소한 밥 한 끼는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이밖에도 그는 매주 금요일 저녁 직원들과 함께하는 ‘경영진과 대화’ 시간을 마련하는가 하면 사장 업무용 차량인 에쿠스를 직원들의 경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직원들을 살뜰히 챙겨왔다.

권오갑 부회장의 ‘스킨십 경영’은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이어졌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 찬반 투표를 벌인 2014년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권오갑 부회장은 울산 본사 정문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 “회사가 거득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직접 나눠줬다.

권오갑 부회장은 가급적 점심 약속을 잡지 않고 공장 내부에 있는 구내식당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저녁도 공장 내에 있는 6개 기숙사 내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같은 권오갑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실적으로도 이어졌다. 정유업계 후발주자였던 현대오일뱅크는 2011년부터 영업이익률 부문에서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14년 위기에 봉착한 현대중공업 구원투수로 등판한 뒤에는 수주절벽과 구조조정 등 풍파를 이겨내고 2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뤘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8824억원, 순이익 6383억원을 기록하며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상반기 흑자를 냈다. 올해 3분기에도 영업이익 3218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에 비해 흑자전환했다. 같은기간 매출액은 8조8391억원으로 19.04% 줄었으나 순이익은 334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안살림은 강환구 사장이

경영전반에 나선 권오갑 부회장의 눈 앞에 놓인 과제는 수주회복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조선과 해양‧플랜트부분에서 모두 126억 달러를 수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올해 9월 말 기준 목표의 17%에 불과한 21억 달러 수주에 그쳤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사인 비하르인터내셜널로부터 아프라막스급 탱커 4척과 MR탱커 4척, 38k LPGtjs 4척 등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현대중공업은 아프라막스 탱커를, 현대미포조선은 MR탱커와 LPG선을 각각 수주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중공업이 이 사업을 수주하면 실적회복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제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의 신조선 발주 수요는 2017년 회북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라며 “현재 탱커선, LNG선, 이란 컨테이너선 등 수주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연말에서 2017년 초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유 연구원은 “수주잔량 감소로 인한 외형축소는 2017년에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신조선 수요 회복 속도도 빠르지 않아 경쟁사들 간의 수주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우디 선박 수주 유력, 실적회복 단초될까?
전문가들 “몸집 축소 불가피, 일단 살아남아야”

강동진 NMC투자증권 연구원도 “조선‧해양 부문 사업축소는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판단된다”며 “결국 살아남는 데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강록 교보증권 연구원은 “3분기 정지마진 감소, 일회성 비용 등이 발생했음에도 3218억원의 영업이익 달성은 고무적이었지만 현재 수주단고가 1년치 미만으로 신규 수주 증가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연구원은 또 “현재중공업이 지속적 원가절감 활동과 사업부 분사 등을 계획하며 유동성 확보를 지속적으로 진행중이고 조선업이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임을 감안할 대 결국 최후까지 버티는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갑 부회장이 대외 경영환경에 대응하는 동안 내부 경영은 강환구 사장이 챙긴다. 강환구 사장은 권오갑 부회장과 공동 대표이사직을 수행한다.

강환구 사장은 1955년생으로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내 설계‧생산‧기획 등 조선사업 주요 분야를 두루 거친 뒤 2014년 10월부터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사장으로 근무해 왔다.

▲ 2015년 4월 20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울산 본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는 구조조정과 강제퇴출교육을 즉각 중단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환구 사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노조와의 갈등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17일까지 45차례 임단협 교섭을 벌였지만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조는 사외이사 추천권 인정, 이사회 의결 사항 노조 통보,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퇴직자 수만큼 신규사원 채용, 우수 조합원 100명 이상 매년 해외연수, 임근 9만6712원 인상(호봉승급분 별도), 직무환경 수당 상향, 성과급 지급, 성과연봉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 측은 대부분의 요구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사 측이 요구하고 있는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단체협상과 조합원 해외연수, 20년 미만 장기근속 특별포상 폐지, 탄력적‧선택적 근로 시간제, 재량 근로 실시 등은 노조에서 수용 불가 입장이다.

◆노사 협상의 대가

회사 측은 강환구 사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강환구 사장은 현대미포조선 대표로 재임할 당시 매년 무분규 임단협 타결에 성공했고, 그룹의 조선 계열 3사 중 가장 먼저 기본급 동결로 노사협상을 마무리 지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강환구 사장은 지난 19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경주에서 열린 세계조선소대표자회의(JECKU)에서 “가장 큰 현안은 노사 간의 문제”라며 “우리 내부적인 문제 먼저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현대중공업을 이끌어왔던 최길선 회장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지만 회장직을 유지하며 그룹의 정상화에 집중할 방침이다. 현대중공업은 또 가삼현 선박해양영업본부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사장에는 현대중공업 조선사업 생산본부장인 한영석 부사장이 승진‧내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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