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 미로, 韓 전통 가마로 작업해야 본질 유지한다고 믿었어요”
개인전 ‘조각의 언어’ 2026년 2월까지 타데우스로팍 서울서 푼옛 미로 “정희민과의 전시, 조부도 좋아했을 것”
대중에게는 주로 회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호안 미로(1893-1983)는 일찍부터 조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22년부터 실험적 시도를 했고, 1944년 도예가 조셉 로렌스 아르티가스(1892-1980)와의 협업은 1953년 다시 이어져 그가 조각 영역으로 본격 확장하는 전환점이 됐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각은 작가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 축으로 자리 잡는다.
“할아버지께서는 바르셀로나 북쪽 40mile 떨어진 곳에서 세라믹 조각을 만드셨습니다. 그곳에는 가마가 2개 있었는데, 하나는 일본식, 하나는 한국식 가마였죠. 또 가스식이 아닌 한국 전통 나무 가마를 사용하셨는데요. 전통 가마로 작업해야 작품이 지녀야 할 본질과 신성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타데우스로팍 서울이 오는 21일부터 내년 2월 7일까지 호안 미로 개인전 ‘조각의 언어Sculptures’를 개최한다.
미로의 손자인 호안 푼옛 미로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당 갤러리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총 13점의 초현실주의 조각을 금번 소개한다”며 “친구 뒤샹에게서도 영향받았고, 자코메티, 피카소, 무어와도 교우했다. 그중에서도 미로는 혁신적 창작자였다”고 밝혔다.
미로의 조각은 초현실주의적 아상블라주Assemblage에 바탕을 둔다. 아상블라주는 서로 다른 재료와 사물을 결합해 평면을 입체적 조형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본 전시는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후기 청동 아상블라주 조각을 중심으로 한다. 생애 말기 집중됐던 조각 실험을 되짚어 보는 자리다.
대다수는 미로가 마요르카 세르트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조각으로,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주운 자연물 및 생활 오브제에서 착안됐다. 푼옛 미로에 따르면 작가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사물을 발견했다. 이를 시적詩的 충격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배열한 뒤 청동으로 주조했다고 한다.
갤러리 2층 야외 중정에는 높이 약 3m의 ‘여인과 새Femme et oiseau’(1982)가 설치돼 있다. 바르셀로나 호안미로공원에 자리한 대형 조각 ‘여인과 새Dona i Ocell’(1983)보다 1년 앞선 작이다.
이 추상적 여성상은 남성과 여성의 주요 신체가 결합된 과장된 성징이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개화하는 야누스Janus Fleuri’(1968)를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조선의 미학과 선비 정신이 공간 구성에 반영됐다.
미로가 프랑스 생폴드방스 매그재단에 조성한 ‘미로 라비린스Miró Labyrinth’와 한옥의 차경 개념도 함께 섞었단다.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는 “마요르카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공간의 여백 그리고 사물의 서사를 따지지 않는 태도가 선비의 그것과 닮았다고 느꼈다”며 “유럽의 유명 작가란 점만이 아닌, 미로의 사유와 정신이 한국 관람객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며 공간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갤러리 1층에서는 정희민 작가(b.1987)의 개인전 ‘번민의 정원’도 열린다.
두 작가 모두 일상 속 사물을 조형 언어로 넓히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푼옛 미로는 “할아버지는 늘 다음 세대 작가를 생각하셨다. 이번에 정 작가와 전시하는 것도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재단이 3곳호안미로재단, 마요르카필라르·호안미로재단, 마스미로재단 있는데, 모두 젊은 작가를 지원하고 전시 개최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