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법 전부개정안, 확률 정보 공개 범위 확대
게임업계는 반대의견 제출 후 자율규제 강화
넥슨, 자발적 확률 공개범위 확대 선언
고질적 각개전투 문제, 각자도생 추구하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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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게임업계는 트럭 시위로 시작해 확률형 아이템 논란까지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공개를 명문화하고, 자율규제보다 범위를 넓힌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과 트럭 시위가 만나 십수년간 누적된 ‘과금 피로도’는 국내 게임사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했다.

2일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에 따르면 GSOK 자율규제평가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임시위원회를 열고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을 제안했다. 개정안에는 기존에 게임사들이 자율규제에 따라 확률을 공개했던 캡슐 형태의 확률형 아이템뿐 아니라 유료 인챈트, 강화 콘텐츠의 확률 공개, 유료 요소와 무료 요소가 결합된 인챈트 및 강화 콘텐츠도 확률을 공개하고, 개인화된 확률은 기본 확률값과 그 범위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제안됐다.

앞서 게임법 전부개정안에 대해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에서는 확률 정보는 영업비밀이고, 게임 상황에 따라 확률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공개하기 어렵다는 반대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GSOK 강령 개정 제안에 담긴 내용은 현행 자율규제의 범위를 이상헌 의원이 대표발의한 게임법 전부개정안 수준으로 넓히고, 개인의 경험치 혹은 보유한 아이템 등 ‘변동확률’도 공개하도록 추가하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게임업계가 이용권을 구매하는 ‘월정액’ 방식의 수익모델(BM)을 부분유료화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탄생해 국내 대형 게임사의 주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에는 게임사가 자율규제에 따라 공개하는 확률 정보에 유료+무료 결합 형태의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 정도만 담겼지만, K-GAMES는 게임법에 확률 공개가 명문화되고 추가 규제 발생을 우려해 반대의견을 표명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1월부터 게임사들이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트럭을 게임사 사옥 주변에 돌게 하는 등 시위를 하고 있던 국내 게이머들이 K-GAMES의 답변서 내용을 보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최근 게임·IT업계에서 개발자 모시기 경쟁을 하면서 연봉을 대거 일괄인상하는 것마저도 확률형 아이템으로 뜯어간 소비자들의 돈으로 잔치를 벌이냐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다. 게임사와 게이머 간 신뢰도는 무너졌고, ‘난민’으로 불릴 만큼 대규모의 이용자 이탈이 나타났다.

올해 첫 확률 논란의 대상이었던 ‘메이플스토리’에서는 ‘무작위’라는 용어가 사전적 정의처럼 모든 일이 동등한 확률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사에서 설정한 차등확률로 적용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작위’가 유료·무료로 얻을 수 있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신의 ‘스펙’을 높이기 위한 확률형 아이템에 적용됐다는 것을 안 게이머들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졌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하루이틀 있던 것도 아니어서 쉽사리 가라앉을 상태도 아니다.

게임사들 입장에서도 난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에는 K-GAMES에서 반대의견을 표명했지만, 게임사는 자체적으로 법안에 반대할 명분이 부족하다. 가뜩이나 게이머들이 불같이 화를 내고 있고, 게임사에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만큼 신뢰가 무너진 상태다.

그러자 넥슨은 지난달 5일 논란의 중심에 선 메이플스토리 정보를 우선적으로, 주요 게임에서 유료 강화나 합성류 정보까지 전면적으로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확률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시스템도 도입하기로 했다. 게이머들은 모니터링 시스템도 못 믿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넥슨의 확률 공개 선언 여파는 컸다.

K-GAMES는 확률 정보가 영업비밀이고, 개인화된 확률(변동확률)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넥슨은 이를 공개하기로 한 셈이다. 다른 게임사들도 뒤를 따라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 말 주주총회에서도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에 관한 질의가 오갔다. 엔씨소프트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실행안을 검토하고 있고, 넷마블은 자율규제와 무관하게 이미 광범위한 확률을 공개하고 있고 간접적인 부분까지 이용자가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GSOK의 강령 개정 제안은 K-GAMES의 논리를 다시 한번 무너뜨렸다. GSOK에 따르면 자율규제평가위원회는 지난해 11월부터 강령 개정안 마련 작업을 TF 운영을 통해 진행해왔는데, K-GAMES가 밝히기 어렵다고 한 확률 정보를 개인별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확률 정보까지 ‘강화된 자율규제’ 형태로 공개하자고 한 것.

