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에 울려 퍼진 “라이엇코리아 만세!” [마이케나스]

구미호 아리에서 출발한 국가유산 보호 행보 외국계 기업이 국가유산 환수에 힘 보태다 이상의집 복원부터 왕실 유물 보존까지 100억 기부 눈앞…“유저와 함께했기에 가능”

2025-03-08     김영재 기자
사진=라이엇게임즈코리아 그래픽=김영재

기업이 문화·예술에 자원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국가 경쟁력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의 총칭인 메세나Mecenat. 그 어원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후원자였던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이 마이케나스에 빗대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인 상생과 후원을 직접 취재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라이엇게임즈 만세!”

때는 2019년 6월, 장소는 국립고궁박물관 강당. 당시 정재숙 문화재청장현 국가유산청장이 이런 인사말을 전한다. 역대 초유의 사태.

이날은 라이엇게임즈코리아가 후원한 두 점의 왕실 유물,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와 ‘중화궁인重華宮印’이 마침내 국외에서 환수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한 기관의 청장이 직접 기업명을 언급하며 ‘만세’를 외친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라이엇게임즈가 문화재현 국가유산 보호 사업에 있어 으뜸”이라는 것이 정 문화재청장의 변이다.

1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백자이동궁명사각호’(오른쪽)와 ‘중화궁인’ 환수 행사에서 두 유물이 공개되고 있다. (2019.6.19) 사진=연합뉴스

국가유산 보호는 국가적인 과제지만 민간의 협력이 없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중 환수는 경매 일정이 촉박하고 사전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 기업의 신속한 후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에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빠르고 강력한 지원으로 해외 경매에서 국가유산을 확보하고, 이를 되찾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두 유물이 그해 3월 미국 뉴욕 경매에 나왔으며, 이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확인해 라이엇게임즈코리아가 후원한 환수 기금으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지속적으로 기금을 준비해 놓고 있고, 결정적 순간에 즉각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특수 기업인 것이다. 게임 회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한국 국가유산 보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민간 후원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게임으로 지키는 국가유산

‘리그 오브 레전드’ 로고. 사진=라이엇게임즈코리아

행사에서 정 문화재청장은 “‘리그 오브 레전드’ 게이머들이 게임을 통해 문화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러한 자부심을 문화재 사랑으로도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글로벌 게임 기업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지사인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2011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국 시장에 출시하며 국내에 첫발을 내디뎠다.

게임 회사가 사회 공헌 활동을 고민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그러나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국가유산 보호라는 독특한 방향을 선택했다.

이 모든 것은 같은 해, 한국형 챔피언 ‘아리’의 출시와 함께 시작됐다. 아리는 전통 설화 속 구미호를 기반으로 제작된 캐릭터로,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이 챔피언의 초기 판매 수익을 한국 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 관계자는 “게임도 문화의 일부이며, 특히 라이엇게임즈가 현대 문화 콘텐트인 게임을 만드는 기업으로서 과거의 국가유산을 환수·보존·연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본사에서도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며 한국 오피스의 사회 공헌 활동을 지지해 줬다”고 덧붙였다.

이후 2012년,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국가유산청과 한문화재한지킴이현 국가유산지킴이 협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국가유산 보호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일회성 후원이 아닌, 꾸준히 지속되는 장기 프로젝트로 국가유산 보호 활동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해외로 떠난 유산, ‘라이엇’이 되찾는다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이 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석가삼존도’ 환수 기자간담회에서 불화의 미술사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4.1.7) 사진=연합뉴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지난 13년 동안 올 2월까지 총 7건의 국외 국가유산 환수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2014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허미티지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석가삼존도釋迦三尊圖’를 환수하면서 처음으로 국외 국가유산 환수에 기여했고, 이는 외국계 기업이 국가유산 반환 사업에 참여한 최초의 사례다. 이후 2018년 ‘문조비신정왕후왕세자빈책봉죽책文祖妃神貞王后王世子嬪冊封竹冊’, 2019년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과 ‘백자이동궁명사각호’ ‘중화궁인’을 되찾았다. 

특히 죽책은 2023년 6월, 국가유산청에 의해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으로 지정됐다. 민간 기업이 환수를 지원한 국외 소재 국가유산이 보물로 인정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최근에는 2022년 ‘보록寶盝’과 2024년 ‘경복궁선원전편액景福宮璿源殿扁額’까지 귀환시키며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했다.

국가유산청이 2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경복궁선원전편액’ 환수 기자간담회에서 편액을 공개하고 있다. (2025.2.27) 사진=연합뉴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전문 기관인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환수 대상을 선정하며,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이들의 검토 결과를 존중하고 필요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서 “경매를 통한 환수는 촉박한 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라이엇’이 신속한 기금 지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설명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2013년부터 국내에서도 긴급 구매가 필요한 국가유산에 관련 지원을 하고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과 2022년까지 누적 72건, 총 95점의 국내 긴급 구매를 함께했다.

