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셀프-디자인’ 도입으로 촉발된 불만, 불투명한 성과급 지급으로 폭발
성과급 산정 관련 구체적 기준 공개 요구 이어져…사측 ”대외비, 공개 불가“
최태원 SK그룹 회장 그간 ‘소통경영’ 강조, ‘불통’에 뿔난 직원들
직원들 경쟁사 이직 고려…내부 단속 들어간 SK하이닉스
협의회 구성됐지만 기술사무직노조는 제외…‘반쪽짜리’로 전락하나

최태원 SK 회장. 사진=SK
최태원 SK 회장. 사진=SK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인재 지키기’다. 경쟁업체로 핵심 인재 1인만 넘어가도 핵심 기술 전체가 넘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기존 연봉의 수배까지 제시하는 이유다. SK하이닉스에 인력 유출 경고등이 켜졌다. ‘불통’ 때문이다.

사실 SK하이닉스의 이번 사태는 예견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3년 전인 2018년 SK하이닉스는 ‘Self-Design(셀프-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인사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의 연봉은 기본급과 시간 외 수당을 더한 기준금, 기준급을 12로 나눈 후 업적금적용률을 곱한 업적금으로 구성된다.

이전까지 SK하이닉스는 ‘연봉제 급여 규칙’에 근거한 종합평가에 따라 업적금적용률을 EX(1000%), VG(900%), GD(800%), BE(700%), UN(600%) 등 5개 등급으로 산정해 업적금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셀프-디자인은 업적금을 각 인사권자가 유연하게 가/감해서 예산 한도 내에서 지급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제도가 정착될 경우 업적금 지급 기준이 불투명해지는데다 임원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몰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제기됐지만 거부할 힘은 없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 1월 SK하이닉스에서 기술사무직을 대상으로 셀프-디자인을 도입하기 위한 설명회를 진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도입하기 위함이 아닌 3년 전 받지 않은 동의를 받기 위함이다.

SK하이닉스가 3년 전 도입을 밝힌 셀프-디자인에 대한 설명회를 이제야 진행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기술사무직 노조에서 사측이 셀프-디자인을 도입하면서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지 않고 불법적으로 진행했다고 반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다수 직원들에 따르면 사측은 고과권자를 주도로 하는 설명회를 짧게 진행하고 링크를 통해 싸인을 받았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대다수 직원들은 싸인을 했고, 거부한 직원 역시 각 팀장들로부터 압박을 받아 싸인을 해야했다.

소통 부재는 성과급 지급에서도 드러났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PS 규모를 연봉의 20%(기본급의 400%)로 정한다”고 공지했다. ‘불통’의 조직문화가 외부로 알려진 신호탄이었다. 직원들은 폭발했다. 핵심은 ‘불통’이었다. 산정 방식이 불투명하다는 것.

SK하이닉스 성과급 제도는 PS(초과이익성과급)와 PI(생산성 격려금)로 나뉜다. PS는 연 1회, PI는 연 2회 지급한다. 논란이 된 PS는 1년 실적을 바탕으로 연간 목표치를 초과한 이익을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제도로 최대 기본급의 1000%까지 받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업황이 개선된 2017년과 2018년 당시 2년 연속 1000%의 PS와 500%의 특별기여금도 지급했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영업이익이 급감한 2019년에는 PS를 지급하지 않았으나, ‘미래 성장 특별 기여금’이라는 명목으로 기본급의 40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전년 대비 84% 증가한 5조12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음에도 PS를 2019년과 같게 책정했다. 직원들이 성과급 산정 방식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SK하이닉스 사내 게시판과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성과급 산정 방식을 공개해달라는 직원들의 글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사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급기야 4년차 직원이 이석희 사장에게 보낸 내부 항의 메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주된 내용은 성과급 지급 기준이 되고 있는 ‘EVA’라는 지수의 산출 방식 및 계산법을 공개해달라는 것이었다.

EVA(경제적 부가가치)는 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 법인세 등을 제외한 경영지표로, SK하이닉스는 PS(초과이익분배금)를 EVA 일부에서 지급하고 있다. 영업이익 외에 따져봐야 할 비용이 많다는 얘기인데, SK하이닉스는 대외비라는 이유로 EVA의 구체적 항목이나 비율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해당 직원의 메일에도 징계 경고를 보냈을 뿐이다.

사측의 ‘불통’ 행보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난 1일 SK하이닉스 M16 공장 준공식에서 노동조합 소속 일부 직원들이 피켓을 들고 성과급과 관련한 불만을 제기했지만 현장을 찾은 이석희 사장과 임원들은 어떠한 대화에도 나서지 않았다. 

물론 사태 해결을 위한 사측의 움직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받은 연봉을 모두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직원들 달래기에 나섰고 이석희 사장 역시 사내망 공지를 통해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지만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지 오래였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SK하이닉스의 ‘불통’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소통경영’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최 회장은 ‘임직원의 행복이 사회 전체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총 100회의 ‘행복토크’를 진행하는 등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왔다. 최 회장은 격식을 파괴한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혁신적 기업문화와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2018년 셀프-디자인 도입으로 촉발돼 작금의 성과급 사태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SK하이닉스의 행보는 그간 최 회장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게 됐다.

특히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핵심 인재 유출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내 게시판 등에는 “경쟁사로 이직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 확산과 동시에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 경쟁사에서 대규모 경력 채용 공고도 발표됐다.

사측 역시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경력 4년차 이상, 석사 2년차 이상 경력자의 이탈을 막기 위한 내부 단속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사측은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EVA에는 사업 전반에 걸친 내용이 담겨 있어 공개하기 힘들다”면서도 “최태원 회장이 연봉을 반납하고, 이석희 사장이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는 등 원활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천, 청주 전임직(생산) 노조 측에서 회사에 관련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여 협의에 들어가기로 했다“며 ”이를 계기로 갈등이 봉합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성과급 논란’을 두고 협의와 소통을 위한 중앙노사협의회를 4일 열고 성과급 제도 개선에 대한 첫 협의에 들어간다. 하지만 협의회 참석 대상에 기술사무직 노조가 빠진 사실이 전해지면서 ‘반쪽짜리’ 협의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협의회에는 현재 3개 노조 가운데 이천, 청주 공장의 전임직(생산) 2개 노조가 참석하고, 기술사무직 노조는 참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술사무직노조는 현재 협의회 참석을 요청했지만, 사측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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