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과 25일, 예견됐던 한진家 분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예정

서울 중구 한진빌딩. 사진=연합뉴스

깨진 화병을 황급히 치우긴 했으나 흔적과 상처는 남았다. 지난 23일과 25일 공개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입장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성탄절 소동’은 이미 한진家의 분열이 오래전부터 시작됐음을 시사했다. 이제야 밖으로 드러났을 뿐 내부는 이미 곪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갈등은 비단 조 전 부사장의 입장문과 소동이 아니더라도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타계 이후 조원태 회장은 자신의 사람들로 임원진을 꾸리기 시작했다.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 등 아버지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임원들을 승진 인사에서 배제하는 한편, 자신의 측근 인사들을 대거 승진시킨 것. 조 회장은 ‘온연한 조원태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1월 실시한 2020년 정기 인사에서 석태수 대표이사, 서용원 대표이사, 강영식 한국공항 대표이사 사장 등 조양호 전 회장의 측근들이 대거 퇴진했다. 이들은 스스로 용퇴 의사를 전하고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인사로 조원태 회장은 우기홍 대한항공 부사장을 사장으로, 한진정보통신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진 장성현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와 함께 하은용 최고재무책임자와 이승범 고객서비스 부문 총괄 임원 등도 모두 부사장 자리로 올랐는데, 이들 모두가 조원태 회장의 측근들이다.

물론 조양호 전 회장의 그림자를 지우고 새롭게 한진그룹을 이끌기 위해서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긍정적일 수 있다. 해당 인사들 또한 이전부터 한진그룹의 대소사를 함께 했던 인물들이기에 능력 면에서 나쁠 것도 없다.

여기에 석 대표이사는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직에 남았다. 석 대표이사가 남은 것은 조원태 회장이 2대 주주인 KCGI(17.29%)를 견제하기 위함으로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좌측부터)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조현아 전 부사장과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측근들을 모두 배제했다는 것에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복귀를 제외한 것은 물론, 김태진 인천여객서비스 지점 상무, 이병호 대한항공 전 동남아본부장, 이석우 인력관리본부 상무, 남기송 운항본부 상무 등이 모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이들 모두가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의 측근들로 통했던 인물들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해당 자리들은 모두 조원태 회장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바로 여기서 조 전 부사장, 이 고문과의 갈등이 비롯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의 라인이 모두 배제된 것에서 곧 문제가 터질 것으로 일찍이 예견한 바 있다.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한 조원태 회장 등 특수 관계인 지분율은 현재 28.94%다. 언뜻 높아 보이나 조원태 회장(6.52%)과 조 전 부사장(6.49%)의 지분율은 얼마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화합은 필수적. 여기에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와 이 고문(5.31%)도 5% 이상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원태 회장은 상당히 모순적인 임원 인사를 감행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오는 3월 있을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총수 일가 간의 화합이 중요한 데도 불구, 오히려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가 많다.

앞서 25일 덮는다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성탄절 소동’이 외부로 새어 나온 것이 그 증명이다. 오너 일가의 내홍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은 대외적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공개한 것은 조원태 회장의 리더십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조원태 회장과 이 고문이 사과문을 통해 “조원태 회장은 어머니인 이명희 고문께 곧바로 깊이 사죄를 했고, 이명희 고문은 이를 진심으로 수용했다”며, “앞으로 가족 간의 화합을 통해 故 조양호 회장의 유훈을 지켜나가겠다”고 수습했으나, 이미 조원태 회장의 이미지에는 큰 타격이 가해진 상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는 경영 승계 당시부터 조원태 회장이 벗겨내려 했던 ‘부정적 이미지’를 다시 한번 세간에 각인시켰다는 분석이다. 과거 인하대학교 부정 편입학 논란을 비롯해 뺑소니, 70대 노인 폭행 등 조원태 회장을 둘러싼 도덕성 논란은 과거에도 꾸준히 불거져 나왔던 것이다.

이에 전문가와 시민단체를 비롯한 업계에서도 조원태 회장의 경영 승계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를 제기하던 분위기였는데, 이번 ‘성탄절 소동’은 해당 이미지가 다시 한번 각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최근 손실을 지속하고 있는 한진그룹의 실적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대한항공 항공운수사업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438억원으로 전년 동기 6345억 원 대비 77.3%나 감소했다. 한일 무역 분쟁의 여파를 감안하더라도 꽤나 큰 손실이다.

게다가 오너 일가가 공들이고 있던 호텔사업 또한 2017년부터 150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의 공시에 따르면 대한한공의 호텔사업은 2017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147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7년 501억원, 2018년 566억원, 2019년 3분기 411억원이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2019년 4분기를 합한다면 지속적으로 손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그룹의 오너 일가 갈등은 조양호 전 회장 때인 2세 경영 당시에도 분명 있었다. 그렇기에 조양호 전 회장이 유훈으로 ‘공동 경영’과 ‘화합’을 강조했던 것이다. 조원태 회장이 2일 2020년 신년사에서 “대한항공 100년을 향한 원년이 되는 올해, 서로 일으켜주고 부축해주면서 새 미래를 향해 걸어갑시다”라며 화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기에는 지금까지의 행보만으로 신뢰를 주기가 다소 힘들어 보인다.

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재벌가의 경영권 세습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능력과 자질을 세간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끊임없는 구설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투데이 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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