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淨見直球] ‘희대(稀代)의 반란’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더불어민주당과 대법원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민주당 대표 정청래가 최근 불거진 대법원장 조희대(曺喜大)의 ‘한덕수 회동’ 의혹을 두고 사퇴는 물론 특검 수사까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조희대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정청래는 “존경받아야 할 사법부의 수장이 정치적 편향성과 알 수 없는 의혹 제기 때문에 사퇴 요구가 있는 만큼 대법원장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정청래는 조희대에 대한 내란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전날 민주당 의원 부승찬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전 대통령 윤석열 파면 직후 조희대가 국무총리 한덕수 등과 회동하며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오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설마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조희대는 17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정치권 등에서 한 전 총리 등과 만나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처리에 논의했다는 취지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한 전 총리와는 물론이고 외부의 누구와도 이재명사건을 논의한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집권 이후 대한민국은 국격(國格)이 무너졌다.
김건희 농단으로 나라가 시끄럽더니 하루가 멀다하고 민망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영(令)도 무너졌다. 3류 국가로 전락한 느낌이다.
집권당 시절의 전직 당 대표는 재판전증인신문에 나오지 않겠다는 오만을 드러내고 있고 피의자나 참고인 신분인 무슨 종교단체 대표는 검찰 소환에 콧방귀를 끼면서 수사기관 위에 있다. 나라의 사법체제와 공권력이 무시당하고 우스워졌다. 윤석열이 ‘모범’을 보인 덕분인가.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정의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일들도 매일 뉴스를 탄다. ‘윤 어개인’을 외치는 일타강사를 의병(義兵)이라고 하질 않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상한 목사의 교회에 가서 종교탄압 운운하는 ‘정치예배’를 보질 않나. 민심을 거스르는 억지스런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직도 ‘불의’의 편인가? 악다구니 급의 독설, 독기를 좀 누그러뜨리면 훨씬 더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은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은 부산 세계로교회 예배에 참석해 “이번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손현보 목사에 대한 구속은 모든 종교인에 대한 탄압”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종교탄압이라니, 억지다.
대법원과 국회가 왜 이리 시끄러운가. 돌이켜 보면 조희대는 스스로 정쟁(政爭)의 바다에 빠졌다. 바로 이재명 항소심 파기환송 사건이다. ‘사건’이라 함은 대법원장의 이 행동이 우리 사회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줄 만큼 도발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을까. 윤석열처럼 혹시 극우 유투브를 맹신했나? 아니란 보장이 없다. 달리 해석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날 일어난 ‘희대의 반란’을 되짚어 보자.
이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것은 3월28일이다. 그 이틀 전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이재명을 무죄로 판단했다. 조희대는 4월22일 오전 대법원 2부에 배당된 이 사건을, 오후에 바로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결정을 했다. 재판장인 조희대는 전합 회부 당일 심리를 한 데 이어, 이틀 뒤에도 심리를 이어갔다. 전례 없는 속도전이었다. 전합 회부 9일 만에 유죄취지의 파기환송을 결정했고, 지상파 TV 생중계까지 허용했다. 국민 대다수가 이재명은 이제 끝났다고 봤다. 대선 전에 사법처리 될 것으로 예상들을 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곧 반전(反轉)을 목격하게 된다. 국힘 지도부 송(宋)모의 국회 본회의장 망발처럼 “그리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실망이 컸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가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어 재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6월18일로 변경한 것이다.
대통령 후보 이재명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법원 내·외부의 어떤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했다고 밝혔다.
머쓱해진 건 조희대.
혹시 그가 낳고 자란 지역의 정치색에 물들었나? 엘리트란 사람이 설마 지역주의나 진영의 노예가 된 건 아닐 터. 배운 사람이라는 그가 그렇게 용렬한 법관이었을까? 아직도 여전한 미스테리다. 혹 소영웅주의라 해도 그렇다. 그는 결과적으로 명판(名判)의 대열에는 들 수 없는 법조계의 장삼이사(張三李四)였다. 대법원장이란 직함이 그에게 허술하게 주어졌던 게 넌센스라면 넌센스.
대법관이란 사람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지 진영에 가담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면 되겠는가. 물론 누구처럼 ‘확증편향’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임명했다는 게 그리 중요한가? 윤석열이 임명한 대법관 10명이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같은 의견을 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자존심과 명예 직책에 따른 사명감 따윈 잊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법관이었다. 직함이 너무 거창했다. ‘대법견’도 과하다는 국민적 실망이 있었다. 엘리트 회의론이 나오고, 국격이 창피해지는 이유다. 다수의견과 다른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관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2명뿐이었다.
사법부 독립은, 헌법과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원칙이지 사법부가 국민과 괴리된 채 독단적 권한을 누리라는 보호막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명분을 방패로 법관의 모든 오판을 역사와 여론(국민 감시)으로부터 차단시킬 수는 없다. 아니, 법관 자신의 양심에도 어긋남직한 재판이 다만 재판이라는 이름 때문에 신성시될 수는 없다” 1989년 월간잡지 <다리> 10월호에 실린 한승헌 변호사의 소신이다. 36년전에 벌써 나왔던 판단이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과 순수 속에 평생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참법조인 한승헌. 깡마른 체구에 형형한 눈빛을 가졌던 그는 3년 전 고인(故人)이 됐다. “법조인은 정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해야 할 사명을 지녔기에 시국사건을 지나칠 수 없었다”는 회고를 남기고---.
범여권에서 연일 조희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현직 부장판사가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에 대한 유감 표시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송승용. 그는 16일 ‘코트넷’에 대법원장은 먼저 지난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과 관련해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떠한 경우라도 법원의 판결이 성역으로 남을 수는 없다. 법조계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하여 응분의 우려와 의심을 하였다면, 비록 대법원의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울지라도 그러한 우려와 의심을 해소해 주어야 할 적극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
대통령 이재명은 16일 “선거를 통해서든 임명을 통해서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며 “마치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은 “우리가 행사하는 모든 권한과 모든 업무는 나와 주변(진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곧 공허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자, 왜곡된 권위주의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됐다.
판사 지귀연 관련 잡음이나 한덕수 영장기각이 이어지면서 사법부가 시급한 개혁 대상으로 떠오르고 그 수장에 대한 불신임 목소리가 고조된 상황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희대가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윤석열 계엄 이후 사법부 수장으로서 그가 했거나 하고 있는 일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대법원장 조희대의 도발은 이른바 ‘희대(稀代)의 쿠데타’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법사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는 게 뜻있는 법조인들의 시각이다. 여러 학자들도 뜻을 같이 한다. 조희대는 결국 자신이 ‘공복’(公僕)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린 주제넘은 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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