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규모 1조원 이상 저축은행, 해외 송·수금 서비스 개시 가능
금융 기업 간 해외송금 ‘수수료 경쟁’ 치열
저축은행 업계, “해외 송·수금 업무 사업성 낮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획재정부가 저축은행에도 해외 송금 업무를 개방했다. 하지만 관련 시장에서 금융 업계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축은행 업계는 선뜻 해외 송·수금 서비스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3월 27일 자산이 1조원 이상인 저축은행에 대해 해외 송·수금 업무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이번 달부터 전국 79개 저축은행 중,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21개 저축은행이 해외 송·수금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게 됐다.

저축은행 업계는 규제가 폐지되기 전, 해외 송금 업무 규제 완화에 대한 의견서를 여러 차례 제출한 바 있지만 기재부는 허가해주지 않았다. 기재부가 지난해 9월 ‘혁신성장과 수요자 중심 외환제도 감독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카드사와 증권사에게 해외송금의 문을 열어줬을 때도, 저축은행은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

기재부는 저축은행 업계가 ‘자금세탁방지의무 이행능력’이 부족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다른 금융 업계보다 자금세탁방지 역량이 약해 해외에서 금융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줄곧 ‘불허’의 의견을 내비쳤던 기재부가 저축은행에도 해외 송·수금 업무를 허가해 준 데에는 규제입증책임의 역할이 컸다. 규제입증책임은 정부가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할 때,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제도다. 정부는 규제를 폐지하고 은행 외 금융 기업에 외환 거래 업무를 허용해 해외송금 시장 경쟁을 확대하고 소비자 편의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렸던 저축은행 업계는 규제 개방을 앞두고 잠잠한 분위기다. 이달 중 해외 송·수금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저축은행은 아직까지 한 곳도 없다. 정부가 저축은행 뿐 아니라 다른 금융 업계에도 해외 송금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해외 송금 규모는 13조358억원으로 2017년 12조5130억원보다 5228억원 증가했다.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 등이 증가하면서 해외 송금 규모가 증가하는 추세다.

기존의 해외 송금은 스위프트(SWIFT)망을 통해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했다. 국내 시중은행에서 돈을 송금하면 전산망을 통해 중개은행을 거친 뒤, 해외 현지은행으로 전달된다.

돈이 거쳐가는 단계가 많다 보니 그에 따라 수수료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각 단계마다 송금수수료와 중개수수료, 수취수수료, 전산망 사용 수수료가 발생하며, 결국 송금액의 4~5%가 수수료로 빠져나간다. 100만원을 송금하면 4만~5만원 가량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값비싼 수수료는 인터넷은행과 핀테크 업체가 해외 송금 시장에 뛰어들면서 인하되기 시작했다. 2017년 정부가 인터넷은행과 핀테크 업체에 대해 소액외환거래를 허용하면서 이들 기업은 복잡한 송금 절차를 간소화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저렴한 수수료를 선보였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 수수료는 5000원에서 1만원 수준이며 ‘케이뱅크’는 송금 금액 상관없이 건당 40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SK텔레콤과 하나금융그룹이 손잡고 만든 핀테크 업체 ‘핀크’의 수수료는 5000원이다. ‘코인원트랜스퍼’의 해외 송금서비스 ‘크로스’는 송금액의 1%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증권사와 카드사, 저축은행까지 해외 송금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저축은행 업계는 해외 송·수금 업무의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외환 송금업 자체는 사업성이 떨어진다. 이미 시중은행과 다른 금융 기업들의 경쟁 구도가 형성돼있는 상황에 쉽게 경쟁에 뛰어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스위프트망을 이용하지 않고 해외 송금업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시스템을 꾸준히 관리해야 하며 관련 업무에 대한 인력도 필요하다.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셈이다”이라며 “해외 송금업 자체에 대한 수익성이 투자비용을 초과할 만큼 높지 않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 업계는 해외 송·수금 서비스 출시에 대해 신중을 가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규제가 풀린 것도 저축은행 업계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지난해 카드사와 증권사에 대한 규제가 풀렸을 때도 저축은행은 규제 완화 대상이 아니었다”라며 “규제가 풀렸다고 해서 저축은행들이 바로 관련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업계는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송·수금 관련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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