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빚투’ 26조원, 증권사 수익↑...내부통제 역량·리스크 관리가 관건
증시 활황 속 빚투 확대…수익성과 리스크 관리 ‘양날의 검’ 증권사별 대응 격차 뚜렷…중소형사, 위기 대응 속도 취약 우려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반면 증권사 수익성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 체계가 증권사별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급증하는 신용융자 규모에 대응하는 증권사의 역량이 향후 시장 안정성과 수익 지속성을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기업신용공여 등 증권사 리스크관리 워크숍’을 개최했다. 금감원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 확대와 모험자본 의무비율 신설로 증권사 역할이 커지고 있다며, 이에 대응해 업계가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리스크관리 역량을 사전에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증권사들은 ▲인수금융 ▲주식담보대출 ▲신용대출 ▲브릿지론 등 다양한 유형의 신용공여 상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또 금리 상승과 담보가치 하락, 현금흐름 악화 등을 여러 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테스트 방식을 공유하며 대응 체계를 점검 중이다. 금융당국이 경고한 리스크가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을 의식한 조치로 읽힌다.
지난 13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6조2515억원으로 2021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연초 대비 67.4% 증가한 수치로 최근 코스피 지수가 4000선을 넘나들며 증시 활황이 이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거래대금과 신용융자 확대는 증권사들의 수수료 및 이자수익 증가로 직결됐다. 금리 상승기에도 잔고가 줄지 않은 것은 신용공여의 수익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대형사 선제 대응 vs 중소형사 격차…AI 도입 여부가 분수령
신용융자 급증은 수익성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리스크 관리 부담도 동시에 키우고 있다. 잔고 규모가 커진 만큼 증권사들이 고위험 계좌와 종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간 주가 급락 시 실시되는 반대매매가 다수 계좌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할 경우, 증권사 자본 기반과 체계적 대응 역량에 따라 차별적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대형 증권사들은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전담 프라이빗뱅커가 무리한 신용거래를 권유하지 않도록 점검 체계를 마련하고, 특정 종목의 신용대출 잔고가 몰릴 경우 이를 즉시 감지해 경고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감리·리서치·컴플라이언스·심사 부서가 참여하는 4단계 심사 절차를 통해 신용융자 가능 종목을 세밀하게 관리하며, AI(인공지능) 기반 신용리스크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종목별 위험도를 실시간 분석하고 있다.
KB증권은 지난달 30일부터 국내외 주식과 펀드, ELS(주가연계증권) 등 전 종목의 증권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증시 급등 국면에서 담보가치 하락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키움증권도 지난달 19일부터 일부 고변동성 종목 투자 시 필요한 현금 비중을 100%로 높이고 대용비율(담보로 인정되는 자산 비중)을 25~40%로 낮췄다. 이는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제한해 반대매매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개인투자자의 빚투(빚내서 투자)가 빠르게 늘면서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신용공여 한도를 재점검하고 담보비율도 재산정하고 있다”며 “주가가 단기 급등한 뒤 조정이 올 경우, 반대매매 위험을 미리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선제적 리스크 관리는 주로 대형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에서는 위기 대응 매뉴얼 부재, 자동화된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 미비 등으로 초기 충격에 대한 반응 속도가 대형사 대비 늦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다만 중소형 증권사 가운데서도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곳들이 있다. 유안타증권은 신용 가능 종목 축소와 종목별 신용거래 보증금률 상향 등 리스크 관리 및 투자자 보호 조치를 시행했다.
유안타증권 관계자는 “신용융자 잔고 동향에 대한 일별 모니터링을 강화해 시의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은 고객·종목별로 1~3등급 체계를 통해 신용공여 한도와 담보 비율을 차등 관리하고 있으며, 시장 상황과 개별 종목 이슈에 따라 수시로 조정하고 있다. 현재는 직원들이 수동으로 전 종목을 모니터링하는 방식이지만, 위기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운영 중이다.
대신증권 측은 “자동화 모니터링 시스템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지만 AI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고 전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용융자 확대 국면이 수익성 확보로 이어졌으나 내부통제 체계의 격차는 업계가 안고 있는 가장 구조적인 위험”이라며 “디지털 기반의 실시간 리스크관리 체계 구축 없이는 수익성 위주 운용이 리스크 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최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