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政評] ‘여사’의 품격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건희 씨는 지난 5일, 통일교 측으로부터 샤넬 백을 두 차례에 걸쳐 받은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김 여사의 변호인단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김 여사는 전성배 씨로부터 두 차례 가방 선물을 받은 사실을 인정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통일교와 공모하거나 어떤 형태의 청탁·대가 관계도 없었으며, 그라프 목걸이 수수 사실 또한 명백히 부인한다”라고 주장했다.
목걸이 수수 여부는 확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김건희 씨가 그간 거짓말을 해왔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거짓말은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일종의 ‘방어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도덕적 기준에서 볼 때, 그리고 과거 영부인이었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부끄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김건희 씨의 거짓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나토 회의 참석 당시 착용한 6000만 원대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에 대해 처음에는 “빌렸다”고 했다가, 이후 “모조품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결국 서희건설 회장이 해당 목걸이를 자신이 선물했다고 밝히며 거짓이 드러났다.
이번에도 김 씨는 “공직자의 배우자로서 신중했어야 함에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린 데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모든 절차에 성실히 임하고 한 점 거짓 없이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 또한 신뢰하기 어렵다. 지난 8월 특검이 김 씨를 기소한 이후, 김 씨는 “국민께 심려를 끼친 이 상황이 참으로 송구하고 매일이 괴로울 따름”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변명하지 않겠다”고 했고, “가장 어두운 밤에 달빛이 밝게 빛나듯이 저 역시 저의 진실과 마음을 바라보며 이 시간을 견디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이런 발언을 믿었던 국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거짓말을 반복하다 결국 들통나고 있으니, 당시 김 씨를 믿었던 이들이 느낄 배신감은 적지 않을 것이며, 이번에 자신의 거짓을 시인하면서 앞으로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약속 역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에게 ‘여사’ 호칭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판정에서 불만을 토로한 것은 많은 국민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31일 오전 10시 15분,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관련 5차 공판기일에 출석했다. 이 재판에서 검사가 ‘여사’라는 호칭 없이 ‘김건희’라고 지칭하자, 윤 전 대통령은 “아무리 그만두고 나왔다 해도 ‘김건희’가 뭡니까”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서운했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여사’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만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말했어야 했다.
‘여사’라는 용어는 전(前) 영부인으로서 최소한의 품격과 책임 있는 언행을 갖춘 경우에 부여될 수 있는 명칭이다. 그러나 김 씨는 수차례 거짓말을 해온 뒤에도 “믿어달라”는 식의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김건희 씨 스스로가 여사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음을 증묭하는 것이다.
전직 영부인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여사’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윤 전 대통령의 태도 역시, 그의 ‘상황 인식’과 거기서 파생되는 상황 판단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부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 국민과 이토록 동떨어져 있다면, 그런 전직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기대’를 갖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은 호칭에 대한 불만을 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인의 거짓된 언행에 대해 사과했어야 했다. 그것이 전직 국가 원수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번에 김 씨가 거짓을 인정하게 된 배경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성배라는 인물이 재판 과정에서 샤넬 백 전달 사실을 시인했고, 이로 인해 더 이상 거짓말을 이어가다가는 현재 진행 중인 보석 신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보석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증거 인멸의 우려’라는 기각 사유를 제거해야 하는데, 거짓말을 인정함으로써 이를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거짓의 인정은 반성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략적 판단의 산물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만약 이러한 해석이 타당하다면, 김 씨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할 뿐, 국민의 시선이나 상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처럼 공적 지위를 누렸던 인물이 최소한의 공감 능력조차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깊은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국민은 더 이상 김건희 씨에게 전직 영부인으로서의 품격 있는 언행을 기대하지 않는다. 김 씨 스스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저 일반인으로서 상식적인 판단과 최소한의 양심 정도만이라도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기대조차도 지나친 사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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