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솔로몬] 법인인감도장은 법인의 의사표시를 하는 주요한 수단입니다. 만일 법인인감도장을 가지고 있는 대표자라도 법인등록번호가 다르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등의 형식논리에 치우치다 보면 매우 난처한 일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김흥준 변호사

어느 날 사무실에 중년의 의뢰인이 찾아오셨는데, 매우 억울한 일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의뢰인께서는 A라는 회사의 1인 주주이자, 대표이사이신데 돌연 골프장 건설사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지 매입과 허가 비용, 주민 공청회, 주민들에게 기부 등 돈이 수십 억 들어갔고 결국 자금 부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됐습니다.

의뢰인은 할 수 없이 A회사를 매수할 사람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때 B라는 사람이 찾아와서는 하는 말이 “금융권, 대학동기 등 아는 사람이 많이 있다”며 “A회사의 주식 전부를 35억 원에 매수하고 계약금으로 일단 1억원을 지급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B는 의뢰인에게 1억 원을 지급했고 이에 의뢰인은 B를 신뢰하게 됐으며 기대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B는 의뢰인에게 “내가 형식상으로라도 A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어야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준다고 한다. 나를 대표이사로 등기해 주면 금융권에서 돈을 대출받아 주식매매 잔금 34억 원을 지급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의뢰인은 곰곰이 생각한 후 명목상 대표이사를 B로 한다고 하더라도 A회사의 법인인감도장, 법인인감증명서 등을 의뢰인이 보관하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B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B를 A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만 해주고 법인인감도장, 법인인감증명서 등을 모두 의뢰인이 보관하게 됐습니다.

의뢰인은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입니다.

B는 법인인감도장 분실신고를 하고 새 도장으로 법인인감신고를 한 후 A회사의 골프장 부지 등을 사채업자 등에게 담보로 주고 10억원 이상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사채업자로부터 대여 받은 돈을 가지고 잠적을 해 버린 것입니다.

의뢰인의 실수는 바로 법인의 대표이사는 법인도장을 소지하지 않아도 분실신고를 통해 법인의 대표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그 후 B를 극적으로 체포해 현재 교도소에 집어넣었지만 근저당권자와의 근저당권말소등기 소송이라는 매우 힘든 소송에 휘말리게 됐습니다.

의뢰인은 B와 같이 법인인감도장 분실신고라는 맹점을 이용한 자의 소행을 알아채지 못한 점에 관해 매우 고통스러워했지만, 근저당말소 소송을 통해 근저당권자와 절반에 합의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법의 맹점 내지 외곽지점을 이용하는 경우는 법인제도의 남용 사례에서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성실하고 일에 열성적인 한 아주머니께서 C라는 회사가 너무 잘 운영되는 것을 보고 C회사에 3억원을 빌려줬는데 C회사의 대표자는 돌연 회사를 폐업시키고 회사 재산이 없으니 돈을 갚을 수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C회사의 대표자는 알고보니 D라는 회사를 만들어 C회사 거래처와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호도 C회사의 ‘주식회사 00이엔씨’를 ‘00이앤씨 주식회사’로 교묘히 바꿔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법인격남용이라는 제도를 십분 활용해 승소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인격남용이란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와 법인격을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 사안처럼 기존의 회사가 채무면탈을 목적으로 그 회사와 형태와 목적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해 신설회사가 기존회사와 별개의 회사임을 내세워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법인격남용입니다.

이렇듯 법의 맹점을 이용해 사기나 채무면탈 등의 행위를 저지르는 자가 있는 반면 이들에 대처하는 법이 존재합니다.

형식상, 문언상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때로는 인도적, 경험칙, 구체적 타당성 이라는 이름하에 구제를 받기도 하므로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겠지만 우선에는 이런 맹점을 이용하는 자의 행동을 잘 파악해 위험한 처지에 들어서지 않는 게 훨씬 훌륭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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