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부족에 ‘방역 공백’ 우려…GC녹십자·SK바사, 돌파구 찾을까
독감·코로나19 동시 유행에 백신 530만 도즈 ‘턱없이 부족’ 국내 mRNA 백신 개발 지지부진…고면역 백신 개발로 방향 전환 미국·영국은 3년 전부터 권고, 한국은 예산 부족에 도입 막혀 고령층 겨냥 고면역 백신, 입원·사망 예방 효과 최대 30% 높아
때 이른 독감(인플루엔자)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코로나19마저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환절기와 겨울철이 겹치면서 고위험군에 대한 코로나19와 독감 백신 접종이 본격화됐지만, 백신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GC녹십자·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백신 개발사의 역량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독감 유행주의보, 두 달 앞당겨져
5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달 17일부로 전국에 독감 유행주의보가 발령됐다. 이는 지난해(12월 20일)보다 두 달 앞선 것이다.
질병관리청의 의원급 의료기관 표본감시 결과, 올해 43주차(10월 19~25일)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은 외래환자 1000명당 13.6명으로 나타났다. 1년 전(3.9명)의 3.5배 수준이다.
질병청은 최근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42주차 호흡기 증상 환자의 독감 바이러스 검출률도 7.5%로 낮지 않은 수준이어서 환자 규모가 차츰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독감 유행주의보 발령 당시인 40주차 기준 독감 바이러스 검출률은 7.1%였다.
이에 질병청은 지난달 15일부터 65세 이상 노인, 생후 6개월 이상 면역저하자 및 감염취약시설 입원·입소자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2025~2026절기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65세 이상 노인은 연령대별로 순차 접종이 이뤄지며 동일한 일정으로 독감 백신 동시 접종도 가능하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매년 코로나19 유행 변이가 달라지므로 고위험군은 최근 유행 변이에 효과적인 신규 백신으로 접종해야 한다”며 “어르신들은 한 번의 방문으로 편리하게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백신을 동시에 접종하시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독감·코로나19·폐렴구균 등 3종류의 백신을 동시에 맞아도 안전성이나 면역 반응에 큰 차이는 없다고 보고 있다.
◆백신 부족 사태에 접종 차질 우려
문제는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백신 부족 사태가 벌어져 고령층의 백신 접종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국가예방접종사업에 적용된 백신은 무료 접종이라는 점에서 집중적인 수요가 몰리고 있다.
올해 우리 정부가 확보한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530만 도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올해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포인트 높게 출발했다고 발표해 공급 부족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근 독감 유행주의보가 발령되면서 ‘트윈데믹(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 우려가 커지고 있어 고령층을 중심으로 독감과 코로나19 백신의 동시 접종이 강력히 권고되는 상황이다.
질병청은 국내 독감 유행이 11월 말~12월 초 정점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국내 백신, 독감은 있지만 코로나는 없다
올해 국가예방접종사업으로 공급되는 독감백신은 총 5종이다. 국내 백신 선두를 다투는 GC녹십자의 ‘지씨플루’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셀플루’를 비롯해 보령 ‘보령플루백신’, 사노피 ‘박씨그리프’, 일양약품 ‘일양플루백신’, 한국백신 ‘코박스플루PF’ 등이다.
코로나19 백신도 예방접종사업에 포함됐다. 모더나·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 백신 약 530만 도즈가 확보돼 있다.
관건은 독감 백신은 GC녹십자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업체의 제품이 국가예방접종사업에 도입돼 있으나 코로나19 백신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코로나19 백신 자급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속도는 더디다. 유전자재조합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만 있을 뿐, 개발에 성공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은 아직 없다.
◆고면역 백신, 유료 접종에도 높은 효과 주목
GC녹십자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업체들은 최근 백신 개발 방향을 고면역 백신 도입에 집중하고 있다. 고면역 백신이란 면역증강제를 넣거나 항원 용량을 4배로 높인 백신을 뜻한다.
현재 미국, 영국 등은 3년여 전부터 고면역원성 백신을 우선 접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는 일반 백신보다 고면역원성 백신의 입원·사망 예방 효과가 10~30% 높다는 연구가 여럿 나오면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예산 문제로 고면역 백신이 예방접종사업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즉, 고면역 백신 접종을 원한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효용성 측면에서는 주목받는 추세다.
◆GC녹십자·SK바사, 고면역 백신 개발 본격화
국내 업체들은 고령층을 겨냥한 고면역 백신 개발에 더욱 힘을 주고 있다.
GC녹십자는 고연령층 대상 고면역원성 3가 독감백신을 개발 중이다. 다음 해 상반기 중 국내 임상 2상 시험계획서(IND)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GC녹십자가 개발 중인 고면역원성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함량을 4배 높인 것이 특징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에 면역증강제를 적용한 신규 독감백신 후보물질 NBP607B 임상 1/2상 시험계획서(IND)를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했다. NBP607B는 면역증강 기술을 활용해 기존 백신의 예방 효과를 높이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스카이코비원 개발에도 활용된 기술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85세 이상 초고령층은 면역 노화에 따른 면역 반응이 약해진다는 점에서 고면역 백신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학계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독감과 코로나19 등 호흡기 질환이 다시 유행세를 보이고 있어 제약업계도 고면역 백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신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