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은행권이 숙원이었던 ‘투자일임형’ 진출에 성공했지만, 촉박한 준비기간으로 인해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관련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구축해야하는데 제도 시행까지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한 달밖에 없기 때문이다.

1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Individual Savings Account) 활성화를 위해 은행에도 투자일임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은행도 증권사처럼 ISA 계좌에 들어있는 자금을 고객 대신 운용해 주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오랜 저금리 기조로 예대마진이 크게 줄어든 은행들은 일임형 ISA 판매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ISA 계좌에 한해 허용되긴 했지만 은행권이 투자일임업에 진출하게 된 것은 상당히 의미 있고 반가운 일”이라며 “신탁형과 일임형 ISA를 모두 취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증권사와의 영업 경쟁에서도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간절히 원하던 투자일임업 카드를 손에 쥐긴 했는데 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금융위는 다음달 초까지 은행업 감독 규정 개정, 투자일입업 등록 신청서 접수 등을 거쳐 같은달 말 은행에 대한 투자일임업 라이센스를 부여할 예정이다.

ISA가 다음달 14일 출시되면 증권사는 일임형과 신탁형 ISA를 곧바로 판매할 수 있다. 라이센스 취득을 위해 일임형 상품 판매를 보름 가까이 미뤄야 하는 은행은 안 그래도 부족한 준비 기간에 마음까지 졸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임형 ISA 허용이 환영할 일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다음달까지 관련 준비를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시간은 한 달뿐인데 아직 전문 인력을 얼마나 충원할지, 포트폴리오 등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할지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원래부터 투자일임업을 해온 증권사가 먼저 일임형 ISA를 판매하기 때문에 우리도 최대한 빨리 준비를 마쳐야 한다”며 “지금 상황이라면 매일 밤샘 근무를 해도 모자를 판”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는 전문적으로 투자일임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없기 때문에 증권사 등에서 관련 인력을 수혈할 필요가 있다”며 “ISA 출시 초기에 은행들이 자산운용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일 경우 자칫 증권사와의 경쟁에서 크게 뒤쳐질 수도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실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총 지점수나 인력면에서 증권사가 은행에 크게 밀리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증권사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자산운용을 선보인다면 일임형 ISA 판매가 허용된 은행과의 경쟁에서 충분히 겨뤄볼만 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그동안 은행권이 투자 일임업 진출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나타내온 만큼 일임형 ISA 판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준비는 해 왔을 것”이라며 “단 일임업 허용 발표가 난 뒤 실제 준비를 하는 기간이 짧은 것은 사실이고 아무래도 증권사보다는 관련 노하우가 부족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ISA가 출시되면 은행은 보병, 증권사는 유격대 같은 방식으로 각각의 특성을 살려 영업을 펼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다시 말해 은행은 조금 더 안정적인 상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증권사는 새로 개발하는 상품을 통해 공격적으로 자산관리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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