GSOK 강령 개정 TF 회차별 논의 내용을 보면 강령 개정안 평가위원 의견 청취는 2월, 협회 측 의견 청취는 3월에 이뤄졌다. GSOK의 강령 개정 논의는 게임법 전부개정안에 관한 K-GAMES의 의견서가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키우고, 이에 분노한 게이머들이 국회의원을 찾아가 문제를 제보하고 규제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게임사로 트럭을 보내 시위를 하는 시기에 이뤄진 셈이다.

이상헌 의원은 2월 18일 K-GAMES에 “이미 자율규제로 공개하고 있는 아이템 획득 확률을 법에 명문화하자는 것뿐”이라며 전향적인 자세로 논의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또 지난달 2일에는 이상헌 의원이 메이플스토리에 관해 넥슨에 질의한 공식 질의서를 공개하고 “더이상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숫자로 소비자를 속여 부당이득을 챙긴 확률장사 ‘5대 악(惡)겜’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식 조사 의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달 5일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게임사의 BM이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며 ‘컴플리트가챠 금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 의무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황희 장관은 지난달 22일 게임사 및 K-GAMES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율규제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고 있는데, 부정적 인식이 국내 게임산업 전반으로 확산할까 우려스럽다”며 “지금이라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정화를 통해 불신을 해소하고 게임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 의무 명문화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라는 점에서 명분을 갖게 됐고, 여·야 할 것 없이 일제히 게임업계를 비판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범위를 넓히지 않고, 법에 명문화하지 않으려는게임업계의 기조는 여전히 자율규제를 강화해 법정화를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GSOK의 강령 개정안이 게임법 전부개정안보다 공개범위를 넓게 설정했고, 게임사들은 강화된 자율규제에 따라 게이머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식이다.

게임사-게이머 간 신뢰뿐 아니라 GSOK 자율규제의 신뢰도에도 비판이 일고 있다.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이번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관해 하태경 의원실에서 GSOK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GSOK이 답변을 거부했다. 이에 관해 하 의원은 “GSOK의 역할이 확률 정보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부여하는 것인데 국회에도 자료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게임업계가 공개한 자료의 객관성을 누가 담보해주냐는 더 큰 심각한 의문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도 “2008년 온라인게임을 기준으로 세운 협회 자율규제안이 있었지만 무력화됐다. 당시 게이머들이 가진 반감은 지금과 같다. 2016년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한 적 있는데 데자뷰 정도가 아니라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라며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것을 했길래 똑같은 상황이 또 나왔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고 게임업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게임업계가 확률 정보 공개 의무 명문화 대신 자율규제 강화를 강화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노력에도 기류가 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해서는 정부·국회가 규제하겠다고 먼저 나선 것이 아니라 게이머들이 먼저 정부·국회에 입법을 촉구하고 있어 여론은 게임업계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실정이다.

또 확률형 아이템 공개범위가 주로 대형 게임사에서 문제 되는 점이 업계의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배경으로 분석된다. 중소형 게임사는 최근 확률형 아이템 의존도를 낮추고 과금 부담을 줄였다는 마케팅 전략을 기반으로 인앱광고를 시청하면 유료재화를 보상으로 주는 ‘광고수익화 게임’이 늘어나는 추세다.

김현규 한국모바일게임협회 부회장은 “확률형 아이템은 중소기업의 이슈가 아니다”라며 “중소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을 떠나 광고수익화 게임으로 글로벌에서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승범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은 ‘게임 확률형 아이템, 대안을 고민한다’ 토론회에서 “이용자들의 분노와 게임사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게임사가 귀를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정부는 이용자들이 즐기는 정보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입법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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