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 점포에서 B은행 계좌 확인 가능해질까
일본·영국서는 경쟁 은행들끼리 손잡고 공유 점포 운영
오프라인 오픈뱅킹으로 편의성·효율성 제고 노려

서울의 한 은행 창구 모습. 사진=연합뉴스

은행권에서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영업점과 직원 수를 줄이고 있는 가운데 이르면 연내 오픈뱅킹이 오프라인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오픈뱅킹의 대면 채널로의 확대가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고 은행들의 영업 점포 운영 효율화를 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오픈뱅킹을 영업점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18일 오픈뱅킹이 공식 출범한 이후 지난 10일 제2 금융권의 참여와 제공 기능 다양화, 대면 채널을 통한 서비스 제공 등 오픈뱅킹 고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이달 중으로 연구용역을 선정하고 다음 달부터 연구를 진행해 오는 5월 중 오픈뱅킹 고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오픈뱅킹이 대면 채널인 영업점까지 확대되면 고객은 A은행에서 B은행 계좌 잔고를 조회하고 돈을 이체할 수 있다. 또 오픈뱅킹 서비스가 다양화되면 그 밖의 업무도 타행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은행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경쟁자인 은행들의 영업 점포를 공유한다는 것은 낯선 이야기지만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여러 은행들이 동맹을 맺고 함께 영업점을 운영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오픈뱅킹처럼 A은행에서 B은행 업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A은행과 B은행이 하나의 점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4월 대형 은행인 스코틀랜드왕립은행과 로이드, 바클레이스 등 3곳이 손을 잡고 공유점포를 개점했다. 이들 은행은 영국의 주요 도시에서 공유점포를 시범적으로 운영하며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일본의 지방은행들도 영국의 사례와 비슷한 전략으로 비용 절감에 나선 상황이다. 타행 점포에 비용을 지불하고 창구를 나눠쓰거나 비슷한 영역권 안에 있는 은행들은 제휴를 통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점포를 운영해나간다. 그 밖에 네덜란드에서는 대형 은행들끼리 현금인출기(ATM)를 공동 운영하는 등 상생을 통해 효율을 추구하고 있다.

해외 은행들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것은 영업 점포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리가 마이너스까지 하락하면서 이자수익 등의 한계가 오고 있는 가운데 금융의 디지털화로 해외 은행들은 구조조정과 영업 점포 축소를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점포를 쉐어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금리·저성장에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금융소비자들 상당수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용 채널을 옮겨가면서 영업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인력과 영업 점포 슬림화를 추진하는 한편 모바일과 디지털화에 초점을 맞춰 체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점포 및 인원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650여개가 넘은 점포가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2014년 3분기 기준 7589개나 됐던 은행 점포는 지난해 3분기 6931개까지 줄어들었다. 5년 새 658개가 줄어들었으니 1년에 평균 130개씩 줄어든 셈이다.

이렇듯 은행들이 점포 통·폐합에 속도를 내자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는 지난해 4월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 절차’ 시행안 등을 마련하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은행 점포가 줄어들수록, 모바일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 등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만 19~69세 10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19년 금융소비자 보호 국민 인식조사’ 중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일수록 인터넷과 스마트폰 금융을 어렵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 기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금융을 이용하는 것이 어렵냐는 질문에 대해 ‘어렵다’고 응답한 비율은 18.9%였으나 60대 기준 ‘어렵다’고 응답한 비율은 29.6%였다.

또 Focus Group Interview 조사에 참여한 한 고령층 금융소비자는 “(모바일 뱅킹은)한자리 수 잘못 누르면 보이스피싱 당할 수도 있고, (자녀가) 위험한 거를 굳이 엄마가 사업하는 것도 아닌데 왜 하냐면서 다 꺼버리고 지워버려서 어쩔 수 없이 은행에 간다”고 밝혔다. 다른 고령층 소비자 중에서는 금리 혜택에도 종이 통장을 고수하며 은행 점포 방문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령층 소비자뿐 아니라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 소비자 역시 영업점이 줄어들수록 은행 방문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픈뱅킹으로 A은행 영업점에서 B은행과 C은행의 업무까지 볼 수 있게 된다면 금융 접근성 제고가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 입장에서도 점포 통·폐합을 통해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타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도 가능해진다.

특히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경우 이 같은 오픈뱅킹 확대 방안이 반가울 전망이다. 영업 점포가 없는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타행 영업점을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다만 타행 방문 시, 제공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타행계좌 조회 및 이체·송금 서비스를 넘어 대출 및 상품가입까지 제공 서비스가 확대된다면 소비자 보호에 구멍이 뚫릴 가능성이 다분해지기 때문이다.

점포 직원이 당행 서비스뿐 아니라 타행 서비스까지 대신 제공할 시, 타행 서비스에 대한 낮은 이해도로 금융사고가 불거질 수 있다. 더불어 타행 고객을 당행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과당경쟁과 불완전판매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업 점포에서 타행 금융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에서 오픈뱅킹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아직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금융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협의를 거쳐 실시할 것 같다”며 “영업점까지 오픈뱅킹이 확대된다면 소비자들의 금융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은행권과 금융당국 간의 깊이 있는 협의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