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fps] 우리가 버렸던 사람 냄새…아직 베트남엔 향기롭다

5일 개봉

2025-11-03     김영재 기자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사진=싸이더스

《리뷰》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 117분 46초 / 29일 언론배급시사회 / CGV 용산아이파크몰

로그라인 호찌민서 거리의 이발사로 살아가는 환뚜언 쩐 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엄마 레티한홍 다오 분을 돌볼 수 없게 되고, 고육지책으로 서울 이부형제에게 버리려 결심한다. ▶‘버린다’는 말은 대개 더는 쓸모없어진 존재를 향해 쓰인다. 그러나 영화는 그 대상을 엄마로 지목하며, 단 한 단어만인데도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를 버린다는 것은 이미 여러 작품이 반복해 온바 이번에도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는 우리 안의 익숙한 연민이 슬픔을 자아낸다. // 보통은 경제적 이유로 자식이 부모를 떠나보낸다. 반면 본작은 정반대 논리를 취한다. 다름 아닌 효심 때문에 엄마를 버려야 하는 역설이다. 발작 및 기억 소실이 세대를 거쳐 되풀이되는 집안. 외할머니에 이어 엄마도, 이제는 고약하게도 아들까지 같은 병을 앓는다. 병든 엄마와 곧 그 길을 따라갈 아들. 아픈 효자의 마지막 배려는 엄마를 태어나 한 번 본 적 없는 형에게 맡기는 일뿐이다. // 작에는 인간의 체온이 가득 묻어 있다. 똥 바구니를 툴툴대고 갈지만, 아들은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생선 가시를 손으로 받고, 양치를 힘들어하면 등을 토닥인다. 생일에는 오히려 낳아 줘서 고맙다며 엄마에게 맛있는 저녁 한 상을 대접한다. 집을 나설 때면 문단속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혹 엄마가 집을 나가 못 돌아올지 염려돼서다. 그래서 “가끔은 죽고 싶은데, 엄마 혼자 두고는 못 죽겠다”는 아들의 말은, 으레 등장하는 대사라기보다 정말 알츠하이머 환자를 둔 어느 가족의 실제 웅변처럼 느껴진다. // 아직 국내 관객에게는 낯선 배우이나, 아들 환을 연기한 뚜언 쩐의 매력이 돋보인다. 불행할 수 있는 힘든 나날들. 그렇지만 지구에서 가장 싼 돈으로 머리를 깎으라며 이 거리의 이발사는 웃는 얼굴로 판촉에 열심이다. 딱한 사연을 듣고는 무료 이발도 감행한다. 환이 웃을 때 관객은 같이 웃고, 모종의 이유로 그가 웃음을 잃었을 때는 관객도 같이 울고 싶어진다. 단순한 낙천형 인물 말고, 엄마를 사랑하기에 힘들어도 오늘을 살아 내는 현실적 인물로 환을 그린다. 엄마 레티한 역의 국민 배우 홍 다오의 연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모르는 얼굴로 우리가 아는 정서를 연기한다. 그래서 그 둘의 연기는 영화가 아니라 삶의 한 조각으로 다가온다. // 매력은 또 있다. 어느 순간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정서가 아직 베트남에는 살아 숨 쉬고 있음이 발굴된다. 일하랴 엄마도 보살피랴 환의 삶은 하루하루가 벅차다. 그러나 환은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지 못해 죄스럽다고 한다. 친구들은 없는 살림에도 환의 여비를 모아 주고, 모자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이들을 알뜰히 챙긴다. 등장인물의 효심, 정은 과거 한국의 어느 군집에서나 볼 수 있던 온기를 닮았다. 생존이 삶의 방향이고, 세대와 성별, 계급 간 균열이 깊어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보기 힘든 광경이다. // 다만 모자가 한국에 와 내리는 결정에 관해서는 그 선함이 다소 이상적인 게 아니냐는 반감이 들 수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만 그 두 감정을 오가는 데 전환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아쉬움도 든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낸 정다운 온기, 조건 없이 타인을 품는 마음, 가진 것과 무관한 건강한 긍정 등을 영화는 담담히 되살린다. 환은 엄마를 버리러 한국에 왔지만, 정작 이 나라 관객은 그 덕에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되찾게 됐다. 향기로운 그 냄새를.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