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靑참모 출신 한은 총재 임명…브레이크가 사라졌다! ?

▲ 김중수 신임 한국은행 총재
[파이낸셜투데이=김경탁 기자] 3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으로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가 선임됐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차기 한은 총재 내정자로 김중수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가 내정됐다”고 발표했다. 김 내정자는 오는 23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후임 총재로 확정됐다.

김중수 총재는 1947년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한림대 총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의 초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뒤 주OECD 대사직을 수행해왔다.

김중수 총재는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활동하고 참여정부에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냈다가 현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 발탁된 이력을 갖고 있다.

재작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했지만 두 달 만에 OECD 대사로 복귀한 대표적인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사로, 특히 우리 경제현실과 맞지 않아 사실상 폐기된 747정책으로 대표되는 ‘MB노믹스’의 입안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 인선 배경과 관련해 청와대 측은 “한은의 중립성과 자주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런 문제 때문에 기획재정부 출신은 검토 대상에서 우선적으로 배제시켰다”고 밝혔지만 세간의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던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과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 비해서는 훨씬 무난한 인사라는 평이 한편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어윤대?강만수에 뒤쳐지지 않는 대통령 측근이자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김 총재의 취임으로,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정권의 입맛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정통 경제학자’지만 금융쪽 커리어 전무…무난하고 약해서 선택됐다?

김중수 “한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아니다”라는 소신
선진당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공복임을 천명한 셈”

이번 인선에 대해 한나라당 정미경 대변인은 “김중수 내정자는 폭넓은 경제지식을 갖췄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철학에도 밝고 전반적인 경제분야에 정통한 적임자”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미경 대변인은 특히 김 내정자가 현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 한은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 경제수석만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니라 원래 대학교수 출신으로, 경력을 본다면 충분히 독립성을 지킬 인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김중수 OECD 대사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낸 분으로 친정부 인사로 분류된다”며, “이명박 정부의 통화정책 관여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은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적임자인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우상호 대변인은 “김 내정자는 평소 ‘한국은행도 정부이며,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며, “비록 실망스러운 결과이나 내정된 만큼 한은 총재로서 한은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적극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의 노영민 대변인도 “명백한 코드인사로, 어렵게 지켜온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훼손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논평했다.

자유선진당의 평가는 민주당의 것보다 더 입맛이 썼다. 선진당 지상욱 대변인은 17일 ‘한국은행 총재인가? 청와대 경제수석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새로 임명된 김중수 한은 신임 총재 내정자의 인식을 보면 축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밝혔다.

지상욱 대변인은 김중수 신임 총재 내정자가 지난 12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정치적으로 또는 행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에 대해 “결국 자신은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공복임을 천명한 셈”이라며, “자기 자신을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 대변인은 “한국은행은 때로는 정부와 정책조율도 필요하겠지만 대통령의 뜻을 좇는 기관이 아니”라며, “한은의 본래 목적은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정책 결정을 통해 서민 경제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중수 한은총재 내정자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근무하던 지난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쇠고기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어윤대나 강만수는 너무 세서 기재부가 불편해했다?

김중수 신임 총재에 대한 한은 내부의 일차적 반응은 그동안 거론된 유력후보들에 비하면 가장 ‘무난한 인사’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 정부와의 소통이 강화되면서 이성태 총재 시절 불거졌던 대정부 갈등과 현안이 해소됨으로써 한국은행의 위상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중앙은행이 견지해야 할 독립성이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혼재되어있는 분위기이다.

이에 반해 그동안 한은과 갈등이 있었던 기획재정부는 김 총재에 대해 환영한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 총재가 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과 재정부 산하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낸바 있어 현 정권의 경제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재정부와 한은과의 더욱 긴밀한 정책공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시장에서는 김중수 한은 총재의 임명으로 이제 금리인상이나 출구전략 등 통화정책 결정 권한은 한국은행이 아닌 청와대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어윤대나 강만수는 너무 세서 기획재정부가 불편해했다”는 후문과 함께 굳이 어윤대?강만수 카드를 쓰지 않더라도 학자 출신인 김 내정자의 성향상 충분히 한은을 정권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그동안 한은 총재를 외부에서 선임할 경우 장관이나 부총리급 인물이 내정됐던 반면, 김 내정자의 현직인 OECD대사는 차관급으로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한은의 대정부 종속이 더욱 노골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더불어 한은이 ‘금융정책’을 통해 ‘경제’를 이끌어가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금융에 대한 전문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반해 ‘정통 경제학자’인 김중수 내정자가 ‘금융’ 쪽에는 커리어가 전무하다는 점이 큰 이유의 하나로 평가된다.