◆과거를 지키고 미래와 잇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국가유산 보호 활동은 단순히 전통문화 보존에 그치지 않는다. 근대 국가유산까지 보호하고 복원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공간을 문화 교육의 장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을 담고 있는 공간을 보존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확대하려는 장기적인 계획의 일환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의집’ 리모델링 및 재개관 지원 사업이다. 이상의집은 한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생전 머물던 공간이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2017년, 국가유산청에 기부한 기금 중 일부를 활용, 집의 새 단장을 전액 후원했다. 재개관을 통해 아카이브 구축 및 편의 시설 확충을 통해 문화 항유 공간의 기능이 한층 강화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2일(현지시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개설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공사관을 방문해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2018.5.22) 사진=연합뉴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해외에 위치한 한국의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는 프로젝트도 후원해 왔다. 2016년,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전시관 조성 지원 사업이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후원 약정식에서 총 5억원의 예산을 기부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대한 제국이 1889년 워싱턴D.C.에 설립한 외교 공간으로, 조선 왕조와 대한 제국 시기의 대미 외교 활동을 증명하는 중요 건축물이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 매각됐고, 이후 건물 소유주가 바뀌면서 한국과의 역사적 연관성이 점차 희미해졌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가 2012년에 해당 건물을 다시 매입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건물 3층 전시 콘텐트 개발을 지원하며,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일반 유적지를 넘어 대한 제국 외교사 및 한미 교류사를 조망할 수 있는 역사 교육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국가유산청은 이런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후원에 감사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국립고궁박물관과 협력해 조선 왕실의 귀중한 유물을 보존하는 사업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과거 왕실에서 사용한 ‘노부鹵簿’의 보존 처리 지원 사업이다.

노부는 국왕 행차 시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행렬 주변에 배치된 깃발과 각종 의장물을 뜻한다. 한동안 각 궁궐과 왕릉에 보관되다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과 함께 이관돼 관리 중이었다. 보존 처리는 2015년과 2022년에 각각 25점, 15점이 성공리에 이뤄졌다.

2023년 12월에는 조선 왕실 서화 유산의 복제 사업 계획이 발표됐다. 운영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주관한다.

이 사업은 국가유산청과의 후원 약정에서 조선 왕실 유물의 정밀한 복제본 제작을 미래 투자의 일환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복제 대상으로는 책가도병풍冊架圖屛風,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 총 3건, 9점으로 결정됐다.

이밖에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2013년, 유적지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서울문묘와 성균관에 대한 3D 정밀 측량을 후원했다.

훼손이나 손실을 대비해 향후 복원 작업이 필요할 때 보다 정교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역사 연구자 및 건축 전문가가 국가유산의 원형을 더욱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업은 2014년 7월 마무리됐다. 

◆100억 기부 앞둔 국가유산 지킴이

라이엇게임즈코리아가 한국에서 진행하는 사회 공헌의 핵심 축은 이처럼 국가유산의 보호 및 지원이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각종 기관 및 정부로부터 수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2013년 대한민국게임대상 사회공헌우수기업상을 받으며 게임 산업 내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상은 6년 후 한 차례 더 수상 기록이 있다. 이후 2014년 문화재지킴이전국대회 문화재지킴이활동우수사례 부문 문화재청장표창을, 2017년 문화유산보호유공자포상시상식에서 문화유산의봉사및활용 부문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국가유산 분야에서 외국계 기업이 대통령표창을 받은 것은 그간 없던 일이었다.

조혁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대표이사. 사진=라이엇게임즈코리아

올해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2025년 누적 후원금 1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8억원에 대한 후원 약정식이 있었고 누적 기부금은 약 93억원에 달한다. 회사는 매년 국가유산청과의 협의를 통해 국외 소재 국가유산 환수뿐만 아니라 국내 유산 보호 및 긴급 구매, 청소년 교육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기부금을 사용하고 있다.

국외 유산 환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유저들은 “한국 기업보다 더 한국다운 ‘라이엇’”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뿌듯함을 나타내곤 한다. 자신은 단순히 게임을 즐겼을 뿐인데, 사회의 소중한 유산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유저가 보람을 느끼고 있다.

조혁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대표는 서면으로 “지금까지의 성과는 회사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었다”며 “국가유산청 및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문화유산국민신탁 등 여러 기관이 우리의 진심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신 덕”이라고 전했다.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기부와 사회 공헌 활동에는 ‘라이엇게임즈’라는 기업의 이름만이 아니라, 우리 게임을 사랑하는 수백만 플레이어들의 마음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한국의 유산을 보호하는 의미 있는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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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에 울려 퍼진 “라이엇코리아 만세!”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