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은행 ‘고난도 사모펀드·신탁’ 판매 금지”
은행권, 비이자수익 확보 ‘난망’…“신탁까지 불똥 튈 줄이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DLF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금융당국이 은행의 고난도 사모펀드와 신탁 판매 금지 카드를 들고 나오자 은행들이 속을 끓이고 있다. 이 같은 가이드라인이 실시되면 해당 상품을 판매해 거둬들이던 수수료가 줄어들어 은행들의 비이자이익 축소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서 불거진 DLF사태에 대한 후속조치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공모펀드가 사모형식으로 판매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조정 하는 등 사모펀드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또한 금융위는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고난도 사모펀드와 신탁을 판매할 수 없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DLF사태에 대한 불똥이 예기치않게 신탁 시장에까지 튄 것이다.

금융위는 파생상품 내재 등으로 투자자의 이해가 어렵고 최대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수준 이상인 상품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라고 정의했다. 사모펀드보다 강력한 규제를 받는 공모펀드의 경우 고난도 상품이어도 은행에서 판매가 가능하지만 고난도 사모펀드 및 신탁은 은행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이례적으로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5일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금융위가 개최한 ‘금융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간담회’에서 “일부 불완전판매 문제가 전 은행권의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한으로 확대돼 안타깝다”며 “신탁 시장까지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의견을 밝혔다.

신탁은 고객이 돈이나 주식, 부동산 등의 재산을 은행에 맡기면 은행이 이를 운용해서 수익을 내주는 것이다. 은행은 고객의 재산을 운용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거둬들인다. 지난해 기준 4재 시중은행(신한·KB국민·KEB하나·우리)에서 거둬들인 은행 신탁 수수료 수익은 약 8500억원에 달했다.

은행권에서는 비이자이익을 늘리기 위해 신탁사업을 중점적으로 확대해나가고 있는 추세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대출 억제 정책 등으로 예대마진을 통한 이자이익 확보에 한계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파생결합증권신탁(DLT)과 주가연계신탁(ELT)을 위주로 신탁 사업을 키워왔다. DLT와 ELT는 금리나 환율 등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과 주가 지수나 개별 주가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신탁으로 편입한 것이다. 이를 신탁이 아닌 펀드로 팔면 파생결합펀드(DLF)와 주가연계펀드(ELF)가 된다.

올해 상반기 기준 은행권의 DLT와 ELT의 판매 잔액은 42조8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중 ELT가 40조원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이번에 문제가 됐던 DLF의 규모는 4조3000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선 43조짜리 신탁 시장에 대한 규제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특히 ELT의 판매가 중단될 경우, 은행들은 비이자이익 확보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고난도 사모펀드만 규제했을 때, 이를 은행들이 신탁으로 우회해서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탁에 대한 규제도 함께 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신탁의 경우 고객과 은행이 1대 1로 계약을 맺고 있어 금융당국은 신탁을 사모형태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은 신탁 판매에 대해 공모형 신탁에 대해서는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탁은 사실상 공모와 사모를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지만, 편입 자산이 공모형일 경우 공모신탁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판매를 허용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모형 ELF는 은행에서 판매가 가능한 것처럼 공모형 ELS를 신탁으로 담아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식이다.

이에 은성수 위원장은 지난 20일 “신탁은 사실상 사모라고 하는데 신탁을 공모와 사모로분리할 수 있다면 (공모 신탁)을 장려하고 싶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은성수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준 것이 아니냐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신탁에 대한 공모와 사모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은행권과 금융당국의 의견 조율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은행권에서는 금융위의 개선방안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 금융당국에 전달할 방침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DLF사태로 신탁 상품까지 판매를 제한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탁 판매 금지가 가시화 되면 은행들은 비이자수익 확보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는데 당국이 이런 은행들의 의견과 상황을 고려해서 개선방안을 추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한편으론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개념이 아직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아 내부적으로도 많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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