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기업 ‘핑퐁게임’에 유료방송 노동자들만 ‘울상’
정부·국회·기업 ‘핑퐁게임’에 유료방송 노동자들만 ‘울상’
  • 변인호 기자
  • 승인 2019.11.04 0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J헬로 노동조합원들이 10월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공정위의 CJ헬로와 LG유플러스 간의 인수합병 유보결정에 대해 반발하며 케이블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공정하고 조속한 심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CJ헬로 노동조합원들이 10월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공정위의 CJ헬로와 LG유플러스 간의 인수합병 유보결정에 대해 반발하며 케이블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공정하고 조속한 심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료방송 업계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視界Zero)’ 상태가 된 지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공정위와 국회는 늦장을 부리고 있고,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국회 눈치를 보느라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간에서 노동자들만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의 CJ헬로 지분인수, SK텔레콤의 티브로드 인수합병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는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KT가 얽힌 유료방송 합산규제 문제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회전 중이다.

정부·국회와 기업 사이에 낀 유료방송 업계 근로자들은 더 힘들어졌다. 회사에 인수합병 같은 큰 이슈가 생기면 기존 정규직 직원들도 대부분 고용불안을 겪는다. 통신·유료방송 같은 업계는 특히 수리기사, 설치기사 등의 직군이 유료방송 기업의 하청을 받는 고객센터에 고용된 형태로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재 유료방송 업계의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호소하면 하청기업은 원청기업에, 원청기업은 공정위 심사가 진행 중인 점 등을 이유로 대답을 피하고 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만, 기업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심사 결과 기업결합이 승인되지 않는다거나 일몰된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부활해 인수하기로 했던 계획 자체가 틀어지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달 17일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합의 유보’했다. 공정위 심사가 길어지면서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심사는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달 23일에는 방통위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과정에 방통위 사전 동의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정부 쪽만 봐도 공정위, 방통위, 과기정통부 등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 그 뿐만 아니라 유료방송 합산규제 문제도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1개 사업자가 케이블·위성·인터넷TV(IPTV) 등 전체 유료방송 시장의 33% 이상을 점유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유료방송 점유율이 KT 21.12%, KT스카이라이프 9.95%로 31.07%다. KT가 인수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딜라이브의 같은 기간 점유율은 6.29%로, 합산규제가 재도입될 경우 KT와 KT스카이라이프 점유율에 딜라이브의 점유율이 더해지면 합산규제를 위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다음해 사업계획을 세우는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정작 계획을 세울 전제조건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만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됐다. KT가 딜라이브 인수를 시도할 당시 KT스카이라이프 노조가 인수 반대를, 딜라이브 노조가 매각 반대를 주장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도 연출됐다.

지난 24일 CJ헬로 노조는 공정위의 LG유플러스-CJ헬로 기업결합 전원회의 합의 유보 결정에 ‘CJ헬로-LG유플러스 기업결합에 대한 조속한 승인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유료방송 업계가 각종 규제로 인해 이미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은데, 시장재편을 여전히 규제가 가로막고 있어 우려된다는 것이 노조 측의 설명이다. CJ헬로 노조는 “정부가 늦장 대응으로 오래전부터 시장재편이 예고된 유료방송시장에 어깃장을 놓으며 노동자를 끊임없는 고용불안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보통 피인수기업의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지난 29일 코웨이 노조가 사실상 인수가 결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직 우선협상대상자인 넷마블을 찾아 면담 촉구 천막 농성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간 노조가 없던 넷마블 측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넷마블 관계자는 “아직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실사 단계에 있을 뿐이라 입장이 없다”고 했다. 유료방송 업계는 공정위와 방통위·과기정통부 심사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기업도 상황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2016년 당시 공정위의 기업결합 금지 결정에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 계획이 틀어진 바 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CJ헬로 지부는 인수기업인 지난달 말부터 LG유플러스 용산사옥 앞에서 일자리 보장과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티브로드지부 역시 서울 중구 SKT타워 앞에서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고용불안에 떨며 농성을 하던 노조가 공정위를 비판한 점을 보면 원인이 명확해진다. 인수합병 결정이 되면 인수기업에 고용보장을 요구하면 되는데, 결정하기 전 심사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기업은 사업계획, 투자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분배하면서 고용문제를 어떻게 할지 방침을 정해야 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정감사에서 “유료방송 인수합병 절차가 늦어지지 않도록 살펴보겠다”고 했지만, 공정위 심사가 끝나도 이후 합병절차를 거치다 보면 결국 해를 넘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편, 공정위에 LG유플러스-CJ헬로 인수심사는 지난 3월, SK텔레콤-티브로드 인수합병 심사는 지난 4월 접수됐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