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만 ‘무성’, 해결은 ‘난망’

▲ 이주열(왼쪽) 한국은행 총재와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문제는 드러났다. 사건의 주범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불을 끄는 게 급선무다. 그런데 해결 방안을 두고 새로운 신경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불을 꺼야 할 주체들이 “내 방식이 옳다”며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속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나올 방안은 거의 나온 것 같다. 어떻게 조합하느냐만 남았다. 가장 어려운 문제다”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 진행 상황에 대한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국책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직접적인 출자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자본확충펀드,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 산업금융채권 등 다양한 방안이 정부와 한은, 정치권에서 제시됐다.

문제는 각 기관의 입장 차이가 첨예해 조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재정보다는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희망하고 있지만 한은은 현행법에서 가능한 해법을 찾자는 입장이다.

정치권의 생각도 정당별로 엇갈린다. 여당의 정책위의장은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은 방법을 찾자고 밝혔으며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한은의 발권력 동원에 부정적이다. 캐스팅보트권을 쥔 국민의당은 추경 얘기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으로 구성된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는 자구노력 최우선과 국민부담 최소화라는 원칙에 맞게 다양한 방안을 논의해 다음 달 말까지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여러 기관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경우 예정보다 결론에 도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한은, ‘동상이몽’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에 대한 정부와 한은의 시각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내심 한은이 직접 출자하기를 바라고 있다. 추경 편성은 국회를 거쳐야 해 시간이 걸리는 데다 ‘여소야대’ 정국을 앞두고 국회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을 해치고 부실기업에 혈세를 쏟아 붓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 한은의 직접 출자는 현행법상 수출입은행에 대해서는 가능하지만, 산업은행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한은의 출자를 위해 필요하면 관련법까지 개정할 수 있다며 한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원회도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해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을 발행하고 이 펀드를 한은이 사들이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한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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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은은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이 출자하는 방식이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만한 타당성이 필요하다”며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자보다 대출하는 방식이 보다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책은행 출자에 이 총재가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대신 2009년 운영된 바 있는 자본확충펀드를 제안했다. 자본확충펀드는 한은이 시중은행에 채권을 담보로 대출하면 은행들은 그 자금으로 펀드를 만들어 다시 시중은행에 대출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한은은 2009년 산업은행에 약 3조3000억원을 대출해주고 시중은행들의 자본 조달이 원활해진 후 원금을 회수한 바 있다.

◆정치권도 ‘제각각’

정치권의 의견도 제각각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부의 주장보다 더욱 신속하게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광림 새누리당 신임 정책위의장은 최근 “법 개정 없이 정부 차원에서 할 방법부터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거론하는 한은의 직접 출자와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새누리당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김 의원의 발언에 비춰볼 때 일각에서는 금융안정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안정기금은 부실 판정을 받거나 부실 징후가 있어야만 투입되는 공적자금과 달리 정상적인 금융기관에 출자나 대출, 채무 보증 등을 지원하는 자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6월 조성됐으나 설치 이후 실적은 없었다.

다만 금융안정기금 활용 방식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달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안정기금에 대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으로 실효돼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구체적인 실탄 마련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데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했을 때 부실이 생기면 결국 손실을 혈세로 메워야 한다.

이 점에서 정부 재정 투입과 한은의 발권력 동원이 같지만, 정부가 한은을 통해 우회하는 방안을 택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는 정부의 구조조정 접근 방식에 대해 “갑자기 양적완화란 말만 툭 꺼내고 이런 방식으로 국민 동의를 받아 부실을 털 대책을 세울 수 있느냐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도 구조조정 지연에 대한 책임 소재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더민주와 같지만 추경에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구제금융과 자본확충이란 미명 하에 한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길을 열겠다는 발상이라면 국회는 그냥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추경 등 필요한 국회 일 처리에 신속,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수단 동원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이번달 초 자본확충 방안과 관련해 ‘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 조합)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이후 정부는 재정과 통화정책을 적절히 조합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번달 말 출범하는 ‘여소야대’ 20대 국회에서 정부가 야권 협조를 얻기 쉽지 않은 만큼 국회를 거치지 않는 방안들의 조합이 우선하여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먼저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 가운데는 추경 편성과 세계잉여금 출자,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 주식 현물출자 등이 있다. 추경으로는 상대적으로 큰 규모로 자본확충을 할 수 있지만 국회 표결이라는 험로를 지나야만 한다. 정부는 재정 동원에 있어 국회 논의나 동의가 필요한 절차는 가급적 피하려는 듯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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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의 대응 능력과 책임성에 대한 비난이 집중될 수 있는 만큼 이를 되도록 피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유 부총리가 “(야당이 추경에 협조할 뜻을 밝힌 데 대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며 구조조정을 위해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낳는 발언을 한 직후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과 관련) 진행 중인 게 없다”고 확대해석을 차단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2조5000억원 가량의 세계잉여금 중 국가채무 상환 등에 써야 할 액수를 제외한 여유분 등을 전용하는 방법은 일단 정부 결정만으로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 있게 거론된다.

한국전력공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지분을 현물출자하는 방식도 자금 규모가 한정적이지만 국무회의 의결로 시행할 수 있다. 한은이 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자본금 직접 출자나 산업금융채권이나 수출입금융채권 인수, 코코본드 매입 등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한은이 정부가 선호하는 직접출자 대신 자본확충펀드 카드를 뽑아들고 나선 만큼 ‘폴리시 믹스’를 둘러싼 경우의 수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는 구체적인 자본확충 방안을 올 상반기까지 만들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다음 회의까지 기관 간 실무진 논의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기 전에 여기저기서 앞서나가는 느낌이 있다”며 “협의체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상시 기업지원, 어떤 게 있었나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의 자금투입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면서 개인이나 기업을 상대로 한 정부와 국책은행의 평상시 지원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산업은행의 경우 대기업에 대한 중장기자금의 공급 및 기업 구조개선 업무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은 올해 예비중견·중견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23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고 1조원 규모의 전용 특별운영자금 대출을 출시한다.

한국은행의 대표적인 지원제도로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이 있다. 이는 한은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중은행에 저리로 지원하는 자금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일정 한도 내에서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대출실적 등을 감안해 한은이 은행별 한도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정부도 중소기업이나 창업초기 기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개발기술사업화사업 ▲긴급경영안정지원사업 ▲사업전환지원사업 ▲신성장기반지원사업 ▲창업기업지원사업 ▲투융자복합금융사업 등 융자 사업 6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예산 기준으로 모두 3조5100억원이 투입된다.

자영업자의 경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1억원까지 저리 대출을 해준다.

준정부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역시 물적담보가 부족한 기업이 자금을 원활하게 융통할 수 있도록 보증대출을 지원한다. 이밖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경우 기업의 부실채권을 인수해 대신 정리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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