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일본 수출규제는 ‘제2 플라자합의’의 서막
[데스크칼럼]일본 수출규제는 ‘제2 플라자합의’의 서막
  • 김영권 기자
  • 승인 2019.08.10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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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편집국장
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편집국장

일본 경제산업성은 7일 한국을 수출관리대상의 일반포괄 허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공포, 관보에 게재했다. 2일 일본정부각의(국무회의)에서 통과한 이 개정안은 7일 관보에 게재되면서 오는 28일부터 시행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소재 3개 품목(플루오린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불화수소) 등을 개별허가 대상으로 돌렸다. 당시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배경으로 양국 신뢰관계 손상, 우리수출관리 미비, 안보상의 이유 등 명료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채 아전인수격으로 상황에 따라 말바꾸기를 했다.

일본은 1987년부터 화이트리스트 국가를 상대로 군사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 수출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혜택을 부여해왔다.

지금까지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미국·영국·프랑스를 비롯해 총 27개국이었으나 한국이 제외되면서 26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일본은 2018년 11월 대법원의 “日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들의 강제노역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확정판결을 구실로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시켰다.

아베총리는 올해 7월3일 日 여·야 당수 초청 토론회에서 “징용공 문제는 역사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상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서로 청구권을 포기했습니다. 위안부합의도 정상간의 합의여서 유엔과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도 이를 높게 평가했는데, 이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상대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우대조치는 (더이상) 취할 수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다.

해방 후 한일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은 1951년 이승만정권 시절 시작해 1965년에 마무리 됐다.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타결이 되지 않았던 것은 한일 양국의 입장차가 극명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은 배상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1965년 양국은 배상문제를 얘기하지 않기로 하고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국가 대 국가의 청구권은 소멸됐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는 더 이상 청구를 할 수 가 없다. 그러나 개인간의 청구권은 아직 살아있다.

1991년 8월27일 일본 외무성 야나이 순지 조약국장은 내부회의에서 “한일 양국이 가진 외교 보호권을 상호간에 포기한 것이지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본인도 여기에 동행한다”라고 말했다.

야나이 순지 국장의 말은 국제법상 맞는 말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따라서 징용을 당했던 분들이 개인적으로 제소를 한 것이고, 대법원은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한 것이다.

특히 아베 총리는 줄곧 “한국이 국가간 약속을 어기고 있다”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 되어 있는 나라다. 사법부가 결정한 것을 행정부가 막을 수 없다. 아베 총리가 이같은 사실을 모를리 없다. 그의 진짜 속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남북이 경제협력을 할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져 일본경제를 추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현 시점에서 한국경제를 눌러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1970~80년대 일본은 세계 최강 미국을 넘보는 경제대국이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제일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부동산과 기업들을 사들였다. 이 시기 미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적대감과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특히 미쓰비시 부동산이 록펠러 빌딩을 구입하자 미국의 자존심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대일 반격 핵심 카드는 ‘엔화강제평가절상’이었다. 1985년 미국은 세계경제 안정화를 구실로 ‘플라자합의’를 체결, 엔화를 강제로 절상시켰다.

이로 인해 일본은 수출시장이 악화됐고, 국내시장도 불황에 빠졌다. 국내경기침체를 우려한 일본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은 엄청난 버블을 만들었고, 그 결과 ‘잃어버린 30년’의 서막이 올랐다.

아베 총리는 현 시점을 미국이 일본 경제를 눌렀듯이 일본이 한국 경제를 눌러야 될 타이밍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판단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후 한국은 극심한 혼란이 올 것이라는 아베 총리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제품불매운동’으로 단결되어 갔다.

단순한 일본 제품 불매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 여행 보이콧, 스포츠 및 민간교류 보이콧 등으로 ‘NO일본(보이콧제팬)’운동이 노도처럼 일고 있다.

이처럼 수출 규제 후폭풍이 커지자 일부 일본 언론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한국을 잘못 판단했다는 말을 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1876년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통해 우리나라를 강제 개항하고, 경제수탈을 시작한 일본. 그들에게 우리 국민들의 보다 강력하고 합당한 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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