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이만큼 부드럽게 취한다…무학의 예술 이야기 [마이케나스]

좋은데이나눔재단…지역 성장에 힘 보태다 작품 매입과 초대전으로 지역 작가 응원 2011년 처음 시작한 좋은데이미술대전 빛나는 전통문화…고성오광대 후원 11년 최재호 회장 “지역 문화·예술부터 지켜 나가야”

2025-01-11     김영재 기자
사진=무학그룹 그래픽=김영재

기업이 문화·예술에 자원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국가 경쟁력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의 총칭인 메세나Mecenat. 그 어원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후원자였던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이 마이케나스에 빗대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인 상생과 후원을 직접 취재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995년의 일이다. 무학은 23도 화이트를 출시하며 약 30년간 이어진 ‘소주 25도’ 공식을 깨뜨렸다. 또한 회사명이 아닌 독립된 제품명으로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다.

무학은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닌, 좋은 시간을 나누는 술’을 목표로 다시 한번 혁신에 나섰다. 시대 흐름을 반영해 초저도 소주인 16.9도 좋은데이를 선보이며 국내 소주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손으로 돌려 따는 뚜껑을 소주병에 처음 도입한 것도 바로 무학이었다.

이처럼 무학은 늘 도전하고 혁신하며, 주류酒類 문화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무학은 이러한 변화와 혁신을 지역의 문화·예술 분야로도 확장하고 있다.

‘고객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도전 정신을 실천한 최재호 무학그룹 회장.

일찍이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는 이를 위해 오랜 시간 지역 문화·예술인을 지원하고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제6대 경남메세나협회 회장으로 취임해 사설 단체였던 협회를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메세나 단체로 승격시켰다. 또한 경남 18개 시군의 문화·예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찾아가는 메세나’ 정책을 추진하며 모두가 그 혜택을 쉽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무학 관계자는 “무학은 지역 문화·예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 믿는다”며 “특히 경남 지역의 문화·예술을 지원함으로써 지역민과 함께 성장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지역과 함께하는 무학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이 본사를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무학은 지역과의 동반 성장을 중요시하며 창원에 본사를 두고, 국내를 대표하는 100년 기업을 꿈꾸고 있다.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이며 지역 주민에게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최재호 회장은 “지역에 뿌리를 두면서도 세계를 지향하는 기업 이념 아래, 지역 예술인의 뛰어남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축적된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의 성장을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서민의 애환을 보듬는 향토 기업 무학은 1985년 설립한 현 좋은데이나눔재단을 통해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1985년 무학장학재단으로 출범한 이래 1993년 무학문화장학재단, 2008년 무학교육문화재단, 2011년 좋은데이사회공헌재단, 그리고 2015년 좋은데이나눔재단으로 이름을 바꾸며 학술과 교육에서 문화·예술에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자산 규모 약 240억원에 달하는 재단의 나눔 활동은 메세나 기업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누구나 누리는 굿데이갤러리

굿데이뮤지엄. 사진=무학그룹

“미술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을 하나로 소통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죠. 이런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에 사회와 기업의 관심이 중요합니다.”

최재호 회장은 굿데이갤러리 개관 1주년 기념전에서 이같은 소회를 밝혔다.

무학은 문화·예술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가 일상에서 쉽게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 내 전시 공간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자 본사 굿데이뮤지엄 내에 굿데이갤러리를 마련해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5년 문을 연 굿데이뮤지엄은 원로 작가부터 청년 작가까지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작가를 초청해 폭넓은 전시회를 열고 있다.

개관 기념전에서 7000만원 상당의 작품을 매입한 이후 지역 예술인 작품 매입도 진행하고 있다.

당시 최재호 회장은 “미술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제고해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지역 예술인에게 힘이 되고자 작품 구입을 결정했다”며 “이를 굿데이갤러리에 전시해 미술이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학 관계자는 “경상남도미술대전에도 시상금을 후원하며 작품을 매입하고 있다. 그 외 다수 지역에서도 매입을 진행 중”이라며 “지역 작가의 열정을 응원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작품을 매입해야 한다. 하지만 작품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지역 기업이라도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020년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문화 행사가 중단된 상황에서 예술인의 창작 의욕을 북돋기 위해 5000만원 상당의 작품을 매입하고 ‘딱! 좋은데이와 함께하는 2020 경남 미술의 향기’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는 서울 인사동과 경남을 아우르며, 굿데이갤러리와 봉암수원지 일대 숲속미술관에서 열려 지역민도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또 2023년에는 제15회 경남미술경매&소품나눔전을 무학에서 개최해 경매에 출품한 작품을 구매하며 지역 미술 시장 활성화를 도왔다.

관람객들이 좋은데이지역작가초대전에서 정희정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무학그룹

좋은데이지역작가초대전도 열고 있다. 이를 통해 조각가 천원식, 서양화가 정희정, 도예가 성낙우 등 지역 작가의 뛰어난 창작물을 소개하며 전시 공간과 제반 사항을 전폭적으로 지원 중이다.

