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해 기자의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12. 신명수와 신동방그룹
한종해 기자의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12. 신명수와 신동방그룹
  • 한종해 기자
  • 승인 2018.09.14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수·합병 무리수로 몰락한 식용유 명가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회장님’이 단독 1억원을 못 구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쉬이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다. 2014년 9월 별세한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얘기다. 다행이 부인이 돈을 구해와 집이 넘어가는 것은 막았지만 그만큼 어렵게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의 가족은 소위 ‘있는 집’에서 잘살아가고 있다.

식용유 하나만큼은 잘 만들었네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부친이자 동방유량 창업주인 고 신덕균 명예회장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기업인이다. 1950년대 말 눌원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매년 분야별로 사회에 공헌한 인사들에게 눌원문화상을 시상해 사기를 드높였고 낙동강 문화권의 발달에 이바지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국무총리상과 석탑산업훈장을 받을 정도로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기업인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경남 창원 출신으로 1933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1940년 동방흥업 사장에 오르면서 각종 직책을 역임했는데, 1951년 농림부 중앙농림위원 및 양정대책위원을 시작으로 1953년 수산중앙회 회장, 1957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960년 곡물협회장 등을 지냈다.

1966년부터는 고려산업 회장과 동방유량 회장을 겸임하다가 1989년 장남인 신 전 회장에게 동방유량 회장직을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이후 1996년에는 고려산업 회장직도 삼남 성수 씨에게 넘겨주고 명예회장이 됐다. 사명이 신동방으로 바뀐 뒤에는 1999년 타계 전까지 신동방의 명예회장으로 있었다.

동방유량의 대표 제품은 식용유다. 지금은 사조그룹으로 넘어간 ‘해표 식용유’가 그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식용유라는 개념이 없었다. 참깨, 들깨, 고추씨 등을 이용해 직접 제조하거나 시장에서 파는 쌀기름을 주로 사용했다. 그 즈음 콩에서 기름을 짜낸 대두유 생산이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고 동방유량이 여기에 뛰어든 것이다. 1971년 출시된 해표 식용유는 2013년까지 59억병이 팔려 나갔다. 그동안 판매된 제품을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열바퀴나 돌 수 있는 양이다.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한국 산업의 브랜드파워 조사’에서 식용유 부문이 개설된 이래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대통령 금고지기까지 맡으며 잘나간 신동방

신 전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신동방그룹은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와 신 전 회장의 딸 정화 씨의 결혼으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 창구로 불리며 위세를 과시했다. 신동방그룹은 1993년 동방페레그린증권과 유니레버 등을 설립하면서 증권업, 유통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고, 비록 실패했지만 1997년에는 대농그룹의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신동방그룹이 미도파와 대농 주식을 매집하는 데 쏟아부은 자금의 규모는 알려진 것만 1000억 원대. 우호 세력까지 합하면 2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신 전 회장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 동안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신문 회장을 맡아 언론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도파 인수·합병 실패의 후유증은 컸다. 결국 신동방그룹은 1999년 워크아웃 기업으로 전락했다. 이후 2002년 ㈜신동방 경영 정상화 작업을 자율 추진으로 전환했고, 2004년 CJ컨소시엄과 매각 본 계약을 체결하면서 CJ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사조해표는 신동방이 사조&CJ컨소시엄에 인수되면서 ㈜신동방의 식품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해 설립됐으며 현대 최대 주주는 사조산업이다.

신 전 회장은 1999년 말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돼 재산 국외 도피 및 업무상 배임, 증권거래법 위반 등으로 한때 구속 수감됐다. 노 전 대통령의 추가 비자금 424억원 이혹에 얽혀 또다시 검찰의 수사 물망에 올랐지만 2014년 8월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단돈 1억이 없어서 집 날릴 뻔한 회장님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신 전 회장은 말년에 상당히 어려운 삶을 산 듯하다. 수년간 대장암 투병 생활을 이어왔으며, 2012년 7월 에금보험공사의 경매 청구(청구액 1억원)에 의해 경매로 나온 신 전 회장의 성북동 초호화 저택이 48억62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때마침 신 전 회장의 부인 송길자 씨가 1억1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한 뒤 집행 정지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위기를 넘겼지만 ‘회장님’이 단독 1억원이 없어 굴욕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신 전 회장 일가는 여전히 ‘끗발’을 세우고 있다. 먼저 신 전 회장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과거 신동방그룹의 계열사인 동남산업의 지분 79.14%를 보유하며 최대 주주 자리에 올라 있었다. 1978년 신 전 회장 일가가 100% 출자해 세운 동남산업은 농수산물 매매업, 냉동냉장 창고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다가 2008년 12월 코산아이엔티를 흡수 합병하면서 안테나 제조업에도 진출했다.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부인인 송길자 씨 성북동 자택. 사진=한종해 기자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부인인 송길자 씨 성북동 자택. 사진=한종해 기자

신 전 회장은 2013년 9월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80억원을 대납하기도 했다. 이날 신 전 회장은 서울중앙지검에 80억원 전액을 계좌 이체 방식으로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의 일부를 사돈인 신 전 회장에게 맡겼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2012년 6월 검찰에 제출했고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에서 이 사건을 수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진정서를 통해 신 전 회장이 비자금으로 사들인 빌딩 등을 담보로 대출금을 받아 개인 빚을 갚는데 썼다며 자신의 동의 없이 임의로 처분한 비자금 420억여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신 전 회장은 주자 조작 등의 혐의로 법원의 심판을 받던 1999년 노 전 대통령이 맡긴 비자금 230억여원을 국가에 반환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신 전 회장은 부인 송길자 씨 사이에 2남 1녀를 뒀다. 송 씨는 조석래 전 명예회장의 아내 송광자 씨의 언니다. 송 씨는 HLMC 회장을 맡고 있다. 송 씨는 이 회사의 지분 32.2%를 보유하고 있다. HLMC는 생활용품 및 건강식품 등의 네트워크 마케팅을 목적으로 1996년 진로그룹과 신동방그룹이 상호 출자해 설립한 하이리빙의 상품개발 및 부동산 임대 등 기타 사업 부분이 분할돼 설립된 회사다. 하이리빙 외에도 정한개발을 종속기업으로 두고 있다. HLMC는 지난해 연결기준 453억원의 매출과 2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송 씨는 하이리빙 지분 12.9%도 보유하고 있다. 장녀 정화 씨는 등기이사에 올라 있다.

정한개발은 1990년 수출입, 부동산임대업 및 부동산매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대표이사는 차남 기준 씨가 맡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34억원, 영업이익은 7억원을 기록했다. 기준 씨는 종자 회사 이그린글로벌의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장남 상철 씨는 시장조사와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경영컨설틴 시업 린트의 대표이사다.

<신동방그룹은?>

▲1966년 동방유량주식회사 출범
▲1983년 한국카킬사료 인수
▲1986년 기술연구소 설립, 동방사료 흡수·합병
▲1995년 미농 흡수·합병
▲1996년 에스-유 설립, 신동방으로 사명 변경
▲1999년 워크아웃 신청, 해표·에스디비푸드세비스·유진산업 흡수·합병
▲2002년 신동방 경영 정상화 작업 자율 추진으로 전환
▲2004년 CJ컨소시엄과 매각 본계약 체결, CJ그룹 계열사로 편입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