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직장 회식이나 친구 또는 가족 모임 등의 자리에서 음주를 하게 되면 대리운전을 이용해 안전 하게 귀가할 수 있다. 밤 늦은 시간에 호출해도 한 걸음에 달려오는 대리운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자는 주로 야간에 일하고 취객의 호출에 따라 급히 이동하므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데, 남모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리운전자들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대리운전보험’ 때문이다. 이 보험은 대리 운전시 발생하는 사고를 보상받는 보험으로, 계약자인 대리운전업체가 대리점을 통해서 가입한다. 대리운전자를 피보험자로 가입하는 단체보험이다.

전국에 약 20만명의 대리운전자들이 있고 대리운전업체는 약 3800여개가 산재해 있으며, 대리운전보험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보험대리점은 1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리운전자는 특정 대리운전업체에 소속되어야 콜(CALL)을 받을 수 있으므로 대리운전자는 업체가 부과한 보험료를 업체에 입금해야 한다. 피보험자로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다. 업체는 대리운전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취합해서 보험사에 납입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문제는 대리운전자들이 비싼 보험료로 바가지를 쓰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업체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관리비(콜 수수료 포함)를 보험료에 포함 시켜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다.

첫째, 업체가 관리비 내역을 대리운전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채 보험료에 합산하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자가 입금하는 보험료는 실제 보험료 보다 크게 부풀려진 금액이며, 대리운전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깜깜이로 내야하는 것이다.

만약 대리운전자가 관리비 내역을 업체에 따지거나 보험사,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대리운전자는 그 날로 생계가 끊긴다. 업체가 대리운전자를 피보험자 명단에서 즉시 삭제하고 콜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체는 항상 갑이고 대리운전자는 항상 을이다.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대리운전자들은 생계 단절을 우려해서 업체에 따지거나 민원을 제기하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업체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으로 내려오고 있고, 특정 업체나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4월에는 충북 대리운전자들이 청주지역 대리운전업체들의 갑질과 노동력 착취 중단을 촉구했다.

둘째, 대리운전자는 콜을 많이 받아야 생계가 가능하므로 여러 개 업체에 등록해야 하고, 그 때마다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 대리운전자는 1명인데도 업체 수만큼 해당보험을 가입해서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니 누가 봐도 황당하다.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전국 어디에서나 운전할 수 있는데, 대리운전보험은 해당 업체의 운전면허증을 추가로 따야 하는 것과 같다.

셋째, 먹이사슬 때문이다. 대리운전보험이 소수의 보험대리점에 의해 독과점으로 판매되므로 이들이 업체에 갑질을 하므로 업체들은 대리운전자들에게 관리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부 업체는 대리운전자로부터 전체 매출의 최대 40%까지 떼어 간다는 것이다. 관리비의 화근이 보험대리점이라고 추정되는 이유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대리운전보험이 단체보험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자는 피보험자에 불과하므로 보험료를 직접 보험사에 납입할 수 없고 계약 해지권도 없다. 보험대리점과 업체가 단체보험의 허점을 악용해서 벼룩의 간을 빼 먹듯이 관리비를 보험료에 포함시켜 부당하게 갈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보험대리점, 업체, 대리운전자가 먹이사슬로 연결돼있는 관행이 오래전부터 반복돼왔고, 대리운전자들은 길들이기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필자는 2016년 4월에도 대리운전보험의 폐해를 지적하고 금감원과 국토교통부에 특단의 조치를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언론에 수차 보도되면서 국토교통부는 홈페이지에 대리운전자 피해 신고 센터를 한시적으로 설치했지만, 함흥차사였고, 금감원도 조치하지 않았다. 아마도 보험대리점들이 금감원과 유착관계에 있거나 국토교통부의 비호를 받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보험료를 내는 것은 대리운전자이므로 대리운전보험의 주인은 대리운전자이다. 그러므로 대리운전보험이 업체나 보험대리점의 부당한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또한 보험계약의 관리비는 보험료에 이미 포함된 것이므로 대리점이나 업체가 보험료를 추가로 부과할 수 없다.

행여 업체가 부과하는 관리비가 근거가 있고 정당한 것이라면 보험료가 아닌 별도의 명칭으로 대리운전자에게 알려서 받아야 한다. 관리비는 보험료가 아니므로 보험료로 받는 것은 불법이고, 관리비를 보험료로 받았다면 당연히 부당이득을 편취한 것이다.

대리운전자를 살리고 대리운전보험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보험대리점과 업체들의 갑질 횡포를 근절하라는 얘기다. 금감원이 나서서 단체보험을 없애고 손보사 개인보험을 1건만 가입하더라도 모든 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자동차보험처럼 보험료를 연납으로 납입하고, 대리운전자가 중도에 일을 그만두면 미경과보험료를 지급하면 된다. 계약 해지 시 업체 발행의 등록취소 확인서를 첨부하거나 해지 즉시 보험사가 대리점을 통해 업체에 통보해도 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 금감원과 국토교통부는 대리운전자가 더 이상 피해 보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속 수립, 실행해야 한다. 보험대리점과 업체에 대하여 강도 높은 특별 검사를 실시해서 토착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 이런 것이 불합리한 관행을 청산하는 것이고 대리운전보험을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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