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NH농협은행, 스마트팜으로 기술금융 길 열었다
금융위, 기술평가 우수銀 기업·농협 선정 NH농협, 아그테크·환경기술 분야 선점 프로젝트 ‘네오’, 기술기업평가 시스템 마련
NH농협은행(은행장 강태영)이 기존 농업금융 인프라를 활용해 기술금융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전통적 농업금융 기관이 첨단 기술기업 지원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며, 기술금융 생태계의 다변화를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금융위원회가 실시한 올해 상반기 기술금융평가 대형은행 부문에서 IBK기업은행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소형은행에선 부산은행이 1위, 경남은행이 2위로 선정됐다. 농협은행이 기술금융평가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2022년 상반기와 지난해 상반기 등 두 차례다.
IBK기업은행 등 전통 시중은행이 소프트웨어·바이오 중심 기술기업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농협은행은 스마트팜 전문성과 지역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융합기술 기업을 지원하며 기술금융 선도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농협은행의 기술금융 약진은 아그테크(AgTech·농업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출발점이었다. 아그테크는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로 IoT(사물인터넷)와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융합 기술을 뜻한다.
농협은행은 농업과 기술 융합 영역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넓은 기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기존 시중은행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당행의 전국 영업망을 통해 지역 기반의 우수기술기업 발굴 및 지원이 타행과 차별화된 강점”이라며 “전국 시·군 단위로 촘촘하게 조직된 시군지부 단위 영업 조직을 통해 우수기술기업에 대한 우대금리와 대출한도를 확대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스마트팜 금융서 시작된 기술기업 평가 역량
농협은행의 기술금융 성과는 스마트팜 종합자금운용 경험에서 비롯됐다. 스마트팜이 단순 농업시설이 아닌 첨단기술이 집약된 하이테크 산업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농협은행이 취급하는 스마트팜 종합자금은 정책 자금으로 각 영업점에서 서류 접수를 통해 운영된다. 심사 과정에서 기본자격 심사와 함께 사업 타당성, 상환능력 검토는 물론 비재무평가를 통한 기술수준평가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기업평가 노하우가 다른 분야 기술기업 심사로 확장됐다.
특히, 온실 내 센서 네트워크, 자동화 시스템, 데이터 분석 플랫폼 등 복합기술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는 농협은행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됐다. 기존 은행이 소프트웨어나 바이오 중심의 기술기업에 집중했다면, 농협은행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융합기술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농업 관련 바이오기술과 환경기술, 푸드테크 분야에서 농협은행의 독보적 지위는 더 부각된다. 이들 분야는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맞물려 급성장하고 있지만, 기존 시중은행들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졌던 영역이다. 농협은행은 이런 틈새시장을 선점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전국 1100여 개 영업점 네트워크도 지역 기술기업 발굴에 핵심 역할을 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기존 기술금융과 달리 지방 대학 창업기업과 지역 특화 기술기업들을 선제적으로 발굴할 수 있는 인프라를 보유한 것이 경쟁 우위로 작용했다.
농협은행 측은 “당행의 특성을 반영해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농축산업 관련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기술금융을 지원하고 있다”며 “기업 및 관련 산업의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1000억 규모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 뒷받침
농협은행의 기술금융 성과를 뒷받침한 것은 대규모 디지털 전환 투자다. 농협은행은 지난 4월 완료된 일명 ‘프로젝트 네오(NEO)’로 불리는 디지털금융 플랫폼 전환 프로젝트에 약 1000억 원을 투입해 기술기업 평가 고도화와 디지털 금융 경쟁력 강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프로젝트 네오는 ▲디지털전환 기반의 신속·유연한 비대면 트렌드 대응 ▲업무 절차 재설계를 통한 업무 효율성 극대화 ▲고객 만족과 신뢰 강화를 위한 고객여정 혁신 ▲미래지향적 금융생태계 전환 등으로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 기술기업 평가 시스템이 구축됐으며, 농업 데이터 축적 과정에서 형성된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기술기업 평가에 접목해 전통적인 재무지표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시장성, 성장성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됐다.
2019년 출범한 NH디지털혁신캠퍼스 역시 농협은행의 기술금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R&D(연구개발)센터와 핀테크혁신센터로 구성된 NH디지털혁신캠퍼스는 그룹 차원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고, 디지털 기술 연구·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전진기지다.
농협은행은 디지털혁신캠퍼스를 통해 기술기업들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기술 트렌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기술기업들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여기에 ESG 관련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는 등 기술금융 투자 전략을 확대한 점도 기술금융 고도화에 동력으로 작용했다. 농협은행의 농식품기업여신을 통한 농식품 산업 육성과 농식품기업 지원 경험 등이 기술금융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기술금융 우수 은행으로 선정된 것은 전통 금융기관도 디지털 전환과 전문성 강화를 통해 새 영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농협은행만의 고유 강점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 전략이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최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