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비자금 수사 당시 계좌개설신청서 43만개 부당폐기

[파이낸셜투데이] 삼성그룹 비자금 수사 당시 43만개의 계좌개설신청서를 폐기한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과 담당직원 2명에 대해 증거인멸 혐의로 14일 검찰에 고발장이 제출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삼성그룹 비자금 수사 당시였던 2007년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삼성증권 계좌개설신청서 43만개를 무단으로 폐기할 것을 지시한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현 삼성정밀화학 대표이사) 및 이를 실행한 삼성증권 직원 1명을 형법 제155조 1항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2009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에게 제출된 금융위원회의 「삼성증권㈜에 대한 부문검사결과 조치안」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2007년 11~12월 기간 중 권리?의무 및 중요한 사실관계에 관한 기록물인 계좌개설신청서 43만개를 고객과의 거래가 지속되고 있어 권리?의무가 종료되지 않고 보존기간이 경과하지 않았음에도 부당하게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회견(2007. 10. 29)이후 검찰의 ‘특별수사?감찰본부 설치’ 발표 (2007. 11. 15.)와 본격적인 수사 개시(2007. 11. 26)를 전후하여 차명거래 관련 자료를 부당하게 폐기한 것으로, 이건희 전 회장 등이 저지른 조세포탈 및 증권거래법 위반 등과 관련된 중요한 형사사건 증거를 인멸한 것에 해당된다고 경제개혁연대는 지적했다.

삼성증권 “충분한 처벌받았는데 또 소송이라니 납득 안 간다”
경제개혁연대 “명백한 솜방망이 처벌, 형사처벌 받아야 마땅”

▲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
증거인멸·수사방해 사실로 확인

증거인멸·수사방해 사실로 확인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이후 특검 수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삼성 측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 및 수사 방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 및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특히 경제개혁연대가 2008년 2월 13일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33명을 특검 직무수행 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도 하였으나, 특검은 범죄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증권의 계좌개설신청서 부당폐기 사실은 삼성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과 수사방해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뒤늦게나마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삼성특검의 요청으로 삼성증권㈜에 대한 부문검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실명확인 의무 위반 사실과 함께 계좌개설신청서 부당폐기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삼성증권에 대해 기관경고 등 제재를 부과하고 조치 대상자들이 조직 내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실무자”라는 등의 이유로 경징계를 내렸으며, 상기 피고발인 2인도 각각 문책경고 및 감봉 3월에 그치고 형사고발은 되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 면죄부, 바로잡아야”

경제개혁연대는 “감독당국이 총수일가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중대범죄를 저지른 피고발인들에 대해 단죄는커녕 솜방망이 징계로 면죄부를 준 것을 바로 잡고, 법에 따른 엄정한 처벌을 받도록 하기 위해 피고발인들을 검찰에 고발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타인의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한 삼성증권은 형법 제155조 1항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며, “삼성증권에서는 기관 경고를 받았다고 하지만 배호원 전 사장이 퇴임했다는 이유로 경고조치를 받았고, 삼성증권 직원은 감봉 3개월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증권 “충분한 처벌받았다”

경제개혁연대의 이번 고발에 대해 삼성증권 관계자는 14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관 경고까지 받아 충분히 처벌을 받았는데 왜 또다시 고발을 했는지 납득이 안 간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10년 이상 누적된 문서는 매월 정기적으로 폐기하고 있다. 이때 폐기한 문서들을 집중적으로 무단 폐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온라인상에도 그 문서가 남아있기 때문에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개혁연대는 “금융위가 발표한 삼성증권에 대한 부문검사 결과 조치안을 보면 ‘삼성증권이 보존기간이 경과하지 않았음에도 부당하게 폐기한 사실이 있다’고 명백하게 적혀져 있는데, 어째서 그 시기에 집중적으로 폐기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전산상에 계좌개설신청서가 보존되어 있다는 삼성증권 측 주장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그런 사항은 들어본 적이 없으며, 온라인상에서 남아있다면 은폐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뺀 단순한 리스트인지 아닌지 어떤 식으로 보관 되어있는지를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자들, 수사대응 보상 받았다?

한편 배호원 사장은 지난 2008년 4월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에 따라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했으나 지난해 1월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정밀화학 사장을 복귀했고, 이에 대해 삼성특검 수사 대응에 대한 보상적 성격의 인사라는 평이 나왔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는 “그 외 피고발인 1명은 현재도 삼성증권의 과장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국가 법질서를 농락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총수에게 충성한 대가로 유무형의 보상을 누리고 있는 이들에 대해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가 “삼성증권 과장으로 재직중”이라고 폭로한 피고발인 1명의 현 소속에 대해 삼성증권 관계자는 “우리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횡령자료 삭제도 징역 10월…증거인멸은 더 큰 죄

경제개혁연대는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미지급보험금을 횡령한 황태선 전 삼성화재 대표이사 및 관련 전산자료를 삭제한 김승언 전 삼성화재 전무가 삼성특검에 의해 기소되어, 김 전 전무가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사실을 감안할 때, 이보다 죄질이 훨씬 무거운 피고발인들의 행위는 당연히 형사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마지막으로 “검찰과 사법부, 감독당국의 삼성 봐주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범죄행위가 명백하게 확인된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여 삼성그룹의 조직적 범죄에 대해 형사사법의 준엄성과 엄정함을 확인시켜 주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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