재계 일각에서 이미 예산편성(기획재정부)과 금융정책(금융위) 결정권에 더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예산 심의?의결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청와대가 한은까지 발아래 두게 됨에 따라 ‘브레이크’가 사라졌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경실련 “한은 독립에 대한 강한 실천의지 촉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경제안정을 기본 사명으로 하여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뿐 아니라 국제수지와 자산가치 안정도 함께 추구해야 하는 한국은행의 역할에 따라 한국은행 수장은 무엇보다 통화정책의 독립성에 대한 강한 의지와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데 과연 김 대사가 적임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중수 총재의 선임이 알려진 직후 경실련은 “경제 철학에 따른 강한 소신보다는 역대 정부와 모두 관계가 완만하여 좋은 자리를 두루 옮겨 다닌 처신으로 보건데 외부의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통화정책의 독립적 운영이 가능할지 많은 의문이 든다”고 논평했다.

경실련은 “최근 대통령과 경제부처 관료가 경쟁적으로 한은 금통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을 쏟아내고, 심지어 이미 사문화된 한은법의 정부 열석발언권을 명분으로 기재부 차관이 금통위에 참석하는 등 한은법에 명시된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려는 현 정부의 의도의 연장선에서 '현 정부와의 친화성'만을 고려하여 이번 인사가 진행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과거 정부 권력자의 외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부 정책을 추종한 잘못된 통화정책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친 중앙은행의 사례는 최근까지 존재한다. 근래 일본과 미국,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통화정책이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정부의 팽창정책에 밀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실기는 곧장 버블로 이어진다”며, “불확실한 경기, 안정된 물가를 이유로 금리인상을 주저했던 중앙은행들은 여지없이 자산가격 거품 문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엔화강세를 용인하기로 한 뒤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금리를 크게 낮추는 등 지나친 금융완화를 실시한 것이 버블생성의 직접적 원인이 되어 잃어버린 10년, 장기불황을 겪었다.

미국은 IT버블이 붕괴된 2000년대초에 당시 연준이 6.5%였던 기준금리를 사상최저인 1.0%까지 낮추며 경기부양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상환 능력이 의심되는 사람들에게까지 묻지마 부동산 대출이 실행되며 잠재적 부실이 양산되었고 이는 전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위기를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2년 플라스틱 버블(카드위기)에 이어 부동산시장 거품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현재까지 약탈하고 있다. 현재 현안이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도 당시 한은의 저금리정책에 따른 가계대출 급증이 직접적 원인이다. 2003년 당시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라 금리인상을 시도하려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긴축조치가 정부외압에 의해 무산되면서 저금리 정책이 지속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이와 같이 중앙은행의 역할은 정부의 경제 성장과 팽창 정책과는 상호 충돌되기 때문에 중립성과 독립성을 상실한 순간 그 후유증은 국민경제에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한은법에도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경실련은 “향후 김중수 한은 체제가 과거 한은의 오역의 역사를 상징하는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명실상부하게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유지하여 한은독립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 것인지는 오로지 김중수 내정자의 의지와 태도에 달렸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김중수 내정자에게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재정투입이 경제 각 부분에 거품이끼지 않도록 적절한 시기에 출구로 이동하는 시점 선정과 한은법 개정을 통한 금융감독권 강화 등 한은의 위상 강화라는 단기적 임무가 부여되었다”며, “두 가지 모두 정부의 주장대로 끌려가서는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결국 김 내정자의 한은독립에 대한 의지와 소신, 그리고 용기에 의해 결정될 것이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경제 전체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김 내정자는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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