최재호 회장은 “기업이 가진 인프라를 지역민과 공유해 누구나 전시하고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 예술가와 아트 페어 지원

무학은 2011년부터 좋은데이미술대전을 개최하며 건전한 창작 풍토 조성과 청년 예술가 육성에 기여해 왔다.

현재까지 400여 명의 젊은 작가가 입선 이상을 수상했으며, 이 중 일부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예술의 길을 이어 가고 있다.

제3회 대회까지는 부산, 울산, 경남 지역 대학생으로 출품 자격이 제한됐지만, 제4회 대회부터는 전국 단위로 참여 범위를 확대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함께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총시상금 규모는 2800만원에 달한다.

2024년에는 7년 만에 제6회 좋은데이미술대전이 개최됐다. 1차 사진 심사와 2차 작품 심사를 거쳐 대상 1점, 최우수상 2점, 우수상 6점, 특선 10점 등 총 40점의 우수작이 선정됐다.

제6회 좋은데이미술대전 대상작 ‘크랩 사피엔스’ 사진=무학그룹

충남대학교 이태규 씨의 ‘크랩 사피엔스Crab Sapiens’가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획일화된 현대 인류의 모습을 게와 인간을 결합한 형상으로 표현한 독창적인 조형물이다.

이 씨는 “변화하는 사회 모습보다 나 자신의 모습을 더 깊게 관찰하는 것이 나의 가치를 찾는 일이며, 우리의 인생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표현한 작품”이라며 “청년 예술인을 대표해 수상한 만큼 예술적으로 더욱 가치 있는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재호 회장은 “청년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문화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며 “청년 작가의 예술적 도전과 성장을 계속해서 응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무학은 좋은데이미술대전 외에 경남국제아트페어를 후원하며 경남의 미술 시장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5년 만에 열린 경남국제아트페어에서는 독일, 프랑스, 미국, 중국, 일본, 한국까지 국내외 43개 유명 갤러리가 참여해 6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우주항공청 개청을 기념하는 우주 항공 특별전 ▲유택렬 화백 탄생 100주년 특별전 ▲문신·안재덕·이림의 작품으로 구성된 한국 현대 미술 특별전까지 3개 특별전이 열려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통과 지역의 연결 고리

무학은 한국 대표 탈춤인 고성오광대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2015년부터 고성오광대보존회를 후원하고 있다. 올해로 11년째 이어지는 이 인연은 전통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노력을 보여 준다.

고성오광대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됐고, 이후 사단법인 고성오광대보존회가 구성돼 800여 회의 국내외 공연에 참가했다.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15일 경남 고성군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고성오광대 국가무형유산 지정 60주년 기념 공연’ 개막식 및 후원 결연식에서 최재호(오른쪽) 회장이 전광열 고성오광대보존회 대표에게 후원금 1000만원 기탁 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2024.08.15) 사진=무학그룹

지난해 8월 ‘고성오광대 국가무형유산 지정 60주년 기념 공연’ 개막식 및 후원 결연식에서 최재호 회장은 “고성오광대의 순수한 열정을 지원하고자 변함없이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며 “우리 지역의 전통 가면극인 고성오광대의 빛나는 춤사위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무학은 또한 경남 고성군과 협력해 고성문화예술촌 전시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월 무학과 고성군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고성군이 건립 부지 제공 및 행정 절차를 맡고 무학이 50억원을 부담해 전시관 건립 후 이를 기부 채납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전시관 건립은 고성군의 문화·예술 활동 증진과 예술인 창작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며, 기업이 지역 발전에 적극 기여하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지역 소멸 위기에 대항하다

1929년 경남에서 설립된 무학의 역사는 한 세기에 가깝다.

올 10월 창립 96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무학은 제10회 경남메세나대회 대상을 비롯해 여러 권위 있는 상을 받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2회째 문화·예술 후원 우수 기관으로 인증받았다.

해당 인증 제도는 매년 모범적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후원하고 있는 단체와 기관을 심사해 인증하는 제도다. 

최재호 회장이 1일 오후 경남 창원시 무학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창립 90주년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말하고 있다. (2019.10.01) 사진=연합뉴스

앞으로도 무학은 창의적 도전 정신과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고객과 지역 주민에게 품격 있고 ‘문화’로운 삶을 선사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최재호 회장은 “문화·예술 활동이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면서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을지라도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지역은 그게 언제냐의 문제이지 소멸 직전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균형 발전을 위해 정책적 결정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지역 구성원이 힘을 합쳐 실행 가능한 일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합니다. 지역이 존재해야 지역 기업인도 기업을 경영할 수 있으니까요. 지역 예술과 문화가 주목받고 지역민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의 문화·예술부터 지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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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데이만큼 부드럽게 취한다…무학의 예술 이야기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