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급금은 ‘보험급여’…의사 행위 따른 ‘요양급여’와는 다른 것
경제적 부담 덜어주기 위한 의료비 환급 ‘형태’…의료비 자체 아니야
“환급금 제하지 않으면 ‘이중 수령’…금감원도 문제없다 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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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의료보험은 일상적인 통원 등 소액의 의료비도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민 대부분이 갖고 있는 보험이기는 하지만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따른 환급금’ 발생과 관련한 부분이다. 나라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이하 건보)의 보장성 강화 차원에서 소득에 따른 상한액을 초과하면 그만큼 환급해주는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운영 중인데, 보험사는 이를 단순히 ‘본인부담액 경감’ 혹은 ‘경제적 이득’으로 해석해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이미 지급한 보험금을 환수하고 있다. 이렇게 줄어든 보험금은 그대로 보험사의 이익이 된다.

게다가 실손의료보험 판매 간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결국 설계사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고객은 보험에 가입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고객 몫이 된다.

◆ 환급금 이유로 보험금 일부만 지급…설계사 설명, 없었어

박현섭 씨(가명)는 지난해 9월 말 심근경색증으로 쓰려진 후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2009년 11월 A손해보험(이하 A손보)의 건강보험 상품에 가입했는데, 아들 창현 씨는 A손보에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보험사로부터 본인부담금 상한제 적용을 받아 병원비 일부가 건보에서 환급되니 그것을 제외한 보험금만 지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창현 씨는 “지난해 10월 중순에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건보료를 얼마나 내는지 묻더니 소득 3분위에 해당한다며, 본인부담금 상한액 101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건보공단에서 환급이 되니, 나머지는 그곳에서 받으라고 했다”며 “나머지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확약서를 쓰면 나머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확약서는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따라 환급금이 발생하면 지급된 보험금에서 그만큼을 보험사에 다시 돌려주겠다는 내용이다.

보험금을 다 줄 수 없다는 보험사의 통보에 창현 씨는 현섭 씨의 계약을 살펴보던 중 가입 당시의 녹취를 발견했다. 확인해보니 당시 설계사는 현섭 씨에게 본인부담금 상한제 관련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설계사가 누락한 것인지 몰랐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불완전판매고, 설명의무 위반이다. 창현 씨는 “불완전판매, 설명의무 위반, 관련 판례 등을 들어 문제를 제기하면서 보험금을 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고객님 말씀은 이해한다면서도 해당 부분이 중대한 사항인지 금감원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소비자보호파트 관계자라는 사람은 이 보험은 불완전판매이기 때문에 보험 취소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가입 후 3개월 이내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또다시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아 고객을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창일 씨는 불완전판매 및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보험금 미지급에 대한 과태료 등으로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 환급금은 ‘보험급여’…의사 행위 따른 ‘요양급여’와는 다른 것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건보의 보장성 강화 차원에서 환자의 연간 본인부담의료비 총액이 소득분위별 상한액을 초과하면 초과분만큼을 건보가 병원에 대납(사전환급금)하거나 건보 가입자에 돌려주는(사후환급금) 제도다. 급여 비용만을 대상으로 하며, 치료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감소를 보전해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취지다.

보험급여 중 현금급여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물급여인 요양급여와는 구분된다. 건보공단은 2015년 ‘실손보험사의 본인부담 상한제 자료 요구 민원 대응 방법 통보’에서 “환급금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9조에 따라 환자 본인이 부담한 금액이 일정 금액을 넘는 경우 해당 금액을 건보공단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보험급여’”라며 “의료비로 이미 지출한 비용을 현금으로 환급받게 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외의 소비재를 추가로 소비할 수 있는 소득 보전 성격의 금품”이라고 정의했다.

소득 보전을 위한 것이지만, ‘의료비 환급’ 형태로 이뤄지다 보니, 보험사는 이를 본인부담금이 줄어든 것으로 봐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지급한 보험금을 환수하고 있다. 해당 보험상품의 약관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금의 경우 국민건강보험법 관련 법령에 의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사전 또는 사후 환급이 가능한 금액’은 보험사가 ‘보상하지 않는’다. 관련해서 이같은 내용은 2009년 10월 제정된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에 따른 것이다. 실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한다는 보험의 취지에 따라 의료비 환급으로 본인부담금 자체가 줄었으니 보험금 역시 그만큼만 지급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환급금의 성격을 잘못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보험급여와 요양급여는 성격이 다르다. 요양급여는 의사의 행위에 대해 지급되는 것으로, 환자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요양급여 중 환자에게 환급되는 것은 없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2009년부터 수준별 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소득에 따라 상한액에 차등을 뒀는데, 개인 소득별 상한액 수준을 정하기 위해 공단 내 자료인 건보료를 쓰기 시작했다”며 “의사 행위로 규정되는 요양급여와 달리 의료비만으로 한정할 수 없는 특수한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즉, 질병‧부상 치료로 인한 소득 감소와 소득 감소 및 치료비 지출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의료비 환급의 ‘형태’를 띄는 것이지, 환급금 자체가 의료비는 아니라는 것이다.

◆ 건보 보장성 위축 및 형평성 훼손

하지만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서는 약관이 기준이듯, 보험사는 약관을 근거로 환급금 발생을 감안해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지급된 보험금을 환수한다. 이는 본인부담금 상한제 취지와 기능을 상당히 훼손하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본인부담금 상한제 사후환급금을 환자 본인부담금 경감으로 간주해 민간보험사에서 이를 공제하고 지급하는 것 자체가 건보법 및 상한제 도입 취지 등을 고려할 때 타당하다고 볼 수 없고, 건보의 보장성을 축소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건보법에 따라 운영‧관리되고 있는 반면, 민간보험은 당사자간 계약인 보험(약관)을 통해 보험금 수령 등이 결정되고 있는데, 약관을 법령에 우선해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환급금이 발생한다고 하지만,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연간 의료비 총액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의료비 지출 시기와 관계없이 한 해가 지나야 하고, 해가 바뀐 뒤에도 개인별 건보료를 정산해 상한액 기준 보험료가 결정된 뒤 정해지는 소득분위에 따라 상한액 초과금을 환급하기 때문에 환급금 수령까지 통상 수개월이 걸린다. 길게는 1년을 넘기기도 한다. 결국 환급금이 나오든 안 나오든 환자 및 가족의 의료비 지출 부담은 계속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환급금이 발생할 것이라는 이유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의료비 지출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창일 씨는 “병원비만 대략 한 달에 200만~250만원 정도 나온다. 보험금이 나와야 병원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을 텐데,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역차별‧형평성 문제도 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따라 보험금의 크기가 달라진다면 보험 가입자의 소득이 높을수록 보험금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지난해 기준 본인부담금 상한액은 소득 1분위 81만원(120일 초과 입원 시 125만원), 소득 10분위는 581만원이다. 소득이 적기 때문에 본인부담금 상한액이 낮은 소득 1분위가 오히려 이 제도로 인해 차별을 받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환급금을 보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역차별이며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에 역행하는 것으로, 형평성을 상실한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면서 “원칙적으로 보험금은 사고가 발생한 때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나 미래에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사후환급금)은 보험금 산정의 고려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실손의료보험 가입금액이 일반적으로 50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험사가 그동안 보험료를 과다하게 받아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험사가 실손의료보험의 높은 손해율 원인으로 지목하는 비급여 치료 비율을 높일 수도 있다.

◆ A손보 “환급금 제하고 보험금 지급, 문제 없어”

A손보는 창일 씨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A손보는 창일 씨의 금감원 민원에 대한 회신문에서 “환급금은 공단이 부담하는 보험급여비용으로 공적급여의 성질을 가진다”면서도 “요양급여 중 소득구간에 따른 개인별 본인부담 상한금액을 설정해 그 초과액을 보상하는 것으로서, 약관에서는 이를 보상하지 않는 손해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A손보 관계자는 “약관상 환급금이 발생하게 되면 사전에 제하고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실무를 처리하고 있고, 금감원에서도 문제없다고 한 부분”이라며 “만약 환급금을 제하지 않고 보험금을 지급하면 이중 수령이 되기 때문에 사전에 제하고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급여와 요양급여 성격이 다르다고 하지만, 약관상 표현이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따른 환급금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현행 규정상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맞고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은 실제 부담한 금액에 대해서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어떤 원인이든 실제 부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와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공‧사보험 연계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금융위와 복지부는 올해 12월 입법예고를 목표로 공동으로 보험업법 및 건보법 일부 개정안 및 공동시행령을 제정할 계획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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