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늘어도 재 식구는 챙긴다

[파이낸셜투데이=황병준 기자] 에너지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이 도를 넘고 있다. 160조원의 넘는 부채를 보유한 산업통상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이 퇴직자에게 순금 열쇠, 상품권, 여행비 등 과도한 기념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나 부채공기업의 도덕적 헤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토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는 임직원에게 학비로 매년 1000여만원을 지원하는가 하면 전 이사장의 손자손녀에게까지 학비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나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가 빚은 늘어나도 ‘재 식구 감싸기’에 열중하는 방만 공기업의 실태를 살펴봤다.

국토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JDC)는 임직원 자녀에게 과도한 학비를 지원해 빈축을 사고 있다. 문제는 이 학교가 일반고등학교의 13배가 넘는 한 해 학비만 2500만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JDC는 임직원 6명에게 1인당 1000만원씩 학비를 지급했다.

심지어 손자 손녀의 학비까지 지원했는데 이를 받은 사람이 지난 4년 동안 재임했던 변정일 전 이사장의 손자다.

과도한 학비 지원은 이뿐만이 아니다. 철도시설공단은 지난해 국제중학교에 다니는 직원의 자녀 학비로 842만 원을 지급했고, 토지주택공사도 2008년 예술고 자녀가 있는 직원에게 학비 917만 원을 지원했다. 정부에서 정한 공무원 자녀 학비가 고등학교만 183만 원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5배 가량을 지원한 것이다. 이처럼 국토부 산하 12개 공기업이 직원 학자금으로 최근 5년간 사용한 금액이 800억원에 달해 방만 경영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방만 경영의 현주소

지난 1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2012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퇴직자 357명에게 1인당 200만원의 전통시장 상품권과 100만원 상당의 국내 연수비용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퇴직자에 대한 지출액은 10억7,100만원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기준 24조 7000억원의 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한수원 측은 “퇴직자가 100만원 한도로 국내에 한해 여행상품을 골라오면 비용을 보전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 인사관리규정에는 10년, 20년 이상 성실히 근무한 퇴직자는 포상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다.
같은 기간 한국전력공사도 퇴직자 497명에 대해 1인당 200만원씩 9억9400만원 상당의 전통시장 상품권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에니지 관련 공기업인 서부발전과 남부발전은 지난해 8월까지 순금 1냥짜리 기념품을 주다가 작년 9월부터 전통시장 상품권 20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여기에 공로연수(50명) 비용 5000만원도 지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전과 발전사들 간의 퇴직자 기념품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난방공사도 1인당 270만원씩 11명에게 금을 지급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1인당 150만원 상당의 행운의 금 열쇠를 지급했다.

퇴직자에 순금열쇠 상품권 ‘펑펑’…자녀·손자 학비까지 지원
규정보다 많은 퇴직금 ‘팍팍’…낙하산 인사, 부채공기업 키워


해외자원개발 부실로 경영평가 최하위 등급을 기록한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순금 2돈의 기념반지(60만원)를 퇴직자 선물로 줘 그 나만 간소한 편이었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까지 상품권을 지급하다가 올해부터는 근속연수 1년당 15만원씩 개산해 가전제품 또는 여행상품권으로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공사는 이외에도 기념패 제작비용이 110만원이나 됐다.

김 의원은 “문제 많은 한수원은 다른 기관에서 잘 하지 않는 퇴직자들 여행경비까지 지원했다”며 “부채 더미에 올라앉고도 자구 노력은커녕 기념품 잔치를 벌인 공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규정 나 몰라라

국토교통부 산하 일부 공기업들은 퇴직자들에게 규정보다 많은 퇴직급은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국회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코레일,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9개 기관은 2010년부터 올해 7월까지 퇴직자 5,288명에게 90억9790만원의 퇴직금을 추가로 지급했다.

기획재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업 예산편성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경영평가 성과급 중 기존인건비 전환금만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9개 공공기관은 기존인건비 전환금 이외의 경영평가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별로 살펴보면 부당 퇴직금 지급액은 한국철도공사가 33억4700만원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한국수자원공사 24억3000만원, 한국도로공사13억6100만원, LH공사 11억3000만원 순이었다. 1인당 평균 부당지급액은 한국수자원공사가 59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한국도로공사는 380만원, 한국감정원 310만원, 인천국제공항공사 270만원 순이었다.

부당 퇴직금 지급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0년 20억310만원, 2011년 23억900만원, 2012년 32억8260만원이었다. 올해 7월까지는 15억320만원을 더 지급됐다.

김태원 의원은 “노조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재부 지침을 무시하고 퇴직금을 부당하게 더 지급하고 있다”며 “9개 산하기관은 작년 기준 부채 192조원, 하루 이자만 185억원을 내고 있는 상황인 만큼 문제점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만의 돈 잔치

공공기관의 부채 누적과 방만경영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LH공사의 부채증가 규모는 52조원, 한국전력공사 44조원, 가스공사 12조원, 석유공사 12조원, 수자원공사 11조원에 달한다.

14개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공기업의 부채 증가 규모는 76조원, 9개 에너지 공기업은 60조원, 3개 자원개발 공기업은 14조원 선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주요 14개 적자 공공기관 기관장의 평균 연봉은 2억1,000만원, 성과급은 9,000만원에 달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MB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의 부채는 늘어나고 수익은 줄어만 가는데 기관장은 돈 잔치에만 혈안이 돼 있다”면서 “현 상황은 총체적 위기 국면”이라고 말하는 등 심각성을 나타냈다.

관련 공기업들은 흥청망청 돈 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속은 썩을 때로 썩어 있다. 경영평가나 부채 규모만 보면 낙제점이 수두룩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공기업의 모럴해저드를 지적하지만 방만경영은 끊이질 않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공공기관 인사가 대통령 측근들의 보은인사로 이뤄지고 있어 이를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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