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의 보험이야기] 보험사 자문의 입법안을 철회해야 하는 이유
[오세헌의 보험이야기] 보험사 자문의 입법안을 철회해야 하는 이유
  • 파이낸셜투데이
  • 승인 2019.01.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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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소비자가 보험을 가입해서 보험료를 납입하는 목적은 약관에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보험사고가 발생해 보험금을 청구하더라도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삭감 지급해서 소비자와 보험회사간 분쟁이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 약관에 따라 제3의료기관의 자문을 통해서 해결하게 된다. 생명보험표준약관 제4조 (보험금 지급에 관한 세부규정) 9항에 “보험수익자와 보험회사가 사망보험금, 장해보험금, 입원 보험금 등의 보험금 지급사유에 대해 합의하지 못할 때는 양자가 제3자(의료법 제3조에 정한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를 정하여 그 의견에 따를 수 있고, 보험금 지급사유 판정에 드는 의료비용은 보험회사가 전액 부담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관련 비용을 보험사가 전액 부담해야 하므로 보험사들이 소비자에게 적극 알리지 않고 소비자도 제도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알더라도 보험사가 제시한 제3의료기관으로 이끌려 그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별개로 보험사들이 근거가 없이 일방적으로 운영하는 자문의(自問醫) 제도 때문에 많은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억울하게 떼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여부를 심사할 때 환자가 제출한 주치의 진단서를 외면한 채 환자를 전혀 보지도 않은 유령의사(보험사 자문의)가 작성한 소견서를 이유로 보험금을 거절, 삭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험사 자문의는 보험사에 유리한 내용으로 소견서를 써 주고 자문료(건당 평균 30만~50만원)를 받는 용병(傭兵)인 셈이다.

실제로 보험사들이 자문의 소견서를 인용해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사례는 전체 자문의뢰 건수의 절반에 해당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들의 의료자문 의뢰 건수는 7만7900건으로 전년 6만8499건에 비해 9401건(13.7%) 증가했는데, 의료자문 결과를 인용한 보험금 부지급 건수는 3만8369건으로 49%를 차지했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자문의 소견서를 의도적으로 악용해서 보험금을 거절, 삭감해서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주므로 매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어 왔지만, 달라진 게 없다. 보험사들은 “자문의 소견서는 보험금 심사 시 내부 참고 자료로만 사용된다”며 어물쩍 넘어 갈 뿐,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은 전혀 딴판인 것이다.

금감원은 보험금 지급거부 수단으로 악용되는 보험사 자문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1년이 넘도록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초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보험사가 의료 자문 결과를 근거로 가입자에게 줄 보험금을 감액하거나 지급을 거부할 때 해당 자문의가 가입자를 직접 면담·심사하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겉으로는 소비자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소비자를 압박하고 발목을 잡는 것이다. 즉, 개정안은 다음과 같이 본말을 전도하여 분쟁을 조장하고 소비자 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개정안 발의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

첫째, 개정안은 발표와 달리 본질이 왜곡되어 소비자들의 보험금 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자문의 소견을 법적으로 인정해 보험사들에게 주치의 진단서보다 피보험자 면담을 내세운 자문의소견서를 우선하여 보험금을 삭감, 거절해도 좋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험금 떼먹기’를 합법으로 둔갑시켜 보험사들에게 대 놓고 보험금을 떼 먹으라는 것이다.

둘째, 자문의의 피보험자 면담은 당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므로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의료 전문가인 의사와 의료지식이 전무한 피보험자가 대등한 관계에서 면담이 진행될 수 없고, 약자인 피보험자는 역부족이므로 자문의를 대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문의의 피보험자 면담은 보험사들의 교묘하게 포장된 꼼수이며 피보험자를 기만하는 것이므로 설득력이 없다.

셋째, 해야 할 일을 외면한 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치의 진단서를 기준으로 보험금 지급여부를 판정해야 하고, 필요하면 보험사 직원이 환자 동의를 얻어 환자 주치의를 면담해서 환자 상태를 추가로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고 우선이다. 그런데 이를 애써 외면한 채 환자를 치료하지 않은 유령의사를 끌어들여 피보험자를 면담하게 한다는 것이니 황당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본말이 전도되었고 피보험자 면담을 내세워 물타기를 하는 것이다.

넷째,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낸 보험료가 보험사들의 보험금 후려치기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자문의 비용으로 연간 175억원 정도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적폐 중의 적폐다. 앞뒤가 맞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도 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개정안은 보험사들의 자문의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므로 보험료 인상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

지금도 보험사들이 근거가 없고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자문의 소견서로 보험금을 삭감, 거절하기 일쑤인데, 이것도 모자라 국회가 나서서 불법을 합법화하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됐고 개선이 아니라 개악으로 보인다. 만약 보험사 자문의의 피보험자 면담이 합법화 된다면 보험사들의 보험금 떼먹기가 더욱 기승을 부려 소비자들의 피해가 불 보듯 증가할 것이다.

국회가 제 정신이라면 소비자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 등이 가려우면 등을 긁어 줘야지 다리를 긁지 말아야 한다. 암 환자에게 소화제를 주며 암을 치료하라는 꼴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소비자(국민)들에게 피해 주는 일에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해당 개정안 발의가 아니라 “보험사가 자문의 소견서를 이유로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거절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보험업법에 명확히 추가하는 것이고, 나아가 보험사들에게 현행 약관에 명시된 제3의 종합병원 재진단을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 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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