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에서 말하는 공시이율은 금리연동형 상품에 적용하는 이율로, 은행의 예·적금 금리에 해당된다. 즉, 보험사가 장래에 있을 보험금 또는 해지환급금을 지급하기 위해서 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 중 위험보험료와 사업비를 차감한 저축보험료를 부리하는 이율이다. 공시이율에 따라 보험금, 해지환급금이 달라지므로 보험계약자는 처음부터 올바로 알고 가입해야 한다.

공시이율은 보험개발원이 시중 금리를 반영해서 산출한 ‘공시기준이율’을 토대로 각 보험사별 제반 사정을 감안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그 동안 시중 금리 하락으로 공시이율이 계속 하락 추세를 보여 왔고, 이에 따라 금리연동형 보험의 가입자들이 받는 해지환급금, 보험금도 보험 가입 시 안내 받았던 금액보다 크게 적어 실망이 크다.

문제는 많은 소비자들이 공시이율에 대하여 잘 몰라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일하는 금융소비자원에도 공시이율에 속아서 억울하게 피해 보았다며 상담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마디로 “공시이율이 은행 적금보다 높다”는 보험사 말을 믿고 가입했는데 정작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우선 보험사들의 잘못이 가장 크고, 그 다음엔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당국의 잘못이 크다. 보험사들이 소비자에게 공시이율의 의미와 내용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은 채 고금리만 강조해서 현혹했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공시이율이 은행 이율 보다 월등히 높다”고만 반복, 광고하였지, “공시이율이 주계약 저축보험료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보험 가입 후 계속 변동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잘못으로 벌어진 것이므로 해당 보험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불완전판매의 대표적인 사례다.

공시이율이 겉으로는 은행 이율보다 높지만, 속내를 보면 높지 않다. 공시이율은 주계약 저축 보험료에 대해서만 적용되므로 원금이 은행 적금보다 적기 때문이고, 그래서 은행 적금 보다 수익률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이를 애써 감추고 높은 금리만 내 세운다. 그래서 많은 소비자들이 낸 보험료 전체가 공시이율로 부리되는 것으로 착각해서 뒤늦게 낭패를 본다. 결국 공시이율 광고는 눈 가리고 아웅하며 소비자를 현혹, 기만하는 것이다.

보험사는 보험료 전체가 아니라 위험보험료와 사업비(보험 설계사 수당과 계약관리비용 등)를 뺀 금액(저축보험료)에 대해서만 공시이율을 적용해서 이자를 붙여 준다. 연금보험의 경우 가입 후 7년간 보험료의 7~9%를 사업비로 공제한다. 상품마다 다르지만 보통 7~10년 동안 사업비가 빠져 나가고, 이 기간이 지나면 보험료의 1.5% 정도만 사업비로 빠져 나간다.

공시이율은 확정된 이율이 아니라 가입 후 계속 변동되는 이율인데, 이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려 주지 않는다. 보험사가 가입설계서에 찍어 준 금액은 확정 금액이 아니라 가입자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예상된)한 금액이고, 적용된 공시이율이 보험금 수령 시까지 변동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산출된 예상 금액일 뿐이다.

그 다음으로,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의 잘못이 크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보험사들의 과장 광고를 방치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이 나서서 보험사들에게 선제적으로 조치하고 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해서 소비자들만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보험사의 공시이율 과장 광고로 피해를 입었다면 피해 내용을 서면에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과장 광고의 증거자료를 첨부해서 보험사에 피해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 구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험사의 광고를 그대로 믿지 말고 사실여부를 직접 확인한 후 보험을 가입하는 것이다. 본인의 무지나 실수로 발생된 손해는 억울하더라도 구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다. 보험사와 당국은 공시이율의 명칭을 ‘저축보험료 공시이율’로 당장 바꿔야 한다. 보험사들은 광고 문구를 ‘저축보험료 공시이율’ 로 바꾸고, 안내장, 상품설명서, 가입설계서 등 각종 안내자료도 ‘저축보험료 공시이율’로 바꿔서 표기, 사용해야 한다. 보험사가 이를 외면한다면 돈벌이를 위해 소비자를 계속 현혹, 기만하고 희생시키겠다는 것이므로 소비자를 위한 보험사도 아니다.

소비자 보호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이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보험사가 하지 않으면 당국이 나서서 시정 조치해야 한다. 당국이 이런 용어조차 바로 잡지 못하면서 매번 ‘소비자 권익 보호’를 외치는 것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행여 당국이 보험사 눈치 보느라 실행을 주저하거나 외면한다면 ‘보험사들과 한통속’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나아가 소비자(국민)들이 낸 혈세로 월급 받을 자격이 없다. 소비자를 현혹하고 우롱하는 공시이율을 속히 ‘저축보험료 공시이율’로 바꾸라는 얘기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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