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fps]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연기하고 여성이 겪었으니, 100점입니다
22일 개봉
《리뷰》
세계의 주인 / 119분 3초 / 15일 언론배급시사회 / CGV 용산아이파크몰
로그라인 여고생 주인서수빈 분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이제 세상은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허나 그 한마디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힐 수 없다. 윤가은 감독은 “중심인물과 줄거리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 없이 관람할 때 더 큰 영화적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이해가 가능”하다며, 주인이 과거에 겪은 일을 유추할 만한 단서는 가급적 감춰 달라 당부했다. 이 리뷰가 추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한국 독립 영화에 대한 통념이 있다면 본작은 그것을 전부 끌어안는다. 스타 배우는 없고 올해의 발견이라 불릴 신인 배우가 있다. 안타고니스트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서사는 전형적이지 않다. 술에 물을 탄 듯, 물에 술을 탄 듯 그다음을 유추하기가 어렵다. // 윤 감독은 “여자 청소년의 성과 사랑에 대한 아주 리얼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화는 시작부터 주인과 남자 친구 찬우김예창 분의 짧고도 뜨거운 디프 키스로 작의 문을 연다. 고등학생이지만 첫 경험 후기도 친구 간 묻는다. 다만 성교육 강사 구성애와 ‘아우성’이 이런 금기를 흔든 때가 1998년이다. 아울러 돌출형 콘돔을 두고 ‘섹스는 합법이고 쾌락은 불법이냐’는 여론이 들끓던 때가 10년 전이다. 그만큼 10대의 성 담론은 새롭지 못하다. // 결국 감독은 성에 ‘무엇’을 하나 덧씌운다. 바로 주인이 홧김에 내뱉은 한마디다. 그리고 영화는 그 한마디가 나오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관객을 슬금슬금 약 올린다. 결정적 장면이 터져 나오기까지, 이것이 갑작스럽지 않도록 복선을 쌓아 올리는 솜씨만은 탁월하다. 사과, 업보, 또한 “바깥 공기도 쐬고 땀도 흘리니까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같은 대사까지 모두가 복선이다. // 보는 순간에는 이해가 어렵지만, 전체 윤곽이 드러나면 그제야 이해되는 것이 본작의 매력이다. 어떤 것도 직접 제시하는 바가 없다. 빙빙 돌려 추론하도록 만든다. 눈은 스크린을 따라가지만 머리는 이면에서 전前 장면과 맥락을 되짚기에 바쁘다. 영화를 본다기보다 읽는 경험에 가깝고, 그럼으로써 개개가 머릿속에 나름의 진실을 만들게 한다. 덕분에 약 2시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다소 평범한 연출력을 가리기에 이만한 방책이 또 없다. // 주인 남동생 해인이재희 분의 마술쇼가 실패로 끝나는데,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다. 그 은유가 친절함을 넘어 너무 단순해서다. 인물들도 단선적이다. 여타 독립 영화처럼 화면에 사람 냄새가 나도, 반면 주인공은 마치 명령어가 하나뿐인 로봇처럼 움직인다. 주인은 지겹도록 사랑을 외친다. 심지어 영화 영제도 ‘더 월드 오브 러브The World of Love’다. 하지만 그가 가져야 할 감정은 사랑의 정반대다. 인지부조화로 친구와 싸움도 벌이면서, 정작 울화가 끓어야 할 대상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인다. 다른 인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 있다는 느낌 없이 이야기 전개를 위해 존재한다. 전후 상황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너는 너무 어려워” 하며 돌아서는 찬우, 특히 까불대면서도 속 깊은 동생인 해인은 약방의 감초 격이라 이 역시 수가 다 읽힌다. 역설적으로 관객은 이런 일관성 없거나 전형적인 인물을 보며 그들에 나를 대입, 애써 교훈을 찾는다. // 결정적 한마디 이후 영화는 몇몇 부분이 삐걱거린다. 여전히 단서만 가지고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그래도 결국 사랑’이라는 결론도 센티멘털한 비약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인과응보가 주인에게만 비껴가는 것도 불만의 여지를 남긴다. 제목은 ‘세계의 주인’이지만 실상은 ‘주인의 세계’다. 모든 것이 주인만을 위해 휘뚜루마뚜루 흘러간다. // 최근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2024),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라시네프 1등상 ‘첫여름’(2025) 등 저 ‘한마디’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강력한 힘에 기대 전가의 보도처럼 소비되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여성이 이것의 주체일 때마다 평단과 시네필은 또 걸작이 탄생했다며 거듭 호들갑을 떤다. 정말 이 영화가 걸작인가. 여성이 여성만의 사건을 사용하면 그것은 칭송받을 소비인가. 왜 자꾸 그 소비에 가산점을 더하는가. ‘색안경을 벗어라’란 영화 주제처럼 부디 선입견을 벗고, 더 정확히 장단을 짚을 필